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폴에서는 양극화를 찾기 힘들다고..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1965년 독립한 싱가포르
1차산업을 기반한 나라 살림은 가난하기 그지 없었다.
사회엔 부패가 만연해 희망이 보이지 않는 나라였다.
국가지도자 리콴유의 등장으로 싱가포르는 달라지기 시작
독재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강력하고 과감한 정책으로 부패를 척결해 나갔다.
부패방지는 국가 생존의 문제이다.
(이 말이 정말 절실히게 와 닿네요..ㅠㅠ)
우리나라도 천연자원이 없는 비슷한 상황
리콴유는 부패행위조사국을 만들고 부패와의 전쟁 시작
부패행위조사국은
상당한 혐의가 있을 경우
영장없이 체포.. 막강한 수사권을 부여
은행계좌, 주식지분, 동산구입, 지출상태 조사할 권한
기록 물품의 제출을 요구할 권한
수사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혐의자의 재산과 서류를 압수 수색할 수 있는
강력하고 포괄적인 권한을 부여
총리도 이에 대해 간섭할 수 없음
모든 재산과 서류를 압수 수색할 수 있고
주요 감시대상은 고위공직자와 재벌...
아무리 적은 액수라고
뇌물을 받은 사람은 징역형에 처했으며
재벌이라고
경제 발전에 힘쓴 공이 있더라도
선처해 주지 않았다.
부패한 공직자는
징역형과는 별도로
전 재산을 몰수
권력의 핵심부라도 예외는 없었다.
리콴유의 오른팔이었던
태 치앙완 장관은 24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음
억울하다고 호소했지만
리콴유는 면담 자체를 거부
결국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음
공직자가 지켜야 할 규율은
가혹할 정도로 엄격함
뇌물을 받지 않았더라도 받을 의도를 드러냈거나
이에 준하는 처신을 했을 때에도 범죄가 성립
(법이 행위 결과를 처벌하는 한계를 넘어 의사 표시만 해도
범죄를 인정한 것은 이례적임)
해외에서 뇌물을 받거나 비슷한 부정을 저질러도 처벌할 수 있도록 개정
또 1981년 개정에서는 뇌물 수수자에 대해
형벌과는 별도로 받은 뇌물 전액을 반환토록 하되
반환능력이 없을 때에는 그 액수에 따라 징역을 더 부과하고,
최고 5년의 징역에 병과되는 벌금도 1만 싱가폴 달러까지 올렸다.
내부 고발자를 철저히 보호
감시의 문을 열어 둠
고발인이 고발사건의 민·형사재판 증인으로 설 수 없도록 보호조치를 취함
고발인이 고의로 허위신고를 했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떤 처벌도 받지 않도록 보호에 만전을 기했다.
싱가포르 공직자는
비교적 임금이 높은 편
이것은 청렴성을 이끌어 낸 동기가 되었고
공무원들은 자신의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함
(상대적으로 우리나라는 복지도 잘 안되어 있고
사회가 불안정 하므로 공무원들은 한탕하려는 분위기가 만연... 악순환의 고리)
부패예방제도 실시
만약 설명할 수 없는 재산이 있다면
몰수가 가능
그리고 모든 공무원은
원칙적으로 선물을
주고 받지 않도록 규정함으로써
선물과 뇌물사이의 개념의 혼란을
원천 봉쇄함
모든 공무원은 무채무 선언
모든 공무원은 무담보채무가 월급의 3배가 넘을 수 없도록 함
(보직해임이 가능)
개인적인 채무 관계가
결국 부정,부패로 이어지는 핵심고리라고 판단한 것임
싱가포르의
강력한 부패척결의지로
아시아 청렴지수 1위이자
세계에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 1위로 뽑힘
싱가폴의 청렴국가 비결에 대해서는 많은 부패국가들이 연구 중이
한국 국가청렴위원회 자료에 의하면,
부패행위조사국의 뛰어난 역할과 강력한 부패방지법 운영 덕분이라고 한다.
싱가포르엔
10만개의 유럽기업이 활동하고 있는데
그 중 한 기업..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라서
싱가포르로 왔다고 함
이러한 싱가포르의 부패방지법은
사회적으로 너무 살벌하다는 비판도 없지 않으나
법과 원칙을
총리는 물론
모든 고위공직자 및 공무원에게
실효성 있게 실행함으로써
아시아 청렴국가의 기반이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