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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이 기록한 위안부'의 악몽
게시물ID : history_2706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라이온맨킹
추천 : 5
조회수 : 118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10/31 13:07:49
‘대구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10월26일, 대구시 중구 서문로에 있는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에서 문옥주 20주기 추모제와 추모 전시회를 연다. 그리고 11월12일 문옥주의 일대기를 쓴 모리카와 마치코 씨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를 마련한다.
 
 
ⓒ모리카와 마치코 제공 모리카와 마치코 씨(오른쪽)는 고 문옥주씨를 만나기 위해 대구를 18차례 방문했다.
ⓒ모리카와 마치코 제공 모리카와 마치코 씨(오른쪽)는 고 문옥주씨를 만나기 위해 대구를 18차례 방문했다.
 
 
ⓒ왐 제공 도쿄 ‘액티브 뮤지엄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자료관’에서 <지옥의 전장 버마(미얀마)의 일본군 위안소-문옥주의 발자취를 따라>가 전시 중이다.">‘다테 8400사단’ 소속 만달레이 위안소의 문옥주는 전쟁이 격화되자 약속한 돈을 한 푼도 받지 못한 채 군의 명령에 따라 다테 사단과 거의 같은 동선으로 이동했다. 1943년 봄 만달레이에서 아캬브-프롬-앙곤으로 적의 공습과 교전을 피해 전선을 이동하는 동안에도 군인들은 ‘위안’을 요구했고, 사령부가 허가를 내리면 명령에 따라야 했다. 군인들은 지옥 같은 전쟁터에서 무사히 재회한 것을 기뻐하다가도 바로 돌아서 ‘위안’을 요구했고, 천둥 같은 공습이 좀 잦아지기만 해도 마찬가지였다. 1945년 봄 미얀마에서 패배하자 태국(타이)으로 이동해 그곳에서 해방을 맞았다.
ⓒ왐 제공 도쿄 ‘액티브 뮤지엄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자료관’에서 <지옥의 전장 버마(미얀마)의 일본군 위안소-문옥주의 발자취를 따라>가 전시 중이다.">‘다테 8400사단’ 소속 만달레이 위안소의 문옥주는 전쟁이 격화되자 약속한 돈을 한 푼도 받지 못한 채 군의 명령에 따라 다테 사단과 거의 같은 동선으로 이동했다. 1943년 봄 만달레이에서 아캬브-프롬-앙곤으로 적의 공습과 교전을 피해 전선을 이동하는 동안에도 군인들은 ‘위안’을 요구했고, 사령부가 허가를 내리면 명령에 따라야 했다. 군인들은 지옥 같은 전쟁터에서 무사히 재회한 것을 기뻐하다가도 바로 돌아서 ‘위안’을 요구했고, 천둥 같은 공습이 좀 잦아지기만 해도 마찬가지였다. 1945년 봄 미얀마에서 패배하자 태국(타이)으로 이동해 그곳에서 해방을 맞았다.
 
 
 
ⓒ연합뉴스 고 문옥주씨를 비롯해 일본군 ‘위안부’들은 ‘위안’의 대가로 군표를 받거나 군사우편 저금을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돌려받지 못했다.
ⓒ연합뉴스 고 문옥주씨를 비롯해 일본군 ‘위안부’들은 ‘위안’의 대가로 군표를 받거나 군사우편 저금을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돌려받지 못했다.
 
 
 
 
 
출처 http://media.daum.net/foreign/others/newsview?newsid=20161031114250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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