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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사철 속에 예쁜 것만 적고 싶다.
게시물ID : readers_2673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빗속을둘이서
추천 : 2
조회수 : 219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10/26 02:2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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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1. 

덧없이만 아름다운 벚꽃에 취해

그 휘날린 몽땅을 평생 미련한 짐승이기보다

봄비로 번져 가던

오색 빛 틔우는 봉오리들의 축제 속에서

노란 햇살 닮은

한 마리 나비 그리고 요정처럼 노니는

그런 글을 적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소.

그렇게 낙천적으로 보인다면

가면극일 것이며

사실 난 창백한 고독밖에 모르니.


2.

남들 피서의 동향을 벌레 같이 곤두선 더듬이로 시샘키보다

유서에 떨어뜨릴 눈물 한 방울도 오직 땀이 된 노동보다
열대야를 순응한 이국적인 생체 리듬에 통기타 맡겨

하복이 설레던 시큼한 학창 시절처럼

그런 노랫말을 적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소

기뻐 보인다면

죽어서도 즐겁게 안 산 죄가 있지 싶어

웃음소릴 가장한 신음 샌 거며

그 힘든 억지로 버틸 때

어서 종막만 기다린 가면극일 것이며

나는 조명 꺼진 고독밖에 모른다.


3.

빛바랜 옷의 쓸쓸한 뒷모습보다

흉물로 터진 홍시 같은 그리움보다

불꽃처럼 저물던 모든 게

들판 더 넘어 보이기 위한 희생이란 걸

성숙한 수확 철을,

관하여 적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소.

기뻐 보인다면 가면극일 것이며

아직 평생 고독밖에 모른다.

텅 비어서야 장애 한 점 없는 저

가을 하늘이고픈 육신만

낙엽처럼 생사가 흔들릴 테니.


4.

가슴 문지른 추위 탓만 할 닫은 창문보다

눈보라에 언 희박한 숨이 끝내 멎는 일보다

하얗게 세력 펼치던 죽음에 맞서

작은 연탄 같을지라도

한겨울 기적인 온정의 힘을,

관하여 적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소.

기뻐 보인다면

광대를 박제한 가면극일 것이며

지병 같던 고독밖에 모른다.

하얀 계절은 각혈만 선명해지니.


5.

사철이 고독으로 꽉 차 있는

이다지 어리석던 젊은 나날을 경멸코자

나는 날 향한 복수심으로

다섯 번째 계절로 꿈꾸어지는 중년의 남자까지

살 수 있다면 가소롭게 회상하리라.

그 병신새 끼 눈물은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여

지옥마저 초대 안 줘서 차마 살아온

겨우 보통의 외로움이었다고.
중년에 도달한 궁극의 외로움에 홀로
미칠 듯 슬프도록 비웃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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