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1-27 11:59:55 천정배 열린우리당 의원이 28일 탈당한다. 천 의원 탈당은 단지 열린우리당과의 결별만 의미하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과의 완전 결별을 의미한다. 천 의원의 결별 선언은 정치공학 차원을 넘어 도의적 측면에서 노 대통령에겐 더없이 쓰라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왜 그럴까.
세차례 크게 '인간 노무현'을 도운 '인간 천정배'
두 사람간 우정은 오랜 기간 정가에 '신화'처럼 전해져 왔다. '인간 천정배'는 정치에 몸담기 전부터 '인간 노무현'을 높게 평가해왔다. 특히 '지역주의 타파' 노력을 높게 평가해왔다.
천정배는 수도권인 경기 안산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3선의원이나, 그는 호남 골수 토박이다. 전남 신안에서 태어나 목포중, 목포고를 나와 서울대 법대, 사시를 수석입학-차석합격한 세칭 '목포의 천재'다. 그가 본격적으로 '인간 노무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인권단체인 민변 상임이사를 하던 90년대초. 그는 90년 3당 야합에 반대하고 '원칙'을 걷는 노무현에 매료됐다. 노무현은 알다시피 영남 골수 토박이. 천정배는 그러나 출신지역을 개의치 않았다.
천정배는 노무현이 1996년 제15대 총선때 서울 종로에 출마했다가 낙선하자 다음해 자신의 법무법인 '해마루'에 들어오라 했다. 다음 재도전을 위한 충전 및 경제적 지원을 위해서였다. 노무현은 '해마루'에서 충전한 뒤 1998년 종로 재보선에 도전, 당당히 당선됐다.
천정배는 노무현이 대권 도전의 뜻을 굳히자 가장 먼저 그에 대한 공식 지원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대선 전해인 2001년 여름, 천정배는 부산에 내려가 공개집회에서 노무현 지지를 공식선언했다. 당시는 다음해 질풍노도같은 '노무현 바람'이 불 거라고 누구도 상상치 못한 시점이었다. 대부분이 이인제 주변에 몰려있을 때였다. 그러나 호남 토박이인 천정배는 영남 토박이인 노무현을 현역 의원 가운데 '유일하게' 지지했다.
천정배는 2003년 노무현이 민주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할 때도 앞장 섰다. 골수 호남으로선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그러나 그는 열린우리당 창당 명분인 '전국정당' 건설에 동의했고 상당수 호남으로부터 "탈레반"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노무현 대통령을 적극 지원했다.
천 의원이 평소 "노대통령이 나에게 빚을 졌으면 졌지, 내가 노 대통령에게 빚진 건 없다"고 말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던 그가 노무현 대통령과 완전결별한다.
천정배 "알고 보니 노무현은 영남패권주의자였다"
천정배 의원은 왜 노무현 대통령과 결별을 택했나. 뒤늦게나마 남들처럼 '노무현 두들기기'를 통해 대권주자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서?
지난해 11월말 천 의원을 만나 그의 생각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당시 최대 화두였던 부동산대란이 주제였다. 그는 부동산대란의 심각성과 본질을 알고 있었다. 분양가 폭리를 통해 수천억원을 번 시행업자 횡포도 알고 있었다. "소득이 있는 곳에 반드시 세금이 있어야 한다"며 분양원가 전면공개 지론을 폈고, 분양가 상한제에도 적극 찬성했다. 분양원가 공개에 극력 반대하는 강봉균 등 경제관료 출신들과도 결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2004년 4월 총선직후 "열배 남는 장사도 있는 법"이란 '속류 시장주의'에 기초한 노대통령의 열린우리당 공약 파기를 막지 못한 책임도 뼈저리게 통감했다.
정치 얘기도 했다. 그는 이미 당시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대해 절망하고 있었다. 그가 밝힌, 노 대통령에게 가장 절망하는 대목은 노 대통령의 "지역주의 타파" 주장의 허구이자 위선이었다. 그가 '인간 노무현'을 좋아했던 근간이 붕괴된 것이다.
그는 결정적으로 한나라당에 대한 노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을 접하고 십수년간 가졌던 인간 노무현에 대한 생각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했다. 대연정은 "영남 비주류의 영남 주류에 대한 러브콜에 다름 아니다"라고 그는 규정했다. 그는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반성하고 새롭게 만들려는 정당을 노 대통령이 "지역당"으로 매도하며 열린우리당 간판에 연연해 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했다. 최종적으로 그가 결론내린 노무현 대통령은 "영남패권주의자"이다.
이것이 천 의원이 밝힌, '인간 천정배'가 '인간 노무현'과 결별을 결심한 근원이다.
"열린우리당 수뇌부도 책임을 져야"
천 의원은 김근태-정동영 등 열린우리당의 이른바 대권주자들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그는 자신을 포함해 김근태-정동영 모두를 "열린우리당 실패의 공동책임자"로 규정했다. 대선 출마 운운 자체를 어불성설로 여겼다. 자신을 포함한 이들이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열린우리당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했다. 이들 대신 '제3 후보'를 생각하고 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는 그때까지만 해도 탈당을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연말연초 드러난 노 대통령의 속내를 보고 결단을 내린듯 싶다.
그는 노대통령의 열린우리당 탈당 선언도 냉소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인간 노무현'에 대한 믿음이 깨졌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 탈당 선언후 흔들리는 열린우리당내 정파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차갑다.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른 흔들림으로 보기 때문이다.
천 의원은 28일 탈당한다. 동반탈당 의원 숫자는 많지 않아 보인다. 원내교섭단체를 꾸리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천 의원 탈당으로 열린우리당, 특히 노 대통령은 치명적 상처를 입게 됐다는 것이다. 그 상처는 다름아닌 '정체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