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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 시간여행이 가능해도 히틀러는 죽일 수 없다.
게시물ID : readers_2722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추월색
추천 : 1
조회수 : 41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12/26 13:5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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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모든 내가 일기를 도둑맞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애당초 일기라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도둑질하거나, 도둑맞았을 때 그것을 찾으러 멀리 떠날 만큼 가치 있는 것인가 싶겠지만, 내게 그 일기는 나의 존재만큼이나 소중한 것이었다.

일기가 사라진 것은 3개월 전, 그러니까 햇살은 따뜻하지만 산책하기엔 쌀쌀했던 그런 시기였다. 사람들은 이 시기를 초봄이라는 귀여운 이름을 붙여 반기지만, 난 어려서부터 ‘초봄’을 두려워했다. 언젠가는 그 ‘초봄’에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말 것이라 늘 생각했었기 때문에, 일기가 사라졌을 때 나는 결국 초봄에 일어나야할 일이 일어나고 말았구나 싶었다. 사실 정확히 언제 일기가 사라졌는지는 나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발견한 것이 초봄이었다는 것이다. 어떤 것은 아는 것만으로도 일이 시작되곤 한다. 다중차원론을 믿는다면 일기를 도둑맞은 것을 내가 모르는 세계와, 애초에 일기를 도둑맞지 않은 세계를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두 세계는 그 사실 자체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부분에서 동일하다. 결론적으로 중요한 것은 내가 초봄에 그것을 알아 차렸단 것이다. 다른 두 세계와는 달리 이곳의 나는 일기를 찾기 위한 여행을 준비했다. 알아버린 이상 찾으러 갈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다른 아이들에 비해 말이 서툴렀다. 보통의 세상이 돌아가는 속도는 내게 너무 빨랐다. 한참 뒤에서나 적절한 말이 떠올라서 말을 하려하면 이미 그 주제는 공기 중으로 흩어져 버린 지 오래였다. 그렇게 오갈 데 없어져버린 말들을 하나 둘 적기 시작하면서 탄생한 일기이다. 처음엔 짤막한 글 조각을 적던 것이, 나중에는 글 자락이 되고, 세상에 대한 나의 모든 감정과 반응을 적기에 이르렀다. 내가 갑작스레 죽는다면 그것이 나를 대신할 수 있을 정도로 일기는 잘 인쇄된 나의 복사본이 되었다. 아니, 나는 말이 없는 아이었으니 일기가 나보다 훨씬 더 나다웠을지도 모르겠다.

일기는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쓰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아마도 술이 부리는 마법 때문이었을 것이다. 술을 마시면서부터 나는 오갈 데 없어져버린 말들을 일기가 아닌 세상에 뿌리기 시작했다. 이미 늦어버린 말들이었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미 술에 절어버린 신입생의 입을 막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의외로 그 입에서 튀어나온 말들이 사람들의 마음에 와 닿았다는 것이 중요했다. 주제를 주도할 수 있으면 생각이 느린 것은 아무 관계가 없었다. 새로 생긴 주제에 알맞은 말을 고르려고 노력하는 대신 그저 내가 생각한 말을 내뱉고 사람들이 거기에 따라오길 기다리면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나는 다시 글 쓰는 것보다는 말을 많이 하는 평범한 이로 돌아갔고, 19살까지의 일기는 버리지 않고 소중히 보관해두었다. 그렇게 소중한 것을 어쩌다 도둑맞아버린 것일까. 그보다 어쩌다 알아차리고 말아버린 것일까.

