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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걸 써보고 싶어서(장르소설 주의)
게시물ID : readers_2717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R18
추천 : 0
조회수 : 366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6/12/20 23:30:52
새로 시작해본 글입니다.

차기작으로 몇 가지 고려 중인데, 맨날 생각하는 어두운 거 말고 뽕빨물처럼 가볍게 갈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일단 시작해보게 됐습니다.

제목은 '메이드 마왕님'입니다.

읽어보시고 피드백 주시면 그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프롤로그


디나 유벨서트는 난처한 표정을 지은 채 단단해 보이는 나무문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녀의 온몸을 감싸고 있는 것은 단정함의 상징인 흑과 백. 한 갈래로 땋은 크림색 머리카락과 비취를 닮은 눈동자, 그리고 눈밭에 떨어진 산수유 열매를 연상케 하는 피부와 입술은 우중충한 석재 복도를 배경으로 완전히 붕 떠 있었다.

원래부터 쳐진 선한 눈매는 완전히 주저앉아 울상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풍만한 가슴 앞에 두 손을 꼭 모아 쥐고, 벌써 오십 바퀴는 더 제자리를 뱅뱅 돌았다.

그녀를 난처하게 만드는 건 시녀장인 헤세트 여사의 지시였다.

헤세트는 디나에게 ‘마왕님’의 처소에 새로 들인 커다란 거울을 청소할 것을 명했다. 자신들이 섬기는 마왕의 처소를 청소하는 건 시녀들이 응당 해야 하는 일이지만, 천성이 유약하고 겁이 많은 새내기 시녀에게는 버거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제법 오랜 시간 일을 해온 베테랑 시녀들도 마왕의 처소를 청소하는 것에는 난색을 표했다.

마왕 ‘뮤딘 샤히로티 에페이발트’의 성깔이 보통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물론 성질머리 자체가 온순한 편은 아니었지만, 그를 향한 일반적인 시각에는 상당히 왜곡된 부분이 있었다.

그는 인간 나이로 대략 20세가 되기도 전에 마족들이 사는 세계를 평정했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그가 세상의 절반에 해당하는 마계를 순식간에 꿀꺽한 과정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저 그가 그런 일을 해치울 정도로 잔악하고 냉철하며, 작은 것을 희생하는 것을 거리끼지 않는다는 소문이 퍼질 뿐이었다.

그리고 이제 갓 마왕성에 입성한 디나 역시 그 뜬소문을 믿고 있었다.

‘으으... 갑자기 마법으로 날 돼지로 만들면 어쩌지...? 다른 애들처럼 재빨리 다른 곳을 청소하겠다고 나설 걸 그랬어...’

그녀는 이번에도 우유부단하고 남 앞에 나서길 주저하는 성격이 발목을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녀와 같은 시기에 시녀가 된 동기들은 헤세트가 시키기도 전에 선배들과 의논하여 자기들이 할 일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숫기도 없고 남에게 폐가 될까 질문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디나에게는 그것조차 버거운 일이었다.

그 결과, 그는 시녀들 중 그 누구도 하고 싶어하지 않는 ‘마왕님의 처소를 청소하는 일’을 떠맡게 된 것이었다.

그녀는 보기 좋게 부풀어 오른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했다간 헤세트의 불호령이 떨어질 게 뻔했다.

그녀는 우유부단한 성격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마왕의 손에 돼지가 되는 것과 헤세트에게 혼나는 것 사이에서 수십 분 동안 고민하고 있었다.

추가로 삼십 바퀴를 더 돈 뒤, 무작정 고민하고 있다가는 이도저도 안 될 것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 디나는 주먹을 굳게 쥐며 결심했다.

‘청소하러 온 사람을 다짜고짜 돼지로 만들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돼지가 되어도, 나중에 다시 되돌려 달라고 하면 되지...!’

그녀는 조그맣게 기합을 내뱉고 문고리를 붙잡았다.

그러나 혹시 모를 적의 침입을 대비해 최대한 두껍게 만든 묵직한 나무문은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여자치곤 큰 키임에도 완력은 형편없는 수준인 디나는 한참을 쩔쩔 매고서야 마왕의 방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녀는 깨끗한 물과 걸레가 담긴 나무 양동이를 입구 근처에 내려놓고


“우와... 나무 냄새...”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탄성이 섞인 말을 내뱉었다. 마왕성에 가장 넓은 그 방에는 고급스런 가구들이 들어차 있었다. 대부분 어두운 갈색으로 빛나는 가구들에서는 알싸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은은한 향기가 스며 나오고 있었다. 마왕의 방은 2인 1실인 시녀들의 방보다 적어도 열 배 이상은 커보였다.

