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운 20만명 인신매매로 끌고가 ‘군수품’ 취급 -------------------------------------------------------------------------------- 성노예 생활을 거절하는 여성들에겐 온갖 폭행이 가해졌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을 때에는 위안부들을 다 모아놓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가장 완강히 반항하는 여성을, 군도로 목을 베거나 생식기에 총을 난사하는 것과 같은 잔인한 방법으로 처형함으로써 다른 위안부들을 순종하게 하였다. 일본군은 도망치다가 붙잡힌 위안부들의 온몸에 제재의 표시로 입묵(入墨)까지 해놓았다. 정옥순씨(80·황해도 강령군 사연리)의 경우가 대표적 사례다. 14세에 일본 국경수비대에 강제 연행된 정씨는 동료 위안부 12명과 함께 중국 광저우(廣州)의 군 위안소에서 도망치려다 발각되어 쇠몽둥이로 얻어맞고 물고문을 당한 끝에 입묵을 당했다. 일본군은 바늘 같은 것이 많이 붙어 있는 주먹만한 물건에 먹을 붙인 도구를 사용해 입과 혀, 가슴과 배, 심지어는 음부 부위 등 온몸에 ‘도주자의 표식’을 남겼다. 이런 고문 끝에 들판에 내던져진 정씨는 국혜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과 함께 중국 농민의 도움으로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지옥에서 살아남은 정씨지만 이런 증언을 기록으로 남긴 채 얼마 전에 사망했다. 리종녀씨(78·황해도 벽성군 옥정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0세 때 공장에 취직시켜주겠다는 동네 구장의 꾐에 빠져 인천에서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한 리씨 또한 도망치다 붙잡혀 고문을 당했다. 일본군은 다리와 허벅다리에 몽치를 두 개 끼우고 노끈으로 발목과 넙적다리를 묶은 뒤 휘발유를 솜에 적시어 불을 붙여 다리부터 음부까지 지졌다. 리씨는 이때 당한 고문으로 음부의 절반과 자궁 한쪽이 없다. 1945년 광복이 되어 위안소에서 풀려난 리씨는 부모에게 “고무공장에서 일하다가 화상을 입어 그렇게 되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혼자 살던 리씨 또한 지난 95년부터 시작된 ‘고난의 행군’을 견디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기자는 종태위 상무위원으로서 일본의 전쟁범죄를 심판하는 ‘2000 도쿄국제법정’(60쪽 관련 기사 참조) 북한 검사단의 유일한 검사인 정남용 교수(사회과학원)와의 인터뷰를 통해 상당수의 남한 출신 피해자들이 북한에 거주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종태위가 발간한 증언집 ‘짓밟힌 인생의 외침’의 표지에 나오는 정금옥 할머니(76·남포시 룡강군 삼화리)도 남한 출신이었다. 사진출처:동아닷컴 대체 이승연이라는 여자는 같은여자로서 생각이 있는사람인지..없는사람인지.. 머가 누굴 위한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