따지고 보자면 그것은 안경 때문이었다. 새로 산 지 한 달도 안 된 그 안경은 렌즈를 닦던 중 만화처럼 ‘뽀각’ 소리를 내며 허망하게 부서졌다. 오랜만에 맨눈으로 접한 세상은 맑았다. 기분 탓인가, 하고 부서진 반쪽짜리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하면서 발견한 것인데, 안경에는 색이 있었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강한 색은 아니었지만, 붉은 테의 영향을 받은 렌즈는 조금이지만 분명히 세상을 더 발그레하게 비추고 있었다. 나는 안경이 비추어 주는 세상을 너무 순진하게 믿고 있었단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안경이 늘 진실만 전해줄 것이라는 믿음은 너무 관대하고 특별한 대우였다. 그것은 또한 나의 눈에 대한 불신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나의 새 안경이 마음에 들었었기에, 또한 안경이 전해주는 거짓이 맨눈으로 본 진실보다 덜 불편했기에 새 안경을 주문하기로 했다. 전화로 전에 끼던 안경과 똑같은 안경을 주문한 지 몇 시간 안 되었을 때였다. 같이 살던 동생이 ‘형에게 온 택배가 있어.’라고 하기에 나는 안경가게가 일을 열심히 하는구나 싶엇다. 하지만 택배상자 속에는 안경대신 아주 붉은 편지봉투가 있었다. 안경을 쓰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나는 달랑 편지 하나 보낼 거라면 거창한 박스는 왜 필요했던 것인지 의아했다. 의문은 곧 풀렸다. 편지봉투를 들자 독특한 향기가 훅하고 끼쳤기 때문이다. 일전에 맡아본 적 없는 냄새였다. 아마도 박스는 냄새를 붙잡아두기 위함이리라. 나는 냄새가 사라질 때까지 열심히 맡았다. 냄새는 곧 머릿속에서 사라지겠지만 다시 맡을 때 기억할 수 있게끔. 편지봉투는 풀칠 대신 쉽게 뗄 수 있는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내 취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분명했다. 나는 풀칠된 편지봉투를 혐오했다. 풀칠은 봉투를 원상태로 되돌릴 수 없게 만든다. 아무리 조심스럽게 떼어내도 꼭 한쪽 면이 다른 쪽 면을 조금씩 뜯어갔기 때문이다. 깔끔하게 봉투를 열려면 가위로 윗부분을 자르는 것이 그나마 가장 괜찮은 방법인데, 그것도 내용물이 잘라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열어야만 했다. 그렇게 조심해도 결국 잘려나가는 편지들이 있었기에 나는 스티커 포장을 가장 좋아했다. 나는 스티커를 조심스럽게 떼어내고 깔끔하게 열린 편지봉투에 만족하며 내용물을 확인했다.

편지를 읽자마자 나는 나의 일기를 보관하던 상자를 열어보았고, 상자 속의 일기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예정에 없던 여행을 준비하게 되었다. 사실 준비랄 것도 딱히 없었다. 얼마가 될지 모르는 여행이라 오히려 필요한 것은 적었다. 문제는 돈이었는데 마침 알맞은 돈이 있었다. 편의점 알바를 할 때의 일이었다. 부모님이 주신 용돈으로 생활을 이어나가던 때에 ‘데이트비 정도는 스스로 벌어보는 게 어때?’ 하며 여자친구는 일할 것을 권유했다. 그녀는 대단한 마르크스 주의자였는데, 스스로 일하지 않는 자는 먹어서도 안 된다고 주장할 만큼 과격했다. 그런 주제에 자신은 과제와 공부로 바쁨을 토로하며 자신의 무위도식에 대해선 합리화하는 모순적인 인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주말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나 또한 그녀의 행동에 불만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작정하고 싸우자고 들만큼 적극적인 인간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주말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는 가장 빠르게 구할 수 있으며, 하는 일도 무난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고른 것이었는데,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야간이라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곳은 오히려 밤손님들로 먹고 사는 곳이었다. 가장 많이 팔리는 물건은 술, 담배, 숙취음료, 그리고 콘돔이었고, 손님 대부분은 취해 있었다. 그렇지만 힘들다기보다는 신이 났다. 편의점을 찾는 손님 중 제정신인 사람은 거의 없었고, 덕분에 일을 하러갈 때마다 판타지 세계로 모험을 떠나는 기분이었다. 콘돔을 5박스나 사가는 젊은 여자 둘. 알몸에 코트만 걸쳐 입고 나와 술을 사가는 아줌마. 강아지용 통조림을 들고 ‘이거 맛있어요?’라고 물어보는 청년과 옆에서 쓰레기통에 오줌을 갈기고 있는 그의 친구. 루게릭 아저씨는 그런 정신 나간 상황에서도 기억에 남는 사람이었다. 그가 편의점에 온 것은 내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두 달 정도 되었을 때였다. 아르바이트를 권유했던 여자친구와는 이미 헤어졌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나 또한 정치적 시위에 참여할 것을 강요했는데, 그녀와 헤어지는 것과 계속 사귀는 것 중 무엇이 더 스트레스일지 저울질하다가 내린 선택이었다. 하지만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에 재미를 느꼈던 나는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아무리 유흥가라도 새벽 네 시 정도면 다들 제정신을 찾으며 집으로 돌아갔고, 덕분에 나는 지루하고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루게릭 아저씨는 정적을 깨고 들어와서는 한동안 나를 노려보더니 나의 시급을 물었다. 나는 또 재미없는 종류의 사람이 들어왔구나, 하는 생각에 실망하며 대답해주었다.