디나는 자기 할 일도 잊은 채 마왕의 방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직책에 비해 검소한 듯 보이는 침대, 침실인지 도서관인지 헷갈릴 정도로 빼곡히 들어찬 어마어마한 수의 책들. 열대여섯 개가 넘는 책장들 한 가운데에 놓인 널찍한 책상 위에는 몇 권의 책과 지도들이 어지러이 펼쳐져 있었다.

디나는 호기심에 지도들 위에 놓인 나무 조각 몇 개를 집어 들었다가 조심스레 제자리에 두었다.

시녀들이 청소를 꺼리는 것 치고, 마왕의 방은 제법 잘 정돈되어 있었다. 디나가 상상했던 왕의 방이 아니었다. 그것은 학자의 방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디나는 생전 처음 보는 고급 가구들을 구경하며 방을 휘젓다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퍼뜩 헤세트의 지시를 떠올렸다.


“이게 그 거울인가보네... 어휴, 뭐야. 너무 안 예쁘다.”


디나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키만큼이나 높다란 전신거울의 테두리는 검은 색과 회색의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무질서하게 뻗은 가늘고 굵은 줄기들이 서로 얽히고 섥혀 타원형의 띠를 이루고 있었는데,

디나는 그 거울을 보면서 무심결에 내다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시녀장의 지시를 어길 수는 없었다. 거울이 얼마나 찝찝한 모양새를 하고 있든 간에, 그걸 빨리 닦고 나가기만 하면 마왕의 손에 돼지가 될 일도, 헤세트에게 꾸지람을 들을 일도 없었다.

그녀는 입구 근처에 놔뒀던 양동이를 가지고 와서 걸레를 끄집어 낸 뒤 물기를 꼭 짜냈다.

매끈한 거울에 비해 테두리를 닦는 건 성가신 일이었다. 이곳저곳에 뾰족하게 솟은 돌기가 걸레의 올을 잡아당겼다. 게다가 복잡하게 뒤엉킨 금속들 틈바구니처럼 닦기 어려운 곳에는 하나같이 먼지가 잔뜩 쌓여 있었다.

불어도 보고, 걸레 끝을 꼬아서 밀어서 넣어보기도 하고, 새끼손가락을 밀어 넣어보기도 했지만 헛수고였다. 그렇게 제대로 닦을 수 없는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보니, 디나의 인내심은 곧 바닥났다.

그녀는 잔뜩 부루퉁해진 얼굴로 거울을 쏘아보았다. 어찌나 애를 썼는지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디나는 씩씩거리며 화를 삭이다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애초에 거울이란 것은 사치품이다. 평민들 사이에서는 조그마한 손거울 하나만 해도 제법 귀한 물건에 속한다. 그런데 온 몸을 다 비출 수 있는 크기의 거울이라니!

디나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비록 귀족의 자제들처럼 꾸미지는 않았지만, 그녀에게는 순수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집안내력 탓인지 가슴도 또래 여자들보다 훨씬 컸고, 허리는 잘록했다. 조금 칠칠치 못한 성격을 감추고 화장만 한다면 충분히 뭇 남성들에게 호감을 얻을 수 있는 인상이었다.

그러나 키가 문제였다. 디나의 모습이 거울에 전부 비치려면 허리를 숙이거나 다리를 굽혀야 했다.


‘엄마는... 키까지 이렇게 크게 낳아놓을 건 뭐람...?’


결정적으로 디나가 인기를 끌지 못하는 이유는 가슴 크기만큼이나 평균을 훌쩍 뛰어넘는 키 때문이었다. 또래 여자아이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다. 종종 남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내려다보는 경우도 있었다. 그녀는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한숨을 폭 쉬었다.

디나는 테두리를 닦는 것을 포기하고 거울의 표면을 닦기 시작했다. 물기를 꼭 짜낸 걸레로 거울을 닦으면서, 그녀는 묘한 감각을 느꼈다. 분명 단단해야 할 거울의 표면이 우유를 지나치게 많이 섞은 빵 반죽처럼 질척거리는 듯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정신이 몽롱해지며 졸음이 몰려왔다.


