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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마기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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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추월색
추천 : 0
조회수 : 27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12/24 12:3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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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이름이란 것의 성질은 참 이상하다. 보통 사물의 명칭은 그것의 기능이나 특징을 따서 지어진다. 벌레를 죽이는 약이라 살충제. 각이 네 개라 사각형. 말을 전하는 기계라 전화기. 문제는 사람의 이름이 그 사람의 특징이나 자아 같은 ‘본질’이라 부를만한 것이 미처 만들어지기도 전에 붙여진다는 것에 있다. 그래서 보통 이름은 조부모나 부모의 바람이 되곤 한다.

 

법 범(範)에 헤아릴 규(揆).

변호사가 최고의 직업이라 여겨지던 시절 붙여진 이름이다.

나의 본질과는 관계없이 온전히 타인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건만, 우리는 평생 그 이름에 얽매여 살아간다. 어떤 식으로건 자신의 이름에 영향 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하다못해 인수, 정수, 상수, 진수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들은 수학시간에 한번이라도 이름이 더 불리기 마련이다. 그렇게 때론 부모의 의도대로, 때론 부모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이름은 우리들의 삶에 영향을 준다.

나의 이름처럼 바람이 노골적으로 보이는 이름도 있는 반면, 이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당최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이름도 있다.

 

이마기

 

투박하게 예쁘고, 세련되게 촌스러운, 어느 나라 말인지조차 짐작하기 어려운 이름이었다. 처음 마기를 봤을 땐 특이한 이름을 가진 예쁜 아이, 라는 생각밖엔 안 들었다. 보통 그 또래 아이들이 그렇듯 우리 반 또한 남녀가 섞여 사이좋게 어울려 다니는 일은 없었고, 그때 그녀의 이미지로는 그렇게 큰 사건의 주연이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건의 전조가 나타난 것은 4월초, 서로에게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아직은 그래도 서먹서먹한 그런 시기였다. 마기는 그전까지만 해도 예쁘단 것 외에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아이였다. 우리 반은 한 달에 한 번씩 자리를 바꾸었고, 마기는 장난기 많고 인기 많은 어떤 남자아이의 짝이 되었다. 그 녀석은 마기와 짝이 되자마자 마기를 마귀할멈이라며 놀리기 시작했다. 발음이 비슷하다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이유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들 마기를 마귀할멈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 별명이 반에서 유행하게 된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 별명을 지은 마기의 짝 ‘그 녀석’은 인기 있는 아이였고, 둘째 마기가 예뻤으며, 셋째 마기가 또래에 비해 성숙해(그녀는 우리 반에서 누드화를 보며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아이였다) 왠지 친해지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그동안 마기는 다가가기 어려운 아이였는데, 마음껏 놀릴 구실이 생긴 것이다.

 

성숙했던 마기는 그런 놀림에 늘 어른스런 미소로 답했지만, 원하는 반응이 나오지 않자 아이들은 오히려 더 지독하게 마기를 놀려댔다.

 

그러던 어느 미술시간이었다. 조별과제는 아니었지만 준비물은 분담했기 때문에 선생님은 4인 1조로 짝을 지어줬다. 마기는 짝이었던 그 녀석과 당연하게도 같은 조가 되었다. 하지만 그 녀석은 자신의 준비물이던 핑킹가위를 ‘마기가 만지면 마귀할멈병이 옮는다.’는 유치한 이유로 빌려주지 않으려 했다. 그러자 마기는 나에게 왔다.

 

마기가 왜 하필 나에게 왔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단지 핑킹가위가 준비물이던 아이 중 가장 가까웠기 때문인지, 내가 마기를 마기라고 불러주던 몇 안 되는 아이들 중 하나였기 대문인지, 그녀와 마찬가지로 나이에 비해 성숙했던 내게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인지, 혹은 그 전부일지, 전부다 아닐지도 모른다. 10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버린 지금은 김 서린 창문 너머로 먼 산 바라보듯 그랬던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이나 해볼 뿐이다.

어쨌거나 그녀는 내게 가위를 빌리러 왔고, 나는 순순히 가위를 그녀에게 내주었다. 모든 일의 원흉이던 그 녀석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것 또한 뿌연 창문 너머로 해보는 추측이지만, 그 녀석 또한 그 녀석의 방식대로 마기를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미술 시간이 끝나고 쉬는 시간, 그 녀석은 내게 와서 광고하듯 크게 말했다.

