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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판타지소설작가 지망생입니다.
게시물ID : readers_2674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백태경
추천 : 1
조회수 : 388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6/10/26 21:2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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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가이아 게이트입니다.

마땅히 어딘가에 평가받을 만한 곳이 없어서 여기에 글을 한 번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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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2월 14일.
  20시 45분, 강원도 시골 마을에 괴생물체가 난입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20시 54분, 사냥용 엽총으로 무장한 경찰 5명이 출동한다.
  21시 14분, 마을로 투입한 경찰과 연락이 끊겼다.
  21시 21분, 바티칸 비밀부서 평화유지처 한국지부가 사태를 파악했다.
  21시 30분, 평유처 한국지부가 한국 정부와 경찰에 거짓 정보를 흘려 교란시킨다.
  21시 31분, 한국 경찰은 무전기 고장으로 판단하고 더 이상 병력을 지원하지 않는다.
  21시 35분, 평유처 한국지부가 현장에 윤세천 휘하 엑소시스트 1개 대대를 투입한다.


  +


  피처럼 붉게 물든 십자가가 세워진 명동 성당의 옥상에, 검은 헬기가 조용히 내려앉았다. 명동 거리를 걷는 사람들 중, 검은 헬기가 명동 성당에 내려앉은 것을 알아챈 사람은 없었다. 로터가 정신 사납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소음은 들리지 않았고, 겉면에 무광택 안료를 발라서 서울의 야경을 반사하지 않은 덕이었다.
  헬기가 내려앉자 기다렸다는 듯 성당 안에서 검은 옷을 입은 한 무리의 엑소시스트들이 나타났다. 15명. 대장 윤세천이 자신의 대대에서 고르고 고른 정예 병력이다.
  그런데 엑소시스트들의 옷이 이상했다. 겨울이라고는 하지만, 그들은 편집증에 걸린 사람들처럼 맨 살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머리는 헐렁한 후드를 뒤집어써 가리고, 마스크를 하고, 고글을 착용했다. 손에 착 달라붙은 검은 장갑을 끼고, 소매와 장갑 사이의 빈틈이 있을까 확실하게 가려놨다. 부츠를 신은 다리도 마찬가지였다. 부츠와 바지 밑단 사이에 빈틈이 드러나지 않게 깔끔하게 고무링을 착용해 밀착시켰다.
  그러나 이상한 건 옷 뿐만이 아니었다. 누구는 장갑 위로 나무 반지를 꼈고, 또 누구는 왼허리춤에 길다란 환도를 메고 있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몸통을 가리는 삼각형 방패를 들고 있었다.
  사실, 이해하기 힘든 패션 감각이었다.
  그러나 엑소시스트들은 그것이 일상이라는 듯 아무도 그런 차림에 토를 달지 않았다. 그들은 묵묵히 헬기에 올랐다. 헬기는 내려앉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떠올라 강원도 방향으로 기수를 돌렸다.
  헬기가 출발하자, 제일 바깥 쪽에 앉아 있던 세천이 후드와 마스크를 벗었다. 그는 머리를 자른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짧은 투블럭 머리를 하고 있었다. 짙은 눈썹이 인상적인 그는 이제 막 30살이 된 참이었다.
  그가 헬기 안 쪽에 있는 엑소시스트를 보고 말했다.

  "서노을 조장. 브리핑." 
 
  말이 끝나기 무섭게, 노을이 기다렸다는 듯 후드와 마스크를 벗었다. 후드를 벗자, 끝 부분에 웨이브로 포인트를 준 긴 머리가 드러났다. 그녀는 흘러내린 앞머리를 한 손으로 쑥 훑어 뒤로 넘겼다. 머리 일부가 다시 흘러내렸지만 일단은 후드를 벗은 것에 만족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주머니를 뒤져 손바닥크기만한 핸드폰을 꺼냈다. 노을은 핸드폰을 들어올려 마치 액자처럼 허공에 메달았다. 핸드폰은 자체적으로 공중에 머물러 있다 십자가 모양으로 쪼개졌다. 분할된 핸드폰은 27인치 모니터만큼 벌어지더니, 핸드폰 조각 사이에 검은색 홀로그램을 전개했다. 증강현실 모니터였다.
  이제 노을은 허공에 대고 키보드를 두드리듯 손가락을 움직였다. 핸드폰은 노을의 손가락 움직임을 인식하고, 그녀가 움직이는대로 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정보가 공개되자 노을이 입을 열었다.