“두 번째 손가락으로 콩, 콩, 콩. 뱅글뱅글 도는 건 시트릴리카”


갑자기 귓가에 흘러들어온 속삭임에 화들짝 놀랄 수도 없었다. 이미 디나는 반쯤 풀린 눈으로 거울을 바라보며 팔을 휘젓고 있을 뿐이었다. 키득거리는 웃음소리를 마지막으로, 디나는 마치 잠드는 것처럼 스르르 정신을 잃었다.


*


뮤딘 샤히로티 에페이발트, 이름보다는 ‘마왕’이라는 직함으로 불리는 일이 잦은 청년은 잔뜩 성을 내며 자신의 처소로 향하는 계단을 걸어 올랐다.

반쯤 오기로 시작한 마계 평정 작업이 끝났을 때만 해도, 그는 이제 그 누구도 자신을 귀찮게 하지 않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전 세계의 절반, 35개의 왕국, 제국, 공화국을 무릎 꿇게 한 희대의 패왕을 찾아온 것은 과중한 업무와 조금만 긴장을 풀어도 반란을 꾀하는 식민지들뿐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마지막 왕국이 패배를 선언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뮤딘이 돌아오기도 전에 대관식을 거행해버렸다. 지친 몸을 이끌고 고향을 찾은 뮤딘을 기다리고 있는 건 휴가를 떠나버린 부모의 편지와 유행에 한참 뒤떨어진 모양새의 왕관뿐이었다.

게다가 각 나라들이 딴 마음을 먹지 못하게 왕가의 혈족이나 귀족들의 자제를 볼모로 잡자는 가신들의 조언을 수락한 탓에, 지금 마왕성에는 이해관계가 뒤얽힌 각 종족의 차기 수장들이 대거 모여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금방 끝마친 국무회의에서 가장 시급한 안건으로 다룬 것은 용족의 공주와 수인족의 왕녀가 한판 붙는 바람에 박살이 나버린 성곽의 보수였다. 그 외에도 해결해야 할 일은 산더미 같았다. 국경선이 확장되는 바람에 인간들의 침략을 막아내는 일은 더 어려워졌다. 변경에 위치한 국가들에게 제대로 경비하라고 일렀지만, 돌아온 건 ‘여차하면 항복하고 수도까지 가는 길을 안내해 주겠습니다.’라는 답장이었다.

뮤딘의 나이는 87세. 염마족의 수명으로 따지면 젊은 축에 속하는 나이였지만, 그는 새로운 마계의 제왕이 된 뒤 적어도 100살은 더 먹은 것 같다고 느꼈다. 특히 요즘은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신물이 올라와 죽을 지경이었다.

주변에 있는 인간들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매일 국무회의며 비상소집회의를 열어 뮤딘을 닦달했다.

뮤딘은 자신의 방문이 열려 있다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잔뜩 성이 난 상태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그가 방 한가운데에 서서 팔을 쭉 뻗자, 나무문은 아무 소리 없이 부드럽게 닫혔다.


“으으으으아아아아아아!”


뮤딘은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괴성을 질렀다. 만약 누가 본다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 떼를 쓰는 아이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성인에 가까운 나이였지만 그의 키는 사춘기 초입에 들어선 아이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그게 그의 가장 큰 콤플렉스였다.

국무회의에 나서기 직전 시녀들이 가지런히 정리해줬던 검은 머리가 까치집이 됐다. 그의 푸른 눈동자 안에서 광선이라도 쏘아져 나갈 것처럼 푸르스름한 기운이 요동쳤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머리를 헝클며 소리를 지르다가, 거울 앞에 놓인 나무 양동이를 세차게 걷어찼다. 무심결에 마력을 심어 찬 바람에, 양동이는 거의 직선에 가까운 궤도를 따라 날아가 벽에 부딪혀 박살났다.

세차게 들썩이던 뮤딘의 어깨가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후우... 후우... 뭐야... 누가 양동이 같은 걸 여기다 가져다 놨어?”


그는 그제야 자신이 걷어찬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뮤딘은 바닥에 떨어진 걸레를 주워들고 아무렇게나 문질러 얼룩진 거울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는 걸레에 아직 물기가 남아있는 것을 확인하고 얼룩진 부분을 닦기 시작했다.


“에이, 누가 보낸 거야? 진상품을 보내려면 좀 실용적인 걸 보낼 일이지.”


