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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humorbest_26864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딱따구리Ω
추천 : 80
조회수 : 11234회
댓글수 : 13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0/04/02 01:11:06
원본글 작성시간 : 2010/04/01 17:21:18
안녕하세요. 이십대 중반의 여자사람입니다.
저도 고민글이란 걸 다 올려보네요.
연애에 관한 갈등은 평소 친한 친구들에게조차 조언을 잘 구하지 않는 편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로 주
변 사람들을 심란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요. 지금도 몇 자 적기도 전에 죄송스러워지네요...
몇달 전 놀러갈 겸해서 제 남자친구의 고향엘 가게 됐습니다. 둘 다 서울에서 지내고 있구요. 한 살 터울입
니다. 사귄 지는 일 년 가까이 됐어요.
아무튼, 이러저러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제가 숙박할 곳이 마땅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친이야 집 근
처에 왔으니 집으로 보내는 게 당연했구요. 저는 그동안 그 사람 부모님을 뵙는 게 부담스러워 몇 차례 제안
에도, 선뜻 나서질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충동적으로 간 여행이었기에 사실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제 잘못이지요. 날이 어둑해져서 남친 집 근처에 혼자서 묵을 만한 숙박시설이 없나 살펴보려고 했습니다.
낮에 도착했을 때 그사람이 부모님부터 찾아뵜어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아니더래도, 부모님 입
에서는 모처럼의 방문이니 한시라도 빨리 자식 얼굴 보고 싶어 하셨을테니까요. 중간에 미리 연락을 했거든
요. 그런데 본인이 같이 있겠다는 걸 쫓아 보내기도 뭐하고 해서 저녁까지 시간을 보낸 건데 후회스러워지더
군요. 아들네미 집에 발도장도 찍지 않게 만든 얄미운 여자애가 저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러니 아무래도
그 상황에선 뵙는 게 낫겠더군요. 그래서 그날 남친집에서 저녁 식사를 부모님과 함께 하고 묵게 됐습니다.
남친 여자친구로는 제가 처음 집에 간 거더군요. 어지간히 어려워하는 제게 남자친구 부모님께서는 다정하
게 대해주셨고 거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어요. 잘 시간이 되어서 저는 자연스럽게 제가 어디서 자야 하는
지 남친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남친이 본인 방에서 같이 자는 거 아니냐며 별 일 아닌듯 대꾸하더군요. 순
간 얼마나 당황했는지... 아, 관계는 이미 맺었지만 남친 부모님이 계신 곳에선 둘이 한 공간에서 잠을 잔다
는 건 말도 안된다고 여겼거든요. 손만 잡고 자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요. 설사 그분들이 둘 사이의 진
도를 짐작하셨다 하더래도 부모님 눈 앞에서의 예의랄지, 하여간 대답을 듣자마자 전 무척 놀랐습니다. 남친
의 형이 타지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었고 방이 비었으니 저는 그날 밤 거기서 자면 되겠거니 하고 있었
거든요. 그때부터 저는 고집을 피웠습니다. 나는 그러기 싫다. 아니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러면 안된
다고 생각한다구요. 평소 저희는 대화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그날은 정말 혼란스럽더군요. 두 사람
이 자라온 다른 환경과 각자 본인에게는 자연스로운 행동양식이 서로에게 괴리감을 안겨 주고 있었으니까
요. 얘기를 들어보니 남친 부모님 역시 저희가 한방을 쓰는 것이 뭐 어떠냐는 입장이셨습니다. 그렇다는데,
그분들 앞에서 형방에서 자겠다고 혼자 나서서 말하기도 난처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런데 남자친구는 형이 있을 땐 형 역시 그래왔다고 말을 꺼냈습니다. 여자친구가 있으면 번번이 자연스럽게
방문하고 한방에서 묵었다 간다구요. 그 말을 듣자마자 어쩐지 조금 섭섭했습니다. 어른들께요. 저희 집이라
면 그런 상황은 상상도 할 수 없었거든요. 남친이 방문했다면 아마 빈 방에서 묵고 가게 했거나 사정상 자리
가 안난다면 아버지와 함께 잠자리에 들었을 겁니다. 어느쪽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문제란 생각을 하면서도 순간적으로 마음이 안 좋아졌습니다. 어쩌면 딸 가진 집과 아들 가진 집의 차이일
수도 있단 생각도 해봤습니다. 유교니 윤리의식이니 따위가 아니라 보통은 부모님 입장에서 어디를 가더라
도 자식은 소중하게 대접받길 원하지 않나요. 그곳에서 저는 소중하게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
습니다. 하지만 그건 사소한 제 심경일 뿐이고... 그런데 장성한 자식들의 연애사는 연애사고 양가 어른들
께 허락받은 사이가 아닌 한 부모님 앞에서 그렇게 자유로이 지내서는 안 된다는게 제 일반적인 생각이더군
요. 적어도 그나 저나 부모님께 몸을 물려받은 입장이란 생각이 머리에 박혀있었구요. 그때까지 저도 저를
몰랐고 일에 부닥치고 나서야 제가 어떤 생각으로 지내왔나 돌아보게 된거죠. 심지어 이건 방종이지 않나란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런 일을 겪은 후에 저는 여태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결국 남친방에서 하루를 묵고 돌아오는 길에는 이 사
람에 대한 거부감마저 들었습니다. 머리와 마음이 따로 놀아요... 선택과 결정은 제 몫이더래도 다른 사람
들 생각과 각자의 상황들이 궁금해져서 써봅니다. 남친이나 여친이 없더래도 일부분 대답해주실 수 있는 문
제구요. 각자가 살아온 환경과 사고의 차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제가, 제 마음이 너무 고지식하
고 보수적인 걸까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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