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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효주 동생 가혹행위에 관한 기사 (꼭 읽어보세요)
게시물ID : star_26683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매재중
추천 : 14
조회수 : 2042회
댓글수 : 23개
등록시간 : 2014/11/24 00:45:01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6374995&cloc=joongang|mnews|pcversion

"연예인 동생이 가혹행위" vs "언성 높인 적도 없어" ... 공군 김일병 사건의 진실은



  명문대 학생이 군 행정병으로 40여 일 복무하다가 자살했다. 장교로부터 잦은 질책을 받다가 연병장 단체구보를 뛴 후였다. 그런데 유서에 “몇 년을 신경 곤두세우고 살았다”며 "오래 전부터 생각한 자살"이라고 적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순직 처리된 후에도 ‘가해자’ 처벌을 두고 논란이 이는 이유다.
유족은 장교를 가혹행위 혐의로 고소했고 군 검찰은 ‘정신적 스트레스 외에 육체적 가혹행위라고 보기 어렵다’며 기소유예 결정했다. 유족은 다시 판단해달라며 재정신청했다.

‘연예인 동생이 연루됐다’고 해 지난 5월부터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공군 김지훈 일병 사건이다. 김일병의 유족과 가해자로 지목된 A 중위의 가족, 공군, 동료 병사를 모두 취재했다.
유족은 “군이 순직 처리는 했는데 가해자는 처벌하지 않으니 모순 아니냐”고 했고, A중위 측은 “구타나 욕설은 물론 언성 높인 적도 없다”고 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하루 종일 갈군다” … “조곤조곤 지적했다”

고 김지훈(당시 21세) 일병은 지난해 2월 고려대 1학년 재학 중 공군에 입대해 15비행단에서 근무했다. 당시 동료 병사들은 “밝고 긍정적이었다”고 기억했다.
김 일병은 ‘잘 하는 병사’로 추천돼 비행단장(준장)을 보좌하는 행정병으로 뽑혔고 단장실로 출퇴근하게 된다. 부대는 부관(중위) 1명과 병사 3명으로 이뤄져 있었다.

김 일병은 처음 단장실에 배치돼 전화번호 등을 잘 외웠다고 한다. 한 병사는 “외울 걸 주고서 하루 뒤에 물으니 열에 아홉은 척척 대답해서 ‘똑똑한 친구가 뽑혔구나’ 생각했다”고 했다.
그 런데 며칠이 지나자 하나둘 씩 실수를 했다. 전화를 받을 때 관등성명을 밝히지 않는다거나, 서류를 전달하지 않았다거나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당시 동료 병사는 “열심히 노력은 했지만 실수가 잦아 A중위에게 매일 혼나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다른 병사는 “군에서는 약간 억울해도 ‘시정하겠습니다’ 답하는 편인데, 김일병은 변명하는 때가 많았다”고 했다.

병사들의 진술에 따르면 A 중위는 “병사에게 수직적으로 대하지 않고 인간적으로 잘 대해주었”지만 “고집이 강하고 타인이 잘못하면 반드시 지적하는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구 타나 욕설, 소리지르는 일이 없었다는 것에 진술이 일치한다. 김 일병 역시 가족이나 동료에게 가혹행위에 대해 이야기한 적은 없다고 한다. 병사들은 A 중위가 “실수를 하면 지적하고 이유를 묻고, 변명하거나 거짓말 한다고 생각되면 이를 다시 추궁”했으며 “조곤조곤 이야기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자 병사들 사이에서는 “A 중위에게 김 일병이 찍혔다"거나 " 행정병이 바뀔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김 일병도 A 중위에게 불만을 품었다. 김 일병은 동료 병사에게 보낸 이메일에 “일은 편한데 장교가 ‘곱창’”이라며 “잘못된 거 하나로 하루 종일 갈군다”고 적었다. 면회 온 부모에게는 “부관이 깜냥이 안 되는 거 같아”라고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거짓말’인가 ‘기억상실증’ 인가

김 일병은 실수를 해명하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했고 그러다가 “거짓말”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김 일병이 힘들어 보이자 A 중위는 “민간인 형과 편하게 대화해 보라”며 부대를 찾은 예비역 병장 남모(27)씨와 단 둘이 대화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김 일병이 자살하기 4일 전이다.
남씨에 따르면 김 일병은 “입대 전부터 방금 들은 일도 잘 잊어버린다” 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남씨의 권유로 김 일병은 국군수도통합병원 정신과에 7월 3일 진료 예약을 했다. 하지만 진료일이 되기 전 자살했다.
김 일병의 가족은 “단장과 유착관계가 있는 민간인이 왜 군인을 면담하는가”라고 후에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김 일병은 중위, 부대원과 함께 총 두 차례의 군장구보를 했다. (사진은 사건과 직접 관련 없음) [중앙포토]


“연병장 구보, 규정 어겨 ‘가혹행위’” … “중위도 함께 뛰었다”

김 일병은 A중위의 지시로 총 2번의 군장구보를 했다. 한 번은 A중위와 김 일병 둘이서, 다른 한 번은 단체로 뛰었다.