“5600원이요.”

흔히 있는 타입이었다. 내가 원한 인생은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하고 생각하며 남들처럼 즐겁게 일하고 즐겁게 술을 마시는 척하지만, 심장은 반쯤 썩어빠진 이들이다. 그런 이들 앞에 자신이 사먹는 숙취 음료보다 싸구려인 시급 5600원짜리 인생이 짠하고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정신을 붙잡고 집에 돌아가 내일을 준비해야하는 가장 비참한 시간에. 그러면 최저임금일게 뻔한 편의점 알바의 시급을 물어보고는 꼭 그것보다 비싼 물건을 사서는 선심 쓰듯 먹으라고 주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살아도 네 인생보단 가치있구나, 하고 말하듯.

애당초 돈이 목적이 아닌 알바였기에, 그들의 행동 자체에 화가 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짜증나는 족속들이었다. 그 이유는 첫째로 그런 행위가 자신의 썩어빠진 심장을 조금이라도 회복하고, 자신의 삶을 합리화하려는 의도란 것이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고, 둘째로 약속이나 한 듯 패턴이 똑같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선 귀찮기만 하고 지루한 그야말로 최악의 손님이었다. 하지만 아저씨의 다음 말은 의외였다.

“열심히 사네.”

비꼬는 건가 싶었지만 그런 것 같진 않았다. 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열심’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어중간한 일이다. 그것은 부르주아를 위한 일도 프롤레타리아를 위한 일도 아니다. 부르주아라면 더 편한 일을 찾을 테고, 프롤레타리아라면 더 비싼 일을 찾을 테니.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말 그대로 어중한간, 어중간한 노력으로 어중간한 임금을 받는 어중간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다소 의아해하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나도 그렇게 열심히 살아봤는데, 그래봐야 소용없어요.”

아저씨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후회인지, 내 인생에 대한 충고인지 모를 말을 덩그러니 남기고 술이 있는 진열대 쪽으로 향했다. 취기가 어느 정도 가시고 숙취가 올라올 때면 숙취 해소제를 찾는 부류와 다시 취하기 위해 술을 찾는 부류가 있었는데, 아저씨는 후자인 모양이었다.