마계 평정 후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선 탓에 성격이 난폭하고 괴팍하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지만, 뮤딘은 원래 그리 모나지 않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정말로 성격이 괴팍했다면, 양동이와 바닥에 떨어진 걸레를 보는 순간 당장이라도 왕의 침소를 어지럽힌 자를 찾아 벌을 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애초부터 그런 자잘한 것에 신경을 쓰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작금의 과중한 국무에 지나치게 부담을 느끼는 것과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었다.


“양동이 괜히 걷어찼네. 물기가 없어서 잘 닦이질 않잖아.”


그는 힘으로라도 얼룩을 지우려 팔에 힘을 주었다. 몇 번을 문지른 순간, 그의 귓가에 작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두 번째 손가락으로 콩, 콩, 콩. 뱅글뱅글 도는 건 시트릴리카”


뮤딘은 재빠르게 걸레를 집어던지고 거울과 거리를 두었다. 그는 자세를 낮추고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손끝에 마력을 집중시켰다.


“누구야?”


그러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뮤딘은 자신의 방에 펼쳐놓은 결계에 접속해 수상한 기운을 느끼려 했지만,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었다.


“미치겠네. 진짜 돌아버리기 일보직전인가봐. 환청까지 들리다니.”


그는 거울로 다가가 소매를 잡아당겨 쥔 후 살짝 침을 발랐다. 그리고 그걸 거울에 남은 아주 작은 얼룩에 가져다 댄 순간.


“돌아오지 않아, 시트릴리카. 하늘하늘 떨어지는 꽃잎은 떠나는 사람의 발자취.”

“뭐야 이게...”


또 다시 들려온 환청의 의미를 되새길 틈도 없이, 뮤딘은 단숨에 정신을 잃었다.


*


정신을 잃었던 뮤딘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자신이 차가운 돌바닥에 널브러져 한참을 자다 깼다는 걸 깨달았다. 평소와 다르게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그는 속으로 온갖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망할 놈의 정신적 스트레스가 평생에 감기 한 번 걸릴까말까 한 염마족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다니!


“젠장, 왕관을 어디다 갖다 버리든가 해야지...”


숫제 목까지 쉬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의 목소리 같았다. 뮤딘은 헤세트에게 따뜻한 율리스 차를 부탁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몸을 일으켰다. 초점이 잘 맞지 않는 눈으로 앞을 보려 애썼다. 그러자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눈을 가늘게 뜨고 그 모습을 들여다보던 뮤딘은 석연치 않은 점을 발견했다.


‘거울이 가로로 길쭉했던가...? 분명 세로였는데... 아니, 그건 그렇고 나는 지금 몸을 일으켰는데 왜 저기에는 누워있는 것처럼 보이지?’


그는 무심결에 고개를 돌렸다. 세로로 길쭉한 거울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얼룩덜룩한 거울 표면에 비친 여성의 모습도.

잠시 거울을 응시하던 뮤딘은 황급히 자신의 몸을 더듬었다. 다소 마른 듯한 근육질은 오간데 없고 말랑말랑한 살이 그의 손길을 반겼다. 게다가 가슴팍에는 무게추 이외에 다른 용도로 쓸 수 없을 것 같은 물컹한 덩어리가 매달려 있었다. 머리칼, 허리, 다리, 그리고 사타구니 사이에 있어야 하는 중요한 물건까지! 뮤딘이 자신의 몸에 남아있어야 하는 것들 몇 가지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황망한 눈으로 바닥에 널브러진 작은 체구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검은 머리, 여전히 앳된 인상이 남아있는 얼굴. 아버지가 물려준 망토를 걸치기엔 너무 좁았던 어깨까지. 그것은 뮤딘이 인식하고 있던 자신의 모습 그대로였다.


“으음...”


바닥에 쓰러져 있던 뮤딘이 눈을 떴다. 뮤딘은 이제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을 자신이라고 불러야 할지, 아니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의 몸에 들어와 있는 자신을 뮤딘이라고 불러야 할지 헷갈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바닥에 쓰러진 뮤딘은 눈을 뜨자마자 배시시 웃으며 한 마디를 툭 내뱉었다.


“헤헤... 누가 거울을... 깨끗하게... 닦아놨네...?”


그 말을 남긴 뮤딘은 다시 고개를 쳐박고 잠들었다. 그와 동시에 여자의 몸에 갇힌 뮤딘의 머리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완벽하게 정리하고, 이해하고, 그것을 현실로 받아들였다.

그의 입에서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절규가 터져 나왔다.


“으으으으으으아아아아아!!!! 이이런....!!!! 제에기이라아아아알!!!!”

출처 글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는 글로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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