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처음 생긴 이성친구의 존재가 즐거웠다. 함께 밥을먹고 술을먹고 영화를보고 연극을 봤다. 난 주변 사람들에게 그대의 존재를 말하지 않았지만, 어느샌가 나와 그대가 사귀고 있냐는 질문이 나돌았다. 이건 썸이었을지도 모른다.
3. 무서웠다.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마약같았다. 갖고 싶었지만 잃어버리면 버틸 수 없을까봐, 그리고 이대로도 좋았기에 나는 그저 만족했다. 내 일상을 말하고 그대가 무엇을 하고있는지 듣는게 재미있었다. 가끔씩 튀어나오는 심오한 주제들로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것도 상당히 즐거웠다.
4. 1년이 조금 더 지났다. 그대에게 다른 이성친구들이 꽤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짐작은 하고 있었다. 그대는 충분히 매력있었다. 그래서 분주하게 노력했다. 그동안의 즐거움에 보답이라도 하듯 깜짝선물을 몇 차례 해봤지만 연락은 점점 줄어들 뿐이었다. 마지막 선물이자 미련을 건넨 날엔 시덥잖게 넘겨버리는 듯한 그대의 반응이 돌아왔다. 끝을 감지하고 집에서 펑펑 울어버렸다.
5.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소문을 들었다. 다섯시간이 넘게 답장이 오지 않은 날이었다. 분명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는데 심장에 경련이 일어났다. 나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소문을 듣자마자 함께 대화했던 방에서 나가고, 저장되어있던 애칭을 이름으로 바꿨으며, 개인적 연락을 끊었다. 이름만 건너건너 들어본 당신의 애인의 사진을 찾아보니 굉장히 예뻤고 잘 어울릴것 같았다. 당신의 애인에게 실례가 되고싶지 않았다.
6. 수업이 끝나면 그대는 공부를 하러간다고 하거나 집에 간다고 말을 하지만, 아는사람은 그대가 여자친구에게 간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다. 차라리 여자친구랑 놀러간다고 말을 해주지. 눈에 뻔히 보이는데 난 언제까지 모르는척을 해줘야 할까
7. 난 연애감정을 느껴본적이 없었다. 그래서 짝사랑을 하면 좋아하는 상대를 생각하는거니까 기분이 좋아야 할텐데 왜 슬퍼지는건지 솔직히 이해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너의 일상이 하나 둘 알려질 때마다 깨달았다. 어느새 멀어진 거리에서 나 혼자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바보같아서 내 자신에게 짜증이 난다. 모르는 그대의 일상이 귓가에 실릴때마다 심장이 죄어온다.
8. 이제 인정한다. 지금의 나는 그대를 좋아하고 있다. 밤마다 수강신청기간을 후회한다. 내가 듣는 교수님을 알려주는게 아니었다. 그러면 적어도 내 눈에는 띄지 않았을테고 이렇게 계속 눈앞에서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지 않아도 될 텐데
9. 이별이 무서워서 다가가지 못했고, 나를 더 드러내기 싫어서 다가가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난 일종의 이별을 경험했고, 내 감정을 더 잘 알게됐다. 꺼내지 못한 채 겪은 이별은 생각보다 슬프고 비참하다는것도 깨달았다.
10. 전 이제 어떡하죠? 공부도 손에 안잡히고요, 그렇다고 휴학하고 싶지는 않아요. 곧 엠티를 가는데 이와중에 같이 놀러가는거라고 설레는 제 자신이 한심해요. 이제 더 이상 그분이 생각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여자친구로 추정되는 사람과 연락하면서 미소짓는걸 봐도 마음이 미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런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지 조언해 주시면 안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