아저씨는 맥주치고는 비싼 편인 술 두병을 가져와 계산대에 올려놓고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어렸을 때 가난해서 학생보다도 더 어릴 때부터 공장에서 일했어요. 그땐 최저임금이니 주휴수당이니 그런 건 하나도 모를 때라 그저 시키는 대로 일하고 주는 대로 받았지. 그래도 참 열심히 살았어. 밤엔 틈나는 대로 공부도 하고. 학생도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지? 누가 뭐라 해도 공부하는 게 최고야. 백날 이런데서 일 해봐야 공부해서 성공한 사람들 못 따라가. 나도 그런 생각으로 악착같이 공부해서 서울대를 갔어. 서울대. 학생도 서울대 알지? 내가 지금은 이래봬도 우리 공장에선 그래도 상철이가 공부는 제일로 잘하지 하면서 어르신들도 칭찬해주고 그랬거든. 서울대란 곳을 졸업하고 나니까 인생이란 게 참 쉽기 그지 없더만. 여자들은 그냥 대학 이름만 이야기해도 멋있다며 줄줄이 따라오는데 나중에는 내가 서울대란 놈을 다니는 것인지, 서울대가 나란 놈을 다니는 것인지…. 그래도 어린 나이에 이쪽에선 이름 있는 회사 들어가서 접대란 것도 받아보고, 나이에 맞지 않게 이사라는 직책도 달아보고 창창한 앞날만 남은 줄 알았더만….

아저씨는 여기까지 이야기하고는 진열대에서 소주 한 병을 더 가져와서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얼마 전부터 몸 여기저기가 뻣뻣하고 주먹도 잘 안 쥐어지는 거야. 처음에야 별 거 아니겠지 하고 넘겼는데 하도 자주 그러니까 집 근처 병원에 가봤지. 그런데 이 의사 망할 놈의 씨펄자식이 근육통 주사나 팍하고 몇 대 놓아줄 것이지, 심각한 표정으로 결과표를 보더니 큰 병원에서 자세한 검사를 해봐야겠다는 거야. 씨펄놈의 자식. 그런데 어쩔 수 있나. 의사 선생님 말인데 따라야지. 세상에 선생님 들어가는 직업은 그냥 잠자코 믿고 따르는 게 피차 좋은 거야. 아무튼 그래서 말이지 큰 병원 가서 그 자세한 검사를 해봤는데 루게릭병이란거야. 루게릭병. 온몸의 신경이 파괴되고 근육이 뒤틀리는 병. 그 병에 걸리고 나니까 처음 드는 생각이 내 인생 참 스펙터클하구나. 강상철 이 망할 놈의 자식은 조용하게 살날이 하루도 없구나. 병 이름도 시방 다이내믹해요. 루게릭병이래. 루게릭병. 스티븐 호킹인지 잡스인지도 걸렸다는 그 망할 것의 루게릭병. 3개월 남았다대.”

아저씨는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 천만 원씩 벌던 시절의 이야기. 뉴욕의 한국인 전용 사창가에서 블로우잡을 받았던 이야기. 자신이 루게릭병에 걸린 것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과 회사걱정. 이젠 약을 먹지 않으면 팔꿈치 아래로는 움직이지도 않는다는 이야기. 아저씨는 이런 저런 이야기와 푸념을 몇 시간동안이나 늘어놓더니 ‘공부를 열심히 해라. 하지만 열심히 사는 건 아무 의미 없다.’는 모순된 결론과 5만 원짜리 10장, 그리고 이미 계산된 술 세병을 두고는 뭐라고 할 틈도 없이 편의점을 나갔다. 그 후 3개월 동안 아저씨를 기다려봤지만, 그는 다시 오지 않았고, 사람을 구경하는 것에 흥미를 잃은 나는 그대로 알바를 그만두었다.

그가 남기고 간 50만원과 술 세병은 왠지 그의 유언이라는 생각이 들어 옷장 속 깊이 넣어두었고, 그를 기다리며 일했던 3개월간의 알바비도 쓰지 않고 모아두었다. 물론 그의 말이 전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은 아니었다. 서울대를 나왔다던 그의 말투에 내가 서울대 졸업생에게 기대하는 지성은 들어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마 반쯤은 술김에 뱉은 거짓말, 반쯤은 자신의 신세한탄 일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알게 된 어떤 의사 선생님에게 이 이야기를 했을 땐 루게릭 아저씨를 거짓말쟁이라며 욕했다. 3개월 남은 루게릭병환자는 그렇게 돌아다닐 수 없다며. 하지만 나는 그래도 루게릭병 아저씨를 믿기로 했다. 선생님 들어가는 직업은 믿고 보라던 아저씨의 말과는 반대로. 아무튼 나는 그렇게 남아있던 돈 200만원으로 여행을 떠났다.


