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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및 스포有] '한공주',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게시물ID : movie_2699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커피후루루루
추천 : 5
조회수 : 161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4/26 01:01:55
<한공주>,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제목은 거창하지만, 까먹을까봐 리뷰 적어봐요. 사실 타 영화면 이건 이래서 좋고 저건 저래서 나쁘고 보세요~ 이런 식으로 흘러가기 마련인 리뷰인데, 그냥 개인적이고 소소한 의견을 적을까, 혹시 그것도 보자마자 적지 않으면 까먹을까 해서 바로 올립니다. 
**** 가감없는 리뷰이기 때문에, 굉장히 많은 스포가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한공주 포스터.jpg


불친절한 영화

<한공주>는 초장부터 굉장히 불친절합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취조당하듯 어른들에게 둘러 쌓여있는 한공주의 모습에서 출발합니다. 한공주가 피의자인지 피해자인지도 모른채 불량한 선생님과 떠나는 한공주의 모습까지 이어지면서 우리는 자칫 감정이입하기 힘들기도 합니다. 이런 불친절은 계속해서 이어지는데요. 과거와 현재를 스스럼없이 지나가기도 하고, 갑자기 과거보다 더 예전의 일이 나오기도 하고, 같은 공간안에서 보이는 환영은 과거와 현재의 공존까지 이어집니다. 이는 한공주가 얽혀있는 과거와 현재 그 자체를 보여줍니다. 게다가 음악을 왜 좋아하는지, 수영을 왜 배우는 지, 왜 그렇게 친구의 호의에 가시를 세우는 지에 대한 설명조차 없습니다. 단지, 그 이야기 안에서 나오는 조그마한 단서나 공주의 입에서 나오는 고백을 통해서 우리는 짐작 혹은 알아챌 수 있는 것이지요.

가시돋힌 감성

<한공주>에서는 소리와 색감표현이 매우 두드러집니다. 특히 이는 과거와 현재가 얽혀있는 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일단 음악을 좋아하는 한공주에게 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은 당연한 기법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강조된 사운드의 끝이 무엇을 가리키는 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가장 먼저, 스테플러의 '탕탕' 소리, 현재의 친구들이 블로그를 보여주기 위해 문을 닫을 때 낸 '쾅' 소리, 선풍기가 돌아가면서 내는 '딱딱' 소리. 모두 공주를 괴롭혔던 비극적 상황을 생각나게 하고 공주를 얽매이게 하는 소리를 가리킵니다. 영화 속에서 날카롭게 강조되는 이 소리들은 공주를 힘들게 하고 과거의 슬픔을 불러오게 합니다.
또한 과거와 현재를 불친절하게 오가는 이 영화에서, 시간 변경을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스토리 외에 색감표현이라 볼 수 있습니다. 푸르고 모노톤인 학교, 어른들의 무서운, 푸른 얼굴빛과 따뜻한 교실들은 대비됩니다. 

뱀파이어, 전염

'내가 뱀파이어가 되는 꿈을 꿨어. 그런데 내가 잘못한 건가?' 라고 말하는 자살한 친구의 환영. 과거의 양아치들이 괴롭혔던 스테이플러 찍기. 꼭 뱀파이어가 무는 자국과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소위 '뱀파이어'에게 물린 동윤이는 그들에게 전염된 듯 공주를 괴롭히는 데 일조하고 동조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공주 또한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살한 친구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침묵했던 공주. 그녀는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미안해했지만 침묵했고, 방관자가 되고 맙니다. 한공주는 물론 피해자로 고통받은 부분이 굉장히 크지만 그녀 또한 피의자(방관자)였을 때가 있었고, 이 영화는 피의자와 피해자의 구분을 흐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수영을 배우고 음악을 하며 현실을 이겨내려고 합니다. 하지만, 과거는 쉽게 그녀를 놓아주지 않고 사회는 방관하며 그 과거의 고통은 온전히 그녀의 것으로 남게 됩니다. 피의자들의 부모는 힘이 있고, 이기적이게도 그들의 잘못은 가려지고 공주만이 남아 고통받고 오해받는 상황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의 친구들은 공주에게 손을 내밀어 줍니다. 하지만 이것은 일시적인 것일 뿐 사건 그 자체를 마주한 친구들은 무기력하게도 공주의 손을 뿌리칩니다. 피붙이인 엄마와 아빠도 공주를 방관하고 오히려 괴롭히는 입장일 뿐입니다. 사회는 약자인 공주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지 않고, 과거를 뿌리치는 일 마저도 공주의 온전한 노력으로 밖에 해답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수영장 끝, 그곳엔 벽만 있었다.

공주는 죽을까봐, 호신용으로 수영을 배웁니다. 그녀의 꿈은 25m 수영장 풀을 모두 건너는 것인데 그녀의 현재 친구에게서 오는 반응은 차가운 현실을 대변이라도 하듯 무섭기만 합니다. '너가 25m 건너도 그곳은 벽이야.' 이는 과거를 벗어나기 위한 공주의 노력이 부질없는 것처럼, 사회에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는 뱀파이어처럼 피의자가 피해자를 만들고 그 피해자가 다시 피의자가 되는 사회의 비극과 맞물립니다. 

히틀러가 공산주의자를 탄압할 때, 나는 침묵했다. 공산주의자가 아니였기에.
히틀러가 사회주의자를 감금할 때, 나는 침묵했다. 사회민주자가 아니였기에.
히틀러가 대학, 신문, 유대인을 공격당할 때, 나는 침묵했다. 나의 일이 아니였기에.
히틀러가 교회를 공격하자 목사인 나는 저항했다. 
그러나 내 편을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마틴 니묄러 목사 -

<한공주>를 보자마자 이 이야기가 생각나더라구요. 피의자와 피해자의 구분이 흐려지고 우리가 방관할 때 고리를 끊을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침묵하지 않는 사람이 있어야 이 사회가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시국과 맞물려 많은 생각을 하는 영화 <한공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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