  "자자. 집중. 거기, 하은이. 집-중."

  노을이 세천 맞은 편에 앉은 엑소시스트를 콕 집어 말했다. 하은 역시 마스크에 후드를 뒤집어 써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그녀의 마스크엔 붉게 충혈된 눈알이 하나 새겨져 있었다.
  하은이 노을의 모니터를 바라보자 노을이 말했다.

  "오늘 신입 있으니까 조금 자세하게 설명할게. 신입아. 신입아?"

  대답이 없다. 하은이 그녀의 옆에서 장갑 위에 낀 반지를 메만지며 바들바들 떨고 있는 엑소시스트의 옆구리를 찔렀다. 마스크에 아무 표시가 없는 그는 흠칫 놀라며 외쳤다.

  "예, 옙!"

  노을이 가볍게 웃으며 손짓했다.

  "어우, 우리 신입. 너무 긴장했네. 릴랙스, 릴랙스. 일단 후드랑 마스크 좀 벗자."

  "아, 예..."

  신입이 후드와 마스크를 벗었다. 이제 겨우 어른이 된 얼굴이 튀어나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이자격이 갖춰지자 곧장 바티칸 한국 지부에 입대한 녀석이었다.
  신입을 보자 세천의 눈이 반달이 되었다.

  "너무 긴장한 거 아냐?"

  "죄, 죄송합니다..."

  "죄송할 거 까지야 있나. 신입아. 날 봐."

  노을이 신입을 불렀다. 신입이 아랫입술을 깨물고 노을을 바라봤다. 노을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물었다.

  "자자, 긴장 풀어. 긴장 푸는 덴 수다가 최고지. 나랑 수다 좀 떨까?"

  "...네."

  신입의 목소리는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노을은 최대한 일상적인 주제를 꺼냈다.

  "너 여기 발령받자마자 바로 작전 투입됐잖아. 미안하게 생각해. 그래도 라자러스 프로젝트의 호문쿨루스잖아? 라자러스 프로젝트는 불사신 엑소시스트 만드는 거 말야."

  "...전, 실패작인데요."

  잠시 침묵. 그러다 여기저기서 노을을 향해 야유소리가 쏟아졌다.
  노을은 당황해하다 급히 웃으며 또 다른 화제를 꺼냈다.

  "그러고보니 여기 사람들하고 통성명도 못 했지? 이름이 뭐야?"

  "아. 59호입니다."

  모두의 시선이 59호에게 쏠렸다. 노을은 여전히 웃는 낯으로 말했다.

  "아니, 아니. 라자러스 프로젝트 때 니가 받은 호문쿨루스 번호 말고. 이름 말이야, 이름."

  "그게 이름입니다."

  노을이 한숨을 내쉬었다.

  "보통 그런 걸 이름이라 안 불러. 예를 들어서 서노을이나, 정하은이나... 윤세천이나. 59호라니. 너무 인간미 없잖니."

  "...인간 취급을 받은 게, 얼마 안 돼서..."

  59호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또 다시 여기저기서 노을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을이 당황했다.

  "아, 미안. 장난이었는데... 넌 아니었네. 미안, 미안. 자자, 59호야. 네 마법이 뭐지?"

  59호는 대답이 없다. 노을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래. 대답하기 싫어?"

  "아뇨... 대답하면, 보통 사람들이 싫어해서..."

  "뭔데 그래?"

  노을이 다시 묻자, 59호는 한참 뜸을 들이다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식물조작 마법이요."

  "그래? 괜찮네."

  노을의 반응에 59호가 놀란 토끼 눈이 되어 노을을 바라봤다. 주변에 있는 다른 엑소시스트들도 별다른 반응이 없다.
  노을은 이제 화제를 바꿨다.

  "자. 59호야. 암세포가 뭐지?"

  그녀는 급히 분위기를 수습하고 화제를 돌렸다.
  59호가 대꾸했다.

  "아, 암세포는... 분열과정에서 이상이 생겨, 필요없는 종양이 이상증식하는 병입니다."

  "아주 잘 했어용. 그래. 암세포는 이상증식하는 세포야. 덤으로 숙주의 영양을 무시무시한 속도로 빨아 먹지. 그걸로도 충분치 않아서 다른 체세포를 침식하기도 하고. "

  "명강사 납시셨네."

  하은이 툭, 내뱉었다. 노을은 웃는 낯으로 하은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내밀었다.

  "응, 닥쳐."

  하은은 팔짱을 낀 채 콧방귀를 뀌었다.