눈을 떴을 때 나는 여기가 어디고 지금이 언제인지 알 수 없었다. 어둠속에서 깨어나면 으레 있는 일이었다. 나는 열심히 지금까지의 일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안경인줄 알았던 택배 속에는 편지가 들어있었고, 편지를 읽고 찾으려 했던 일기는 사라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일기를 찾는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하지만 문제는 단서가 아주 적다는 것이었다. 택배에는 발신자도 없었고 냄새도 글씨체도 모두 낯설었다. 그래서 나는 강원도로 가기로 했다. 일기의 대부분은 내가 나고 자란 그곳에서 쓰였으니까. 또한 내 취향을 잘 아는 만큼 일기도둑은 아마도 고향친구가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강원도로 향하는 차표를 채 구매하기도 전에 그녀를 만났다.


“그치만, 그전까진 새까맣게 잊고 있었잖아?”

그녀가 내 쪽을 바라보고 다시 누우며 물었다. 그렇다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새하얗게.’ 볼펜으로 그어버린 것이 아니라 지우개로 지운 듯 잊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으므로 나는 그저 잠자코 있었다.

“그건 그렇고 왜 하필 나였어? 여긴 강원도도 아니고, 어떤 단서가 있었던 거야?”

그녀를 처음 본, 정확히 말하자면 처음 맡은 것은 여행을 시작하고 불과 두 시간 만이었다. 어디선가 익숙한 냄새가 났고, 고개를 돌리자 그녀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보자 나는 그 냄새가 택배를 열었을 때의 냄새란 것을 기억했다. 아마도 그녀가 노트처럼 붉은 코트를 입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두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그 냄새가 붉은 빛의 냄새이거나, 그녀가 일기도둑이거나. 전자일리는 없었다. 나의 새 안경에서는 그런 냄새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말을 걸기까지는 그런 일련의 사연이 있었지만, 결국 나는 그녀의 물음에 냄새가 좋아서, 라고 밖에 답할 수 없었다.

그러자 그녀는 짐짓 실망했다는 투로 ‘자기는 조금 특별한 줄 알았는데.’라고 말했다. 나는 내가 특별하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지만, 그녀의 냄새가 좋은 것과 나의 특별함이 훼손된 것 사이의 어떤 상관관계도 짐작할 수 없었기에 다소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세상에 냄새가 좋은 사람은 없는걸.”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내 표정이 그대로인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자기가 맡았다는 그 좋은 냄새는 내 냄새가 아니야. 내 냄새는 아주 지독할걸? 세상에 냄새가 좋은 사람은 없어. 누구라도 일주일만 못 씻게 하면 지독한 냄새가 날 테니까. 자기가 맡은 냄새는 내 냄새가 아니라 바디워시와 샴푸, 화장품 냄새가 조금씩 섞인 냄새라구.

나는 그제야 그녀의 말을 이해했다. 요컨대 나도 사람의 가면을 꿰뚫어 보지 못하는 평범한 인간이라는 소리였다. 나는 그녀에게 그렇게까지 특별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심은 없었지만, 그런 식의 취급이 조금 억울하게 느껴져 반박했다.

“하지만, 결국 몸을 씻고 머리를 감고 화장을 하는 것도 너  자신이잖아.”

내가 말했다. 그녀가 내 말에 무언가 토를 달려했기에 나는 틈을 주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가령 평생 선함을 연기하며 살다 죽은 악인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악인일까 선인일까?”

