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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bestofbest_27071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원숭이바라기
추천 : 154
조회수 : 24523회
댓글수 : 24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6/09/28 17:01:26
원본글 작성시간 : 2016/09/28 14:3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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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밖으로 빠져나온 발끝을 간지럽히는 차가운 공기에 눈이 떠졌다.


낯선 주변환경에 잠시 혼란스러움을 느꼈지만, 등뒤로 전해지는 너의 온기와, 내 어깨를 감싸고 있는 너의 팔의 감촉과 함께, 


전날밤의 기억도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분명 니 품에 안겨있는 나는 편안하고 따듯했지만, 좀처럼 지끈거리는 편두통은 가시질 않았다.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곤, 몸을 일으켜 손을 뻗어 니 침대위의 커튼을 들춰보니, 전날 내린 소복히 쌓인 눈에 반사된 햇볕이 눈이 부시게 쏟아져 들어왔다.


너 - 음..... 뭐야..... 


아주살짝 미간을 찌푸린 니가 눈을 떴고, 놀란나는 커튼을 다시 닫곤 너를 보았다.


나 - 깼어?


너 또한 잠시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서서히 깨어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독하게도 어색한 침묵이 잠시 방안을 매웠고, 


그런 침묵을 이기지 못하고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건 나였다.


나 -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아무것도 걸쳐지지 않은 몸으로 침대를 나서기 어색해 엉거주춤 밑에 흩어져있단 옷가지들을 주워입으려던 찰나, 너의 손이 나를 끌어당겼고, 


그렇게 너는 눈을 감은채로 나를 품안에 가두고, 잠깐만 더 누워있자며 나를 안았다.


커튼 밖의 풍경은 온통 눈으로 뒤덥혀 얼음처럼 차갑고 하얬고, 너의 방은 두꺼운 커튼에 가려 어두웠지만 따듯했다. 


나를 가만히 안고 있던 너의 손은 조금씩 나를 간지럽히기도, 움켜쥐기도, 희롱하기도 했고,


어디선가 희미하게 풍겨오는 라벤더 향에 마치 취하는듯 정신이 몽롱해지는 듯 했다.


[어떡하지..어떻게 된거지....이 방을 나가면 그땐 어떻게 되는거지....]  머리속을 헤집던 생각과 초조함과 이성은 이내 사라졌고,


내 심장은 또다시 빠르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내 호흡이 달라진걸 느낀 너는, 내 입술위에 입을 포갰고, 전날밤과 다르게 놀리듯 미소지으며 


나를 간지럽혔다. 우린 마치 늘 그래왔던 연인인양 다시 서로를 끌어 안았고, 조금전까지도 나를 괴롭히던 편두통은 이내 거짓말처럼 사그러들었다.








너와 나는 그날 밤의 일에 대해서 누구하나 먼저 말을 꺼낸다거나, 얘기를 하자거나, 관계를 정의짓자 말하지 않앗다.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것은 중요하지 않았고, 어쩌면 그런 이야기를 하는것을 극도로 피했을지도 모르겠다.


너는 종종 사무실에 놓여진 간식을 사진찍어 내게 보내며 자랑하기도 했고, 나는 길을 걷다 귀여운 동물이 보이면 그것을 찍어 너에게 보내기도 했다.


너와 나는 일이 일찍 끝난다거나 하면 으례 만나서 손을 잡고 걸어다니기도 했고, 밥을 먹으러 가기도 했고, 헌책방을 들르기도 했다.


차를 시켜놓고 마주앉아서 시시콜콜한 일상에 대해 이야기 하며 때때론 박장대소 하고 웃기도 했으며,


주말이 오면 너의 집에 가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영화를 보기도 했고,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어느순간 너와 하나가 되어 황홀하고도 공허한, 짜릿하고도 어두운 밤을 보내기도 했다.





나는 햇살이 잘 드는 날, 스타벅스의 소파에 마주 앉아 너와 함께 있는게 좋았다.


노트북을 열어놓고 작업을 하는 너를, 나는 읽고 있는 책 너머로 바라보곤 했고, 그런 내 시선이 느껴질때면 너는 짐짓 미소지으며 잠시 휴식을


취하기도 했었다. 


더이상 너는 지수의 습관이나 말버릇, 그애가 자주 가던 곳, 자주 하던 표정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았고,


나 또한 너에게 굳이 전 남자친구에게 받은 상처로 대화를 구걸하지도, 연민을 불러일으키지도 않았다.


가끔씩 니가 말없이 조용히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길때면, 니 시선의 끝에 밝게 웃던 지수가 보이는듯 해 가슴이 아려왔지만, 


굳이 지수를 지우려 너의 관심을 끈다거나 하기보단, 나 역시 허공을 바라보며 마치 다른 누군가를 떠올리듯 연기하곤 했었다.