첫 군장구보는 사망 8일 전. A 중위는 “김 일병의 지각 때문”이라고 했고, 김 일병은 생전 동료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억울하게 혼났다”고 했다. 두 사람은 총기를 제외한 완전군장(11㎏)을 하고 연병장을 돌았다. A 중위는 10바퀴 중 8바퀴를 함께 뛰었다고 진술했고, 김일병은 친구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조금 뛰다가 자기는 힘드니까 나만 뛰게 했다”며 14~15바퀴 뛰었다고 적었다.

두 번째 군장구보는 사망 전날 시행됐다. 공항으로 대통령 영접을 나가야 할 단장의 정복 단추가 헐거웠다. 이는 김 일병의 몫이었지만 김 일병이 바느질에 자신 없어해 A 중위가 했다. 그는 단추를 다느라 대통령 도착 시간이 당겨졌다는 문자를 확인하지 못했고, 단장은 행사장에 늦었다.
A 중위는 병사들을 집합시켰고 이날 병사 2명이 동시에 면회를 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요 행사일에 왜 면회가 중복되었는가’ 지적하자 김 일병과 동료 병사의 말이 달랐다. A 중위는 “왜 거짓말을 하느냐”고 김 일병을 질책했다.

중위와 병사들은 군장(7kg)을 하고 연병장을 8바퀴 돌았다. A 중위는 “나는 전화를 받지 못한 게 잘못”이라고 했고, 김 일병에게는 “너는 거짓말을 해서 뛰는 거야” 라고 했다. 하지만 김 일병은 이를 인정하는 답변을 하지 않았고, A 중위는 김 일병만 ‘거짓말을 하지 말자’ 구호를 외치며 2바퀴 더 돌게 했다.

이 는 공군의‘사랑의 벌’ 내규를 벗어났다. 얼차려는 중사 이상이 지휘관 보고 뒤 시행할 수 있다. 또 이날 구보는 오후 10시쯤 끝나 ‘일과 시간 내에 실시해야 한다’는 규정을 어겼다. 공군 방광선 공보과장(대령)은 “뛴 거리는 3km로 추정돼 규정인 2km보다 과했다”고 말했다.

김일병은 그날 밤 자살했다.

“몇 년 이랬으면 충분해” … “부관님(A중위)께 얘기했는데 잘 안 됐어”

김 일병은 목숨을 끊기 전 작은 수첩에 6쪽 정도 분량의 글을 남겼다. 적힌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 증상에 대한 고민이 대부분이었다. 글은 “언제부턴가 생각이 잘 나지가 않는다. 그런데 그걸 놔둔 게 잘못이었다”는 말로 시작한다. “몇 년을 신경 곤두세우고 살다보니 내 안에 남는 게 없어” 라고 적었다. “충동적인 자살처럼 보이겠지만 꽤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빨리 할 걸”이라고도 했다.
“말도 안 되는 문제를 쳐놓고 기억이 안 나서 그랬다고 하면 누가 믿어주나” 라고 자책도 했다. “자꾸 생각이 안 나니까 그러다보니 거짓말이 나와요”라고도 적었다. A 중위에 대해서도 한 번 언급했다. “사실 부관님께 한번 얘기를 했어요. 근데 잘 안 되더라구요.”

군은 “자살을 오랫동안 생각했다”는 데에 주목해 원인을 입대 전에서 찾았고, 유가족은 “부관님께 얘기를 했는데 잘 안 됐다”는 부분에 집중해 A중위를 원인제공자로 지목했다.

‘일반사망’ 결정, 언론 보도되자 ‘순직’

군은 한 번의 죽음에 대해 두 번의 다른 결론을 내렸다.
국군수도병원 정신과 전문의는 “군입대 전 정신질환을 추정할만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했다. 군은 고인이 다녔던 학교의 생활기록부도 열람했지만 정신병력은 없었다. 군은 김 일병이 직무와 관련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도 인정했다.

그 렇지만 군은 김 일병이 남긴 글 내용과 김 일병이 사망 1주일 전 자살 관련 사이트 4곳, 사망 전날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 관련 사이트에 접속한 것에 비중을 뒀고, 지난 1월 ‘일반사망’ 결정을 내렸다. “직무 수행 스트레스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나, 입대 전부터 있었던 병리적인 성격이 가장 큰 요인”이라는 것이다.

공군은 지난 8월 김 일병을 순직 처리했다.


