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차범근선수 관련 글을 감동있게 읽은 기억이 있어서 비슷한 글을 올려봅니다. 이순신장군에 대한 글입니다. 도고 제독을 통해 세계에 알려진 충무공 이순신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한 왜군들은 이순신이 이끈 조선 수군에 의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이순신 함대가 왜군의 수급을 벤 것은 불과 211개였다. 이만명의 왜군 해군이 궤멸되었으나 살상보다는 배를 파괴하는데 중점을 둔 해전장식이기 때문이다. 러일해전에서 도고제독이 기적같은 승리를 거두자 세계가 깜짝 놀랐고, 곧 도고 신드롬이 일어났다. 도고신드롬에 편승하여 세계 해군들의 도고배우기 붐을 이루었는데, 1906년 미군생도들이 졸업여행차 도고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각하께서 가장 존경하는 분은 누구입니까? 라고 묻자 도고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은 16세기 말 조선 왕국의 이순신 제독일세. 그 분의 무훈과 인품을 따를 제독은 아직 없네."라고 답했다. 그런데 1905년은 일제가 '조선은 스스로를 다스릴 능력이 없다'며 강압적으로 을사조약을 체결한 해였기에 일본의 조야가 경악했다. 1907년 영국생도들이 도고를 방문했다. "각하와 넬슨, 이순신제독을 비교하면 어떻습니다?" 그러자 도고는 "나와 넬슨은 비교해도 좋으나 이순신제독과는 비교하지 말게."라고 했다. 그러자 이번엔 영국국민들이 놀랬다. 자신들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넬슨이 조선의 이순신에게는 비교도 안된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이순신과 도고> 1905년 5월 새벽 대한해협, 칠흑같은 어둠을 뚫고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발틱함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함대 사령관은 로제스트벤스키 제독. 길목을 지키고 있던 일본 연합함대 사령관 도고 헤이하치로는 무차별 포격을 가했다. 세계 5대 해전에 드는 쓰시마 해전은 어처구니없게 이틀 만에 발틱 함대의 완패로 끝났다. 러시아 군함 26척이 격침 나포되었으며, 5000여명이 전사하고 6천여명이 포로가 되었다. 일본군 병원에 입원한 로제스트벤스키는 자신을 찾아온 도고에게 말했다. "당신이 상대였으니 패자가 된 것이 부끄럽지 않소." 그런 도고 제독이 동양의 넬슨이란 평을 받자, 도고는 "영국의 넬슨은 군신이라고 할 정도의 인물이 아니다. 해군 역사상 군신이라고 할 제독이 있다면 이순신 한 사람 뿐이다." 라고 했다. 당시 일본 해군은 이순신 장군의 전략을 연구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1차 세계대전, 유트란트 해전은 영국과 독일간에 벌어진 최대 규모의 해전이었다. 이 해전에서 영국은 학익진을 모방한 T자 진으로 국운을 건 대결을 벌였고, 그 결과 영국은 승전국이 된다. 이 전투에서 독일 구축함들의 어뢰공격은 거북선의 충돌전을 배운 것이라 하니, 이순신장군의 영향이 얼마나 큰지 실감이 간다. 태평양전쟁 당시 맥아더 장군이 반격에 나서서 필리핀 민다나오 섬에 상륙했을 때이다. 마침 미 함대의 항공모함들이 기지를 떠나 멀리 있었기 때문에 미 제 7함대는 필리핀 남단 레이테만 앞 스리가오 해협을 상유 12척 학익진으로 막아섰다. 그러자 북쪽으로 다가온 일본함대는 되돌아 갔다. 또 남쪽으로 진입한 일본함대는 모두 격침되었으며 이를 본 후속 함대는 급히 되돌아가서 맥아더는 위기를 넘긴다. 이 해전의 결과 일본해군은 태평양에서 사라졌고, 미군의 토쿄를 향한 항진은 학익진을 응용한'개구리뜀뛰기 상륙작전으로 이어진다. 세계사에 지각변동을 가져온 '거북선 + 학익진'의 해전 원리. 20세기 일본 해군은 충무공의 해전 원리를 연구 학습하는 과정에 직충 등을 오역하지 안았기에 충무공의 해전 원리를 제대로 해독해냈다. 그리고 청일 해전과 러일해전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며 그 영향으로 청나라와 러시아는 차례로 문을 닫는다. 그 후 일본 해군의 해전 원리를 승계한 영국 해군은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해군을 분쇄했다. 그리고 2차대전에서는 미국 해군이 학익진의 원리를 활용해 레이테만 해전에서 일본의 태평양 함대를 궤멸시켰다. 레이테만 해전의 원리는 곧바로 맥아더의 개구리 뜀뛰기 상륙작전으로 이어졌고, 란체스타 공군전술로 개발되었으며, 오늘날에 와서는 란체스타 마케팅 전략으로 이어져 우리와 함께 살아 숨쉬고 있다. 하지만 국내의 기존 저서나 드라마 등에서는 세계 해군들의 학익진 승계사 관련 연구가 빠져 있기에 우물안적 연구 가 되어있다. 19세기 말 일본은 유럽에서 군함을 도입하고 해전법은 충무공의 것을 도입하여 전투에 대비했다. 당시는 해군력이 중시되던 때였다. 군함과 거포는 유럽의 것을 배웠지만 해전법은 배울 것이 없었다. 이에 일본은 옛 해군사를 연구하여 임진왜란 때 일본해군을 연파한 거북선 및 판옥선의 합동전과 일시집중타 등에 대해 연구를 병행했다. 일본 해군은 원진법이란 것을 개발했는데, 이는 학익진이 원형으로 도는 모습이었다. 임진왜란때는 조선 함대가 제자리에서 좌우 정면 포들을 총가동 했는데, 청일해전의 일본은 스크류 추진식이었으므로 원진으로 돌면서 함포들을 동원했다. 청나라 함대 10척이 선수포 3문을 사용했다면 10 X 3, 일본함대는 10척이 선수 3 X 옆 5 X 후미 3문 을 동원한 것이다. (포는 쏜 후 식히는 시간이 있으므로, 식히는 동안 다른 쪽 포를 쏘는 것이 효율적. 이순신은 임진왜란 때 양 옆을 돌면서 쏘는 방식 사용) 일본해군은 청일 해전의 원진법을 발전시켜 러일 해전에서 丁자 진법을 선보였는데 서양 해군이 이를 배워 T자 진법이라 불렀다. 전문가들은 충무공이 함대를 이끌고 유럽으로 원정을 갔다면 펠리페의 아르마다(무적함대)나 프랜시스 드레이크의 영국 함대를 무찌를수 있었을 거라고 말을 합니다. 쓰다보니 책선전이 되었는데, 책이 좀,, 소설가 작품이 아니고 이순신장군을 연구하는 일반인들이 써서 흥미는 좀 떨어집니다. 하지만 사비를 털어 이순신장군을 연구한 분들이라고 하니 책 사볼 필요는 있어보입니다. 책을 보면, 이순신이 어떤 원리를 이용해서 23번의 128:12, 200:15등의 어처구니 없는 싸움에서 23전승에 적선 격침 및 대파 359대 0, 사상자 33,780 대 243(총 전적) 의 결과를 낳았는지 설명되어 있습니다. 아님,, 네이버 찾아보셔도 많이 나올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