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가 한강유역에서 공주,, 부여로 옮겨가는 것을 보면 꼭 등장하는 팩트가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공주로 갈때는 공주의 유력 지방세력과의 제휴, 부여로 옮겨 갈때는 부여의 유력 지방세력과의 제휴가 있었던 거죠
즉, 근세나 근대에서 나타나는 중앙집권적인 국가의 체제가 갖추어지지 않은 고대 백제의 체제구조는 마치 중세유럽과 같이 유력한 지방세력이 전국에 산재하고, 그의 대표자적이면서도 그 중에서는 가장 강한 국왕이 존재하였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신왕이 무릎을 끓었을 때도 백제는 멸망하지 않았고, 개로왕이 고구려군에게 사로잡혀 죽임을 당하였을 때도 '백제왕의 주세력권'인 한강유역만을 상실했을 뿐,, 문주왕은 백제를 존립시켰습니다 660년 의자왕의 사비성이 무너졌을 때도,, 의자왕은 다른곳으로 옮겨가 항전을 이어갔을 뿐만 아니라, 공식적으로 백제가 멸망된 후에도 백제 부흥운동은 지속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드는 생각이.. 사실, 후대에 와서 '백제 부흥운동'이라고 명명되어진 것이지,, 실제로는 '백제의 영토 탈환전쟁'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위에 전제를 한 것에 따라 생각해 봤을때 사비성의 함락은 과거 한강유역을 상실했을 때처럼 부여지방을 잃었을 뿐, 다른 백제 지역은 건재하고 있었으니깐요 (물론 웅진지역의 유력 세력이 중국으로 망명했기 때문에 부여, 공주, 한강 유역 모두 상실)
물론, 한강유역이나 부여를 대신할 만한 존립기반으로 선택되어질 만한 곳도 없었고, 백제 지방 유력자들의 분열 또한 있었으며,, 백제의 잔존 세력을 규합할 만큼 강력한 지도적 위치에 있어준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백제의 영토 탈환이 실패한 것이지,, 백제 부흥운동이 실패한 건 아니지 않을까요? 흔히들 알고 있는 660년의 백제 멸망은 663년으로 정정되는게 맞지 않을까요? 만약 663년까지 줄기차게 탈환전쟁을 하지 않고, 일본과 한반도 남서부를 중심으로 자리를 잡고 수성전을 하였다면,, 백제가 존립할 수도 있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요즘같이,, 역사도 모르도 까부는 일본놈들이 백제를 벗어나 성장하지도 못했을거라 생각되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