하 지만 군은 지난 8월 다시 ‘순직’결정을 내렸다.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고 인터넷과 SNS에 알려진 후다. 군의 이번 결론은“업무실수에 대한 부관의 잦은 질책성 업무지도로 스트레스, 부담, 불안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자살에 이르렀다”는 것이었다.
공군은 “그 사이 국방부 전공사상자 훈령이 개정되었기 때문에 순직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해당 조항은 ‘자유로운 의지가 배제된 상태에서 자해행위’라는 부분이 ‘정상적인 판단능력이 상당히 저하된 상태에서 자해행위’로 바뀐 것이 전부다. “군은 유족이 세게 나서야 움직인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유가족은 처음의 ‘일반사망’ 결정에서 배신감을, 두번째 ‘순직’ 결정에서 허탈감을 느꼈다고 한다. 김 일병의 장례식에서 단장이 부모 앞에 무릎을 꿇고 “지훈이를 명예롭게 보내는 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기에, 순직 처리될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사망 1년 만에 ‘순직’ 결정을 받았을 때는 ‘우는 애 달래기’식인 군의 일처리에 불신을 느꼈다고 한다.

지난 5월 고려대에 게재된 대자보. 사건이 대대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사건기록을 보셨나요?” “아니요.” “유서는 보셨나요?” “아니요.”

사 건이 세상에 크게 알려진 것은 김 일병이 다니던 고려대 학생들에 의해서다. 같은 과 선배 B씨가 지난 5월 학교 내에 사건에 대한 대자보를 썼다. 그는 여기서 “방독면을 포함한 완전군장을 시킨 채로 연병장을 수없이 돌리고, 본인의 과실을 모두 신병의 탓으로 도리며 끝없이 정신적으로 압박했던 A중위”라고 가해자를 지목했다. 고려대 온라인 커뮤니티인 ‘고파스’에도 글이 올라왔다. 일부 학생은 A중위 누나의 실명과 함께 방문자가 많은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이 글은 곧 ‘배우 OOO 동생의 구타와 가혹행위’라고 퍼 날라졌다.

학생회도 움직였다. ‘김지훈 일병 사건 재수사’를 위한 서명운동, 결의문 발표, 광화문 기자회견을 했다. 여기에는 모두 “A 중위가 하루가 멀다하고 불법 얼차려를 줬다” “연병장을 수없이 돌렸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실제 수치(얼차려 2회, 회당 연병장 10여 바퀴)보다 많게 해석될 수 있는 표현이다. 이들에게 어떤 경로로, 얼마나 사건을 파악했는지를 물었다. 정경대 학생회장은 “대자보를 쓴 학생의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부총학생회장은 “김 일병 아버님께 사건 내용을 전달받았고, 군 면회를 갔던 친구들의 의견도 들었다”고 했다. 김 일병이 남긴 유서에 대해서는 “보지 못했다”고 했다.

한 종편 뉴스는 “방독면을 쓴 채 연병장을 돌게 했다”고 보도했다. 함께 돌았던 병사는 “당시 방독면은 허리에 맸다”고 했다. 하지만 방독면을 쓴 장면을 내보낸 뉴스는 인터넷을 통해 퍼졌다.

한 종편 뉴스는 "방독면을 씌워 구보를 시켰다"며 이같은 화면을 내보냈다. 하지만 당시 함께 뛰었던 병사는 `방독면은 허리에 찼다`고 말했다.


“그 나쁜 X 못 나오게 해”

인 터넷은 빨랐다. ‘김지훈 일병’을 검색하면 배우의 이름이 자동으로 떴다. 한 인터넷 백과사전에는 “헌병대 조사에 따르면 H중위는 같은 부대 내 병사들 사이에서 소문난 악질이었다”라고 적혀 있다. 실제 수사기록에는 그와 같은 내용이 없다.

이후 상황은 ‘현대판 연좌제’였다. 배우가 출연한 광고주 업체로는 “그 나쁜 X 얼굴 보기 싫다”는 항의전화가 쏟아졌다. 배우의 광고 포스터가 찢겨 나갔고 배우가 등장하기로 예고된 행사 주최 측에 전화를 걸어 “못 나오게 하라”고 압력을 가하는 이도 있었다.

‘부적응자’의 낙인, ‘악마’의 낙인

군 형법에 가혹행위에 대한 처벌은 나오지만 가혹행위의 정의는 없다. 군이 ‘가혹행위로 인한 자살’을 순직 처리한다 하면서도 매번 논란에 휩싸이는 이유 중 하나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한국사회가 가혹행위에 대해 둔감하고, 논의의 정리도 안 돼 있다”고 했다.
대법원은 가혹행위에 대해 ‘사람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정신적ㆍ육체적 고통을 가하는 경우’라고 판시했다(대법원 2008.5.29 선고2008도2222). 결국 유족은 ‘악마같이 고통을 줬다’고 강조하고, 군은 ‘적응하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해 골이 패이는 상황이 반복된다.

김지훈 일병은 군이 가혹행위를 인정하지 않고도 군 내 자살에 순직 결정을 내린 보기 드문 사례다. 한국 사회는 여기서 다시 뒷걸음쳐 ‘부적응자’ 혹은 ‘악마’의 낙인을 찍을 것인지, 가혹행위와 인권에 대한 논의를 가다듬을 것인지 기로에 서 있다.

심서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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