  "와, 언니. 나한테만 반응 격하다?"

  "응, 너니까."

  "뿡이다!"

  하은이 고개를 돌려 헬기 창 밖을 바라봤다.
  더 이상 하은이 끼어들지 않자 노을이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닝겐은 지구에게 있어서 암세포란 말이지. 서식지에서 벗어나 지구 곳곳에서 비정상적으로 증식하고, 지구의 자원을 미친 듯이 고갈시키고... 이보다 더 암같은 생명체가 있을까."

  그렇게 말을 하는 노을의 표정은 조금 자조적이었다. 그녀는 짧게 한숨을 쉬고, 59호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암이 생기면 어떻게 치료하지?

  "보통 항암제를 투여해서 암세포를 죽이는 방식으로..."

  "맞아. 지금 우리가 사냥하러 가는 건, 지구의 항암제야. 알고 있지?"

  59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가스... 죠?"

  "응. 기가스. 어머니 지구가 암세포인 우리를 말살하기 위해 만들어낸 항암제."

  "그, 그렇지만... 서노을 조장님. 전, 한국엔 기가스가 출현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여기로 온 건데... 저 원래 연구실 경비로 발령난다고..."

  "어머, 순진하셔라."

  노을이 눈웃음을 지으며 손사레를 쳤다.

  "그건 나중에 우리 59호가 살아남으면 2강으로 해줄게. 진짜 브리핑 해야 될 시간이거든."

  하은이 힐끗, 노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노을은 가상 모니터를 눕히고, 홀로그램을 전개해 출동하려는 마을의 지도를 3D로 보여줬다. 첩첩 산중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평평한 곳에 마련된 마을이었다.
  노을은 그 마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2016년 2월 14일 20시 45분, 강원도 시골 마을에 괴생물체가 난입했다는 신고가 접수됐어. 경찰에서 멧돼지 정도라 생각해서 엽총으로 무장한 경찰 5명을 보냈지만 금방 연락두절이 됐지. 평유처 측에선 이게 기가스라고 생각하고 있어. 아마 짐승형 기가스일 거야. 크기는 중형."

  "수는?"


  하은이 끼어들어 물었다.

  "안 그래도 말하려고 했어. 일단 파악된 건 하나. 그렇지만 한 마리가 더 있다 생각하고 움직이는 게 속 편할 거 같으니 두 마리 탐색하는 걸로 하자. 일단 중형 기가스 한마리씩이니까, 두 조로 나눌게. 세천이 오빠랑..."

  "서노을 조장, 작전 중이야."

  "...아, 네. 윤세천 대장님을 필두로 해서..."

  기존에 한국지부 편제와는 달리 노을이 전력 분배를 생각해 두개의 조로 나눴다. 세천과 하은, 59호, 그리고 4명이 한 조, 다른 7명이 또 한 조.
  노을은 지휘부였기에 현장에 가지 않았다.

  "일 늘어나는 거 싫은데..."

  조가 나눠진 뒤에 하은이 툴툴거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세천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혹시라도 한 마리 더 있어서 사람들한테 알려지기라도 하면, 그게 더 일이야. 조금 빡세게 굴러야지."

  "예에, 예에. 어련하시겠어요."

  하은은 여전히 툴툴거렸다.
  그리고 어느새, 헬기는 작전 지역에 도착했다. 사건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헬기가 착륙했다. 노을과 조종사를 제외한 엑소시스트 14명이 내려서고, 노을이 불안하게 세천을 바라봤다.

  "대장, 59호 잘 챙겨요. 나 또 신입 구하느라 여기저기 부탁하고 다니는 거 싫단 말이에요."

  "알았어. 여전히 반말이랑 존대랑 섞인다. 작전 중이라니까."

  "아우... 알았어, 알았어요."

  노을이 손사레를 치며 말했다. 그녀는 그녀의 모니터에 엑소시스트들의 시야가 보인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세천이 말했다.

  "기가스를 찾아. 멀리 못 갔을 거다. 최대한 빨리 찾아내자. 어디 보자..."

  그가 시계를 확인했다.

  "지금이 22시 08분이니까. 24시까지 찾아내면 내가 라면 쏜다."

  "...쪼잔하게 라면이 뭐야, 라면이."

  하은이 툴툴거렸다.

  "잔고가 없어. 여튼. 빨리 찾아내고, 발 닦고 자자. 수색 시작!"

