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영국왕 조지 6세의 전쟁
게시물ID : history_2664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안다쏜
추천 : 6
조회수 : 1463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6/08/16 13:56:44
옵션
  • 펌글
유틀란트 해전에서 32발의 주 포탄과 35발의 4 인치 포탄을 사격한 전함 콜링우드의 전방 포탑 상부에 위치한 오픈된 지휘소에 앉아 전투 내내 사격을 지휘한 하급 장교가 있었는데, 그는 바로 영국 해군 중위이자 당시 영국 왕위 계승 서열 2위였던 알버트 왕자였다.  

그는 훗날 형인 에드워드 왕세자가 미국 출신 이혼녀 심슨 부인과의 세계적인 스캔들로 왕위를 버리자 1936년, 조지 6 세로 영국 왕위에 올랐으며 현재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부친이고 영화 <킹스 스피치>를 통해 “말더듬이 왕”으로 우리에게까지 많이 알려진 바로 그 사람이었다. 

포격전이 끝난 직후, 독일 주력함들의 철수를 엄호하기 위해 독일 구축함들의 일제 어뢰 발사가 있었고 19시 20분, 독일 구축함이 발사한 여러 발의 어뢰 중 콜링우드에 접근한 두 발의 어뢰는 전방 10야드(9.1m)와 함미 30야드(27m)라는 간발의 차이로 빗나갔다(당시 그는 전방 포탑 위에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어뢰의 항적을 보았다고 한다..) 

1916년 5월 31일부터 6월 1일까지 달랑 이틀 동안 벌어진 유틀란트 해전에서 영국 해군은 3척의 순양전함, 3척의 장갑순양함을 포함 14척의 함정을 잃었고 6,094명의 전사자와 674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독일 해군은 11척의 함정과 2,551명의 인원을 잃었다.  

이 전투 직후인 6월 11일, 알버트왕자는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썼다. 

"나는 독일인으로 가득한 독일의 함정을 보았고 그들과 포탄을 필사적으로 교환하고 난 지금, 나는 매우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다. 그 일은 나에게 큰 경험을 겪게 하였고 쉽게 잊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왜 한 발도 맞지 않았을까? 비록 큰 피해를 입진 않았지만 우리 바로 앞에 위치한 배도 포탄을 맞았다. 그리고 독일의 어뢰는 나의 눈앞을 지나갔다.“ 

 유틀란트 해전 이후 전함 콜링우드는 도브튼 스터티(Doveton Sturdee) 제독 휘하의 제 4 함대에 소속되었고 알버트는 같은 함대에 소속되었던 영국 순양함 2척이 독일 U보트의 매복에 걸려 바로 코앞에서 침몰하는 과정도 목격했다.  

또한 그는 1917년 3월 26일, 스카파 플로우에 나란히 정박했던 같은 급의 자매함 뱅가드(HMS Vanguard)가 탄약고 폭발 사고로 순식간에 산산 조각나며 겨우 3명만이 살아남은 대참사도 목격했다

-------
차남이었던 알버트 왕자는 왕위계승서열 2위였으며
중위 계급으로 1차 세계대전 최대의 해전이었던 유틀란트 해전에 참가했고 이후로도 계속 장교로 복무하였음

계승서열 1위이자 장남이었던 에드워드 왕자 역시 최전선에 보내달라고 요구하였으나 왕세자가 전투에 직접 뛰어드는것은 명예로운 일이나 위험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함. 그래서 에드워드 왕자는 동생인 알버트를 그렇게 부러워했다고..

뭐 울나라에선 발생 가능성이 0에 수렴하는 일이겠죠
ㅇㅇ 
 
출처 http://m.blog.daum.net/mybrokenwing/574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