네가 신이라면 평생 악한 일 한 번 하지 않은 그 악인을 무슨 근거로 지옥에 보낼 거야? 너의 본 모습이란 것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 거야. 그저 세계로 비추어지고 그 세계를 통해 인식할 수 있는 네가 있을 뿐이지. 네가 날 골탕 먹이려고 마음먹지 않는 이상 넌 일주일 이상 씻지 않는 법이 없을 테고, 난 네가 정말 너의 냄새라 생각하는 그 악취를 평생 맡아보지도 못하겠지. 내가 평생 맡아보지도 못할 그 악취가 사실 너의 본 모습이라고 한들,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겠어?“

그녀는 대답대신 만족했다는 듯 내 품으로 파고들었고, 얼마 후 잠들었다. 나도 그녀의 잠든 모습을 보다가 곧 잠들었다.


마침내 잠들기 전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고 현실감을 되찾았을 땐, 그녀도 깨어나 옹알거리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린 그녀는 이곳에서 나가 분위기 좋은 술집에서 술이라도 한잔 하자고 제안했다. 나도 이 장소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으므로 그녀의 제안에 따르기로 했다. 나는 모텔이 늘 싫었다. 침실과 화장실만이 존재하는 그곳의 형태는 어쩐지 기형적으로 느껴졌다. 그것은 마치 ‘우리는 너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만 존재할 뿐이야.’라고 말하는 듯 했고, 그 때문인지 모텔을 나설 때면 수치스러운 기분을 피할 수 없었다.

어쨌거나 우리는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그녀도 나도 땀이 많이 나서 샤워를 해야 했다. 내 몸에 밴 그녀의 냄새가 사라지는 것이 썩 아쉽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녀의 말대로 어떤 인간이라도 일주일만 못 씻게 하면 지독한 냄새가 날 테니까.


그녀가 나를 이끌고 간 ‘분위기 좋은 술집은 시끌벅적했다. 나는 분위기 좋은 술집만큼 자기 파괴적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초에 분위기 좋은 술집이 있었다. 그 술집이 분위기가 좋다는 소문이 퍼지자 많은 사람들이 술집을 찾았고, 어느 순간 분위기 좋은 술집은 사라지고 시끌벅적함만이 남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만족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가 눈에 들어왓다. 그제야 나는 그녀가 말한 좋은 분위기에는 이 시끌벅적함도 포함되는구나 싶었다.

그 시끌벅적한 술집에서 우리는 처음 만난 것처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우린 처음 만나는 것이 맞았다. 이전까지의 행위들은 만남이라고 말하기에 우린 너무 동물적이었다. 동물은 만나지 않는다. 다른 종이라면 먹기 위해 사냥하거나 먹히지 않기 위해 도망가고, 같은 종이라면 그저 서로를 보며 냄새를 맡고 번식을 위한 행위를 한다. 우린 그것을 만남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러니까 열아홉 살까지는 매일 빠짐없이 일기를 썼다.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서부터 일기를 안 쓰기 시작했는데, 그전까지 쓴 일기는 어떤 상자에 소중히 보관해두었다. 몇 년 지나자 일기의 존재조차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안경 대신 온 편지를 읽고선 일기를 떠올렸고, 상자를 열어보니 일기는 사라져 있어서 일기를 찾는 여행을 시작했다?”

그녀가 따지는 투로 물었다. 그녀는 내가 했던 말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듯 했다. 내가 여행을 떠나기까지 겪은 일련의 사건들은 그런 식으로 생략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가령 그녀가 ‘어느 봄날’이라고 표현한 그 봄날은 햇살을 따뜻하지만 바람은 아직 차가운 그런 날이었다. 그런 봄날에는 많은 곤충들이 죽는다. 말하자면 겨울이 심어놓은 봄의 함정인 셈이다. 이 함정이 가장 무서운 점은 봄이 왔다는 희망에 들떠 깨어나던 곤충들이 순식간에 겨울바람에 절망하며 죽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중요하고도 미묘한 것들에 대해 말로 제대로 설명할 자신이 없었으므로 그저 응,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여행을 시작한지 몇 시간 만에 일기도둑이라 생각되는 여자를 찾았다. 그 여자가 일기도