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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 꽃 2
게시물ID : readers_2693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빗속을둘이서
추천 : 3
조회수 : 252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6/11/20 01: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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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구름은 시간처럼 흐르고
햇살이 고스란히 꽃이 된 들판에서
나는 사유한다.
 
나는 여유롭게 사유한다.
하늘은 마치 거울이어서 지구의 70%를 비추고 바다처럼 푸른 걸까?
때론 30%의 반영으로 무지개와 오로라 따위를 조립하고
황혼과 여명의 간극 그 모든 색채를 파생시켰나?
어떠한 어망, 그런 욕망이 없는 바닷속 흰 고래여
무엇에도 붙잡히지 않고 어딜 헤엄쳐 가는가, 이다지

이다지 유유히 지나는 걸 바라보는데
옆구리를 건들던 풀꽃이 말 걸었지.
" 둘러봐요, 모든 게 가질 수 없이 스쳐 지나고 있어요.
 이 바람과 향기, 이 풍경에 직접 부딪혀본 당신은
 내 기분을 이해하겠죠.
 여긴 정말 아름답고 특별해요.
 오늘 같은 순간은 처음이고, 진짜 행복해! "

숨 막힌 도시에서 도망치듯 벗어나
산세가 펼쳐진 곳에서 만난
말하는 꽃은 분명 엉뚱한 상상일 것이다.
그러나 나 역시도 웬만한 각오로
연락을 두절한 채 1박 2일간 죽은 사람이 되기로 하여
햇귀부터 어스름까지 달려 현실에서 아주 멀리 온 거다.
어젯밤은 만사 개켜두고 퍼질러 자다가
GPS가 안 먹히는
이상한 나라에서 눈을 뜬 후였고, 난 꽃의 말에 대꾸를 했다.
나는 내가 못 누린 여유를 동경해왔다. 그래서 지금 여기 있는 거고!
 너는 내가 살던 곳의 치열함을 동경할 필요가 있어. 널 꺾어 가겠다! "

사실 나는 그 꽃을 절대 꺾을 수 없고, 꽃도 날 간파했을 테다.
동경하는 걸 왜 꼭 멀리서 찾는 건데요? "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서 모진 짓 못 한다.
윽박지른 건 그냥 화가 난 것이었다.
이봐, 넌 원래 거기서 피어났잖니.
 이 언덕에서 하늘갓까지 지긋하게 봤을 거라고
 근데, 뭐 행복? 뭐 처음이라고?
 네겐 이 여유란 것도 다 무료한 일상이잖아! "
 
고개를 끄덕이듯 꽃받침부터 줄기까지 살랑거린다.
맞아요, 하지만 "

그것은,
하늘이 없던 도시와
악취가 나던 골목과
공사가 흐지부지된 현장과
쓰레기가 뒹굴던 둔치, 세상 그 어디서도
무심코 봐온
흔한 꽃이었다.
하지만? "

그것은 내 멋대로 착각한 흔한 꽃이었다.
지금은 당신과 함께인걸요. "

나는 꽃의 설교 속에 있다.
" 어쩌면 제가 창피한 말을 했나요?
 전 당신이 퉁명부린 것도 좋아요.
 그렇게 우린 조금씩 할 얘기가 많은 거겠죠.
 늘 반복되는 똑같은 장소라도
 누군가 함께 있다면
 서로가 이해하는 세상을 알려 할 때
 삶은 언제든지 새로워질 수 있어요. "

잊고 있었다.

새하얗고 까맣게 잊고 있었다.
잠깐 휴식을 두고자
억지로라도 찾은 여유 속에서
난 정말 아름다운 게 뭔지
살포시 기억해낸다.
그 어디서도 핀 꽃처럼
한시도 나와 떨어져 있지 않았는데
혼자 외롭다고 핑계를 댄 것이다.
주위에 흔한 모든 것 "
나는 이제 내 주위의 흔한 모든 것을 더 많이 여겨보며
다시 함께하는 믿음, 그 하나로 지긋한 지옥을 새롭게 살 거야.

환상 세계의 풍향이 바뀌고 무뎌지는 육감 속에서
귀가 가장 뒤늦게 죽으며 꽃의 마지막 언어를 살핀다.
도저히 무슨 말이었는지 옮겨 적을 순 없지만
눈을 두 번 떴을 때, 이마에 닿은 건 늦지 않았단 신호였다.

여러분, 그동안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

단 한 번도.

단 한 번도 안 한 말이 너무 많았으면서 이기적이게 표현에 목말라 있었다.
꽃과 나눈 담백한 속마음처럼 상상만 하지 말고 먼저 솔직해야 됐었다.
사랑하거나, 미안하거나, 고맙거나, 울고 싶거나, 웃고 싶거나, 기다려 주겠다던가
그런 한 마디면 일상도 조금씩 새로워질 걸 알면서 하지 못했던, 아니 안 한 것들이다.

이마에 닿은 한 장의 꽃잎처럼 깨닫는다.

" 더는 침묵하지 않겠다. 사느라 표현에 살겠다.
 각자가 믿는 자유에 어긋나지 않는 한
 악의가 아닌 우리의 속은 사랑 받을 가치가 있다. "

아무래도 나 빨리 집으로 가고 싶어졌어.

그래, 당장

집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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