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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의 공도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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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대장부
추천 : 8
조회수 : 239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3/14 16:09:42
조선 초기의 공도와 해금정책

고려 말에 섬을 비워버린 공도의 조치는 서남해 해상세력이 삼별초 세력에 동조할 것에 대한 우려에서 시작하여 서남해 해상세력과 왜구의 연대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에서 본격화되었다.
따라서 당시 공도화의 대상은 진도 , 압해도, 흑산도, 장산도, 거제도, 남해도 등과 같이 주로 해상세력이 항몽의 근거지로 삼았던 큰 섬들이었다. 결국 고려 말 공도 조치는 이들 해상세력에 대한 국가의 탄압이라는 의미가 강했다고 할수 있다. 

고려말의 이러한 공도정치는 조선시대에 들어 더욱 강화되고 전면화 되면서 단순히 일시적인 '조치'의 차원을 넘어서서 법으로까지 규정되는 하나의 국가정책 (이른바 공도정책)으로 자리잡아 갔다.

궁(宮)의 허락없이 몰래 섬에 들어간 자는 곤장 1백대의 형을 받는 것으로 규정되었으며 심지어 섬에 도피 은닉한 죄는 본국을 배반한 죄에 준하는 것으로 다스려져야 한다는 주장까지 거론될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 되었다. 

조선이 공도정책을 실시했던 목적은 고려 말에 반정부 활동을 전개하던 해상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취했던 공도 정치와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조선 시대의 해양은 이미 피폐화되어 있었고 해양을 근거로 하여 삶을 영위하던 해양인들도 크게 쇠락해 있었으므로 그들을 경계하고 탄압한다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 왕조가 공도를 국가의 정책으로 삼아 강력하게 추진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모든 백성들은 국왕의 지배와 보호를 받는 위치에서 편제되어야 한다는 조선적 통치의 이념에서 나온 것이다. 
조선시대에게 섬은 원칙적으로 국왕의 지배와 보호가 미치는 통치의 대상이 아니었고 행정 편제의 대상에서도 배제되었다. 다만 왕권 내에 있는 조선의 영토라는 관념만이 막연하게 미치고 있었을 뿐이었다. 따라서 만약 백성들이 섬에 흘러 들어간다면 그것은 곧 국왕의 통치권에서 벗어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국가 탈출죄 혹은 반역죄에 상응하는 형벌이 가해졌던 것은 이때문이었다. 
이러한 조선의 공도정책은 고려 말에 취한 공도의 조치를 계승한 측면도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명의 해금정책을 추수한 결과였다고 볼것이다. 

이점에서 명의 해금정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명을 건국한 주원장은 원을 축출하고 중국대륙을 통일하는 한편 명 왕조의 정권을 안정화시켜 가는 과정에서 명의 지배에 저항하는 해상세력에 일대 타격을 가하기 위해 일체의 해양활동을 금하는 해금정책을 폈다. 당시 절강지방의 염민을 규합하는 큰 세력을 형성한 장사성세력이나 영파, 은주등의 무역항구를 점거하여 해상무역을 주도하면서 세력을 키워간 방국진 세력등이 주된 견제와 제거의 대상이었다.

그리하여 명 태조 주원장은 민간 상인들의 해외 도항을 모두 금지하고 민간에서 원양선을 건조하지 못하도록 하였을 뿐 아니라 이미 건조한 원양선도 국내 수송용 배로 개조하도록 명함으로써 이들 해상세력의 활동 수단과 무대 자체를 제거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러한 명의 해금정책은 궁극적으로 바다를 폐쇄하고 육로라는 제한적인 통로를 통해 주변 국가와 조공관계를 맺음으로써 대내적 안정을 추구하고 대외적 패권주의를 관철하려는데 주된 목적이 있었다. 그리하여 주원장의 뒤를 이은 영락제는 정화로 하여금 1405년부터 28년동안 7차례에 걸쳐 인도에서 멀리 페르시아만에 이르는 남해 대원정을 단행하게 하였으니 이로써 전대까지 남해로를 통해 성행해온 국제 해상 무역은 더욱 무력화되었다. 

명의 해금정책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지며 그럴수록 국제 해상무역은 위축되어 갔다. 조선은 육로를 통해 명이 설정한 조공 체제를 충실히 이행할수 있는 지정학적 위치에 있었으므로 명의 해금정책에 적극 동조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명의 해금정책으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일본이 명․ 조선과 교역하기 위해서는 바다를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일본은 바다를 통한 불법적 교역활동을 전개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은 결과적으로 명의 해금정책에 도전하는 셈이 되었다.

