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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이 개화에 적극적이었다는 건 아닌 거 같습니다.
게시물ID : history_2688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iogenes
추천 : 10
조회수 : 898회
댓글수 : 14개
등록시간 : 2016/09/26 14:33:07
운요호 사건에서 맥없이 당한 이유를 다른데서 찾지 마세요. 그냥 강화도 군비를 대폭 삭감해서 군비가 형편없었기 때문입니다. 군량미가 없어서 굶기를 밥 먹듯 했다네요. 사기가 땅에 떨어질 밖에요. 전의가 있을 리가 있나요?
 
군비를 삭감한 것에 대해서는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작용했다 합디다. 군대가 아버지의 입김이 많이 들어간지라 언제라도 자신에게 반기를 들 거 같아 두려워했다더군요.
 
강화도 조약 승인한 거 가지고 고종을 개화군주로 추어올리는데... 이건 틀린 거 같습니다.
 
정녕 개화에 뜻을 두었다면 친정체제로 돌입한 이후 바로 서양과 교섭에 들어갔을 겁니다만 그런 이야긴 들은 바 없죠. 하다못해 청국에 사신이라도 파견해서 서양 여러나라의 실태에 대해 사전조사라도 했다던지 그런 움직임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거 들은 적 있나요?
 
그냥 강화도 조약에 도장 꾹 찍어주고 서양인들과 접견하는 게 즐겁고 서양 문물을 구경하는게 즐거워했을 군주였을 뿐이구요.
 
자기가 한 결정에 반항한다고 유생 하나 찢어 죽인 잔인한 고집쟁이 군주에 불과한 거죠.
 
개화작업에서 조선이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된 원인 중에 하나가
 
서양 사정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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