  두 조로 나뉘어 사건 현장으로 숲 속으로 진입했다. 잎이 다 떨어졌지만, 겨울 숲은 생각보다 빽빽한 편이었다.
  어둠이 내린 뒤인지라 온기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산간 지방이기에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 체감 온도는 훨씬 낮았다. 엑소시스트들이 맨 살이 드러나지 않게 옷을 입었다지만, 이런 추위를 막기엔 너무나 얇아보였다. 심지어 달도 뜨지 않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엑소시스트들은 그 빽빽하고 어두운 숲길을 거침없이 달려가고 있었다. 그들의 선두엔 세천과 하은이 있었다. 다만 59호는 그들로부터 한참이나 뒤쳐진 상태였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마을에 도착했다. 그러나 마을에서 제대로 형상을 갖추고 있는 것은 없었다. 깡촌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작은 시골 마을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도륙하려는 악의가 할퀴고 지나간 뒤였다. 집 안에 숨어 있던 사람 하나하나까지 찾아내 집과 같이 뭉개버렸다.
  세천이 혀를 찼다.

  "지독하군."

  세천이 마을을 한 번 쭉 훑어보는 동안, 뒤쳐졌던 59호가 숨을 헐떡이며 다다랐다. 59호는 무릎을 조금 굽혀 팔 지지대로 삼았다. 세천은 잠시 59호를 보다, 다른 조를 향해 말했다.

  "니들이 먼저 수색해라. 우린 신입 숨 좀 고르면 갈게."

  "네."

  "아... 대장... 님..."

  다른 조원들이 가자, 59호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그러나 세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쉬어. 그 상태로 수색도 못 해."

  "...네."

  59호가 조그맣게 대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59호의 숨이 조금 안정적으로 돌아왔다. 그제야 세천은 그의 조원들을 데리고 수색에 나섰다.
  우선은 마을 주변부터. 마을 내부는 이미 죄다 뭉개졌기 때문에 수색해봤자 큰 의미를 찾기 힘들 터였다. 항암제인 기가스의 행동원리는 단 하나. 죽기 전에 최대한 많은 암세포를 박멸하는 것. 그렇다면 마을을 헤집어 놓은 뒤에 다른 인간을 찾기 위해 마을을 벗어났을 터였다.
  그리고 세천의 감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마을에서 계곡으로 들어가는 오솔길에 흔적이 남아 있었다.
  세천이 중얼거렸다.

  "이거, 더 이상 오솔길로 부를 수가 없겠는데..."

  그의 말대로였다. 본래 길 양 옆으로 빽빽하게 나무가 자라나 있어 사람 두세명이 나란히 걸을 수 있을 정도의 넓이였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양 옆에 있던 나무들이 쭉 쓸려있다. 이만한 넓이를 가진 뭔가가 억지로 오솔길을 밀고 들어간 탓이었다.
  아마 기가스일 터.

  "서노을 조장, 보이지? 우린 이 쪽으로 진입한다."

  세천은 무전기를 통해 노을에게 말했다. 노을은 곧장 대답했다.

  "네."

  세천이 기가스가 만든 길로 진입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생각보다 일찍 않아 넓혀진 오솔길이 끝나고 생긴지 얼마 되지 않은 공터가 나타났다. 격렬한 전투로 인해 새로 생겨난 공터였다. 그리고 이 공터를 만든 녀석들도 이 곳에 있었다. 공터의 한 쪽 구석엔 신체가 반쯤 찢겨나간 남자가 부러진 나무 밑둥에 기댄 채 쓰러져 있었고, 그 반대편에는 자동차만한 괴생물이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있었다.
  세천이 중얼거렸다.

  "찾았다."

  괴생물은 고릴라처럼 앞다리가 뒷다리보다 더 긴 형태였다. 그러나 녀석은 고릴라에서 한 백만 광년 쯤 떨어져 있었다. 뭣보다 놈의 피부는 검은색 털이 아니라 광택이 있는 갈색 비닐로 덮여져 있었다. 누군가 격전을 벌인 듯, 그 비닐이 대부분 찢어지거나 깨진 상태였다. 머리는 아래턱이 발달된 형태였는데, 고릴라보다 주둥이가 짧은 악어와 비슷했다. 이빨은 거의 다 부서져있어 원래 형태가 어떤지 짐작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건, 놈의 피가 검은색을 띄고 있다는 것이다.
  기가스였다.

  "제대로 한바탕했네."

  하은이 불쑥, 말을 했다. 세천은 고개를 끄덕이고 힐끗, 뒤쪽에 쓰러져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저 사람 혼자, 처리한 걸까요?"