그런 나를 니가 알아챌때면, 너는 조용히 내 손을 잡고, 마치 다 안다는듯이 손등을 어루만져주곤 했었다.


그걸로 나는 그저 좋았다.


사실은 난 이제 아무렇지 않다고, 너의 공허한 시선의 끝에 무엇이 있냐고 묻고싶을때도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럴 용기도 대답을 들을 자신도 그땐 없었던것 같다.


나는 그저, 가끔씩 보이는 너의 그 씁쓸한 표정이, 침묵이, 아련함이 조금씩 줄어들어 언젠가는 아예 보이지 않기를 무작정 기다릴수밖엔 없었다.






"언니!!!! 잘 지냈어????"


왜 생각하지 못했던걸까. 지수는 원래 오랜시간 연락이 없다가도 불쑥 튀어나오곤 하는 아이었단걸.


어쩌면 나도 모르게 지수가 두번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지수가 새로운 인연을 만나 아주 행복해져서, 내게 와 재잘재잘거릴 시간조차 없을만큼 알콩달콩한 연애중이기를 간절히 바랬다.


지수는 거의 1년만에 우리집 도어벨을 울리며 들이닥쳤고, 무방비로 있던 나는, 마치 폭격을 맞은듯 그저 얼수 밖에 없었다.


지수는 나와 참 다른 아이었다. 


작고 하얀 얼굴에 애교가 가득담긴 쌍커풀 없는 긴 눈꼬리는 늘 생글생글 미소를 띄고 있었고, 곧잘 애교섞인 콧소리를 내며 내 등뒤에 안기던,


붙임성이 좋은, 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강인한 성품을 가진 그런 동생이었다.


자존감이 낮은 편에 속했던 나로써는, 그런 지수앞에서 늘 작아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그걸 감추고자 늘 쿨한척 강한척 하곤 했었다. 


잠시 말을 잊고, 눈앞이 깜깜해짐을 느꼈고, 정말 수천가지 생각 수만가지 상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혹시 너와 나의 사이를 알고 찾아온건 아닐지, 아니겠지 아닐거야. 근데 왜? 그게 아니라면 1년내내 소식없던 지수가 왜 우리집 문앞에, 


치킨과 맥주를 들고 해맑게 서있는건데? 아니지... 너와 나의 사이를 안다면 이렇게 찾아오지 않았겠지... 아니겠지 뭐지.. 뭘까...


니가 나를 안았던 그 첫밤보다 심장은 더 빨리 뛰었고, 그럴수록 애써 당혹스러움을 감추고자 호들갑을 떨어보였다.


나 - "야! 너 이놈의 기집애 도대체 이게 얼마만이야!! 뭐야 연락도 없이 갑자기 이게!"


지수 - "히이잉 언니이이이~ 나 언니 보고싶어서 왔지 뭐긴 뭐야~ 하이고~ 세상 혼자 사는 언니는 여전하시네. 왜이렇게 또 살이 빠졌냐? 하여간 부러워부러워. 언니 먹이고 살찌울라고 내가 치킨을 가져왔지! 혹시 없을까봐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나좀 들어가도 되지??"


소란스럽게 등장한 지수는 여전했다. 


웃을때 반달이 되는 눈웃음도 여전했고, 예전보다 조금 통통해진 감은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뻤다. 그것도 아주 많이.


지수는 쿵쾅거리며 부엌으로 가서 가방을 내려놓고 제집인양 맥주 컵을 꺼내놓았고, 


그런 지수를 보며 나는 왠지 알수없는 불안감에 휩쌓였다.


간신히 올라 서있는, 깊은 호수위의 살얼음이 조각조각 깨져나가는 기분을 느끼며, 애써 침착히 웃으며 지수를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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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올린 글이 베오베까지 간 걸 보고 참 많이 놀랬어요.


진짜로 미숙하고 엉터리인 제 문체를 칭찬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날밤의 일 이후 있었던 일들은 더 시간을 두고 쓰려 했으나,


어제 많은 분들이 응원하고 기다린다 해주신 댓글을 보니, 하루종일 다음에 일어난 일을 정리하는데 쓰게 되더라구요.ㅎㅎ


오늘 이야기는 다소 지루할지도 모르겠어요.., 어제만큼의 감성이 글에 베었는지도 모르겠구요.


지금은 더쓰면 머리가 너무 복잡해질것 같아서 이만 줄일게요.


보잘것없는 독백임에도 불구하고, 


재밌게 봐주시는 분들, 공감해주시는 분들,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분들 다들 너무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출처
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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