그리고 명은 이에 대해 강력 대응하였다.
이러한 악순환이 계속되는 가운데 일본인들의 불법 행위는 점차 무력적 침탈 행위로 돌변해갔으니 이른바 왜구라 불리는 해적집단의 침탈로 나타났던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명의 해금정책은 태조 주원장이 강남의 해상세력을 정권의 위협으로 간주하고 이를 탄압하기 위한 목적에서 시작되었고 이것은 이후 조법이 되어 쇄국정책 추진의 근거가 되었으며 해양을 통한 교역을 원하는 왜구의 극렬한 침탈을 가져오게 한 원인이 되었다고 할 것이다. 

이점에서 고려 말 공도정책이 서남해 해상세력을 위협 세력으로 간주하여 탄압하기 위한 목적에서 시작되어 급기야 왜구의 침탈을 가져오게 한 원인이 되었던 것도 정확히 일치하는 바이다.

조선왕조가 고려말의 공동정치를 계승하고 명의 해금정책을 추수한 것은 결코 별개의 것이 아니고 양자가 상승작용을 일으켜 조선왕조를 극단적인 쇄국정책의 길로 몰고 갔다고 할수 있다.
그럴수록 격절되어 있던 일본은 바다를 통해 교역하고자 하는 욕구를 차단당하고 동아시아 국제관계에서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 왜구의 침탈행위가 더욱 격렬하게 나타났던 것은 이런 맥락에서 살필수 있겠다.

조선왕조의 해금정책의 기조를 유지하면서 혹은 무력 정벌을 통해 혹은 새로운 해방체제의 구축을 통해 혹은 제한적 교역의 허용을 통해 왜구의 침탈행위를 저지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갔다. 

*신해방 체제* 

중국과 조선의 강력한 해금정책으로 일본인들의 무역 욕구가 차단되면서 일부 일본인들이 그들의 욕구를 불법적이고 약탈적인 형태로 표출한 것이 왜구의 침탈로 나타났다. 그 이적까지 국제 해상무역을 주도하고 갈등을 완충하는 역할을 수행해 오던 도서․연안지역의 해상세력이 명과 조선의 해금정책으로 탄압을 받아 크게 쇠락하면서 왜구에 대한 대응 능력을 상실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들 중에서 불법적 해적의 무리로 전락한 부류마저 생기게 되었다.
그러니 이러한 역사적 조건 속에서 왜구의 분출이라는 현상은 역사적 필연성을 포함한다고 할수 있겠다. 

왜구의 침탈은 더욱 격화되어 갔고 왜구에 대한 대책은 동아시아의 가장 심각한 문제로 대두하였다. 먼저 조선은 태조 연간에 수군을 보강하는 한편 연안 지역에 성을 쌓고 봉수제를 정비하였으며 이것이 태종 연간으로 이어져 연안 수군진과 봉수제를 근간으로 하는 새로운 해방체제로 정비되었다.

이는 곧 바다와 섬을 포기하고 육지방어를 위주로 하는 공도와 해금정책을 기조로 하는 ‘신해방체제’의 구축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왜구의 침틀은 크게 줄었지만 섬을 징검다리로 삼아 들어오는 왜구의 간헐적 침탈에 대해서는 속수 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조선은 왜구의 침탈을 본원적으로 뿌리 뽑기 위하여 왜구의 근거지로 지목해온 대마도 정벌을 추진하였다. 마침내 1418(세종 원년)6월 19일 조선측은 삼국도체찰사 이종무의 지휘하에 17000여명의 병럭을 227척의 병선에 나눠 싣고 거제도를 출발 대마도 정벌에 나섰다.

정벌군은 왜구의 근거지에 큰 타격을 가하는 한편 많은 조선인 포로들을 쇄환해 오는 전과를 올렸다,
이로써 세종 때에 일본에 대한 각종 회유정책이 조선의 주도하에 실시될 수 있었도 대마도는 조․일 양국외교의 안전판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은 마치 명이 해금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단행했던 정화의 대원정을 연상케한다. 

이후 조선왕조는 ‘해금의 시대’를 본격 개막하였다. 오로지 육지를 통해서 명에 사신을 보내 대국으로 섬기면서 중문문화의 야류임을 자처하고 해양 저편에 있는 사람들은 무조건 야만시 하게 되었으니 이로써 조선은 문화적으로는 자폐주의에 깊숙이 빠져들어 갔고 정책적으로는 쇄국주의를 표방하였다.

조선은 통제하기 어려운 해양의 불안정성을 싫어하여 해양을 통해서 문화의 다양성을 얻을수 있는 기회를 저버렸고 대신에 중화의 권위를 빌어서 내지의 인민들을 철처히 통제하는 획일적 안정성을 추구하는 것에 길들여져 갔던 것이다. 

출처: http://cafe.daum.net/chmy/LLJc/92?docid=ZoiCLLJc922004061500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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