  59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세천은 잠시 생각을 하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한국에서 이 정도 크기의 기가스를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는 건 나나 하은이 정도야."

  "응. 그렇지."

  옆에서 하은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세천이 입을 열었다.

  "혹시 저 남자의 일행이 있는지 모르니 근처를 수색해."

  "이미 다른 조가 수색 중입니당."

  노을이 무전으로 끼어들었다. 세천이 히죽 웃었다.

  "역시 상황 판단이 빨라. 그럼 우리는 여기서 단서가 될 만한 걸 찾는다."

  세천은 이제 공터 반대쪽에 있는 시체 쪽으로 걸어갔다.
  시체의 뺨에는 사선으로 길게 칼에 그인 흉터가 남아 있었다. 필리핀인보다는 중국이나 한국, 일본인같은 동아시아쪽 사람으로 보였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였는데 남자의 몸 이곳저곳에 검은 피가 묻어 있는 걸로 봐선 기가스와 싸우다 공멸한 것 같았다. 
  세천은 쭈구려 앉아 시체를 살피다 고개를 갸웃했다. 시체의 얼굴은 어디서 본 듯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것도 엄청 유명한 녀석.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체 어디서 본 얼굴인지 기억낼 수 있었다.
  세천이 말했다.

  "기억났다. 이 녀석, 백귀단 2인자야."

  "백귀단...?"

  하은도 뭔가가 생각이 난 듯 했다.

  "그, 상하이에 거점을 두고 있는..."

  "응. 마약 밀매하는 마법사 범죄조직. 근데 이 녀석이 왜 여기 있는 거지."

  잠시 생각을 하던 세천이 노을에게 말했다.

  "서 조장, 오늘부터 백귀단이랑 지구해방전선이 연관됐는지 찾아봐 줘."

  "네이, 네이."

  "왜요. 지구해방전선은?"

  하은이 물었다.
  그러나, 59호는 모르는 단어였다. 그는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세천은 하은과 지구해방전선에 대해 얘기를 나누려다,

  "어머, 59호야. 지구해방전선을 모르는구나."

  시야를 공유받고 있던 노을이 끼어들었다. 세천이 59호를 바라봤다. 59호는 멍청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은이 중얼거렸다.

  "라자러스 프로젝트에선 기본적인 것도 안 가르치고 뭐 하는 거야."

  하은이 한 마디 더 하려 했지만, 노을이 끼어들었다.

  "에이, 그럴 수도 있지. 59호, 자세한 건 2강. 살아남았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백귀단 2인자는 혼자 이 곳으로 온 것 같았다. 그렇게 결론 내려진 게 0시 5분이었다. 이 사건을 도시전설로 위장할 정보조작 팀이야 오늘 날밤을 까야 하지만, 현장팀인 세천은 이제 일이 끝난 것이었다.
  세천은 시계를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자자, 퇴근합시다, 퇴근."

  "아. 오빠, 그럼 라면, 라면!"

  갑자기 노을이 끼어들었다. 세천이 난처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라면이라니. 자정 넘었잖아."

  세천의 옆에 있던 하은이 세천의 다리 사이에 검집을 집어넣었다. 다리를 걸려고 한 것이었지만 세천은 너무나도 가볍게 뛰어올라 회피했다. 세천은 윙크를 하며 하은을 가리켰다.

  "아직 준비가 안 됐다!"

  "쳇."

  하은이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노을은 코맹맹이 소리를 섞어가며 말했다.

  "5분밖에 안 지났잖아."

  "언니, 무전기에다 대고 애교 부리면 소음공해야."

  하은이 딴죽을 걸었다. 노을은 그녀의 편을 늘리기 위해 계속해서 말했다.

  "시끄러. 다른 사람들은? 응? 응? 라면 먹으러 가자. 응?"

  "조장님, 전 집에 갈래요."

  "노을아, 오빠 피곤하다."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를 냈다. 아무리 엑소시스트들이 마법사라 해도 3시간 가량 산을 이잡듯이 수색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 세천도 슬슬 지쳐가는 눈치였고.
  세천이 조용히 말했다.

  "노을아. 정 먹고 싶으면 내일 먹자. 나 피곤해."
  
  "아오. 거 대장 벗겨 먹는 거 딥따 힘드네."

  노을이 툴툴거렸다.
  세천이 다시 말했다.

  "자자, 퇴근하자."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헬기는, 엑소시스트들을 태우고 다시 명동 성당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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