“내 가위 줄테니까, 마기가 만져서 더러워진 니껀 버려버려.”

아이들이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어쩌면 좋을까. 마기가 난처해하는 나를 보더니 다가왔다.

“유치한 소리 좀 그만해. 깨끗하게 썼으니까 신경쓰지마, 범규야.”

 

마기의 목소리는 다정했다. 믿고 있는 것이다. 유치하고 저질스런 반 아이들과는 다르게 어른스럽고 마기를 마기라 불러주는 나만은 자신의 편일 거라 굳게 믿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의 시선은 더욱 내게 쏠렸다. 누구의 편을 들어주어야 하는 걸까. 답은 정해져 있었다.

 

나는 내 가위를 들고 교실 뒤편으로 가서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아이들의 그 지독한 놀림에도 기분 나쁜 기색 한번 보이지 않던 마기는 그 길고 긴 초등학교의 쉬는 시간 내내 눈물을 쏟고도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결국, 선생님의 귀에도 자초지종 이야기가 들어가게 되었고, 나와 그 녀석의 부모님은 학교에 불려와 마기와 마기의 부모님에게 사과를 드려야만 했다.

왜 좀 더 멋진 남자가 되어주지 못했냐는 질타에 변명하자면 그때 우리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10살은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할 줄 몰라서 머리끄덩이나 잡아당기고 여자아이와 스캔들이 나면 인생이 끝나버리는 줄 아는 그런 나이이다. 결국 변명이고 핑계요, 자기합리화일 뿐이지만 성숙해봐야 열 살 이었던 나는 아이들의 시선을 견뎌내고 마기를 구해주기엔 너무 어렸다.

 

사건은 그런 식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더 힘들어진 쪽은 마기였다. 그 뒤로 대놓고 마기를 놀리지는 않아도, 마기에게 물건을 빌려주는 아이는 없었다. 아이들은 대부분 놀리는 쪽보다는 아예 없는 사람 취급하는 편을 택했고, 어쩌다 불러야만 하는 일이 생기면 마기인지 마귀인지 모를 애매한 발음으로 마기를 부르곤 했다. 한번 배신자로 낙인찍힌 열 살로 살아가는 것은, 오리 무리에서 살아가는 백조만큼이나 힘든 것이었다.

 

10살은 그토록 유치하고, 철없고, 잔혹한 나이였다.

 

가위사건이 있고 몇 주 동안 나는 마기와 눈조차 마주치지 못했다. 그리고 한 달쯤 되었을까 마기는 점심시간에 내게 줄 것이 있다며 조용히 날 불렀고, 포장지도 뜯지 않은 가위와 편지를 주고 갔다.

 

집에 돌아와서 읽은 편지에는 깨끗이 씻고 만진 가위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과 가위를 빌려달라고 해서 미안하다는 말이 적혀있었다. 결국 마기도 성숙해봐야 꼬맹이인 열 살짜리 소녀였던 것이다. 나는 그제야 작고 여린 소녀에게 무슨 짓을 해버리고만 것인지 깨달았고 부랴부랴 마기에게 사죄의 편지를 썼다.

 

하지만 마기는 다음날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전해주고 하면 전해줄 수야 있었겠지만, 새 출발을 하고자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가는 소녀의 발목을 이제서 사죄의 편지 한 장 전해주기위해 붙잡을 만한 염치는 내게 없었다.

 

그렇게 마기와 나의 인연은 끝났다. 영화처럼 재회하는 일도, 소설처럼 건너건너 소식을 전해 듣는 일도 없이.

 

죄책감인지 아쉬움인지 모를 감정 때문에 나는 아직까지도 마기와의 일을 종종 떠올리곤 한다. 싸이월드, 네이트온, 페이스북 같은 SNS가 유행을 할 때마다 친구 찾기 서비스에 ‘이마기’란 세 글자를 쳐보았지만 원하는 검색결과가 나오는 일은 없었다.

 

어쩌면 마기의 이름을 가지고 마기로서 살아가던 소녀는 내가 가위를 버리던 그날 죽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출처 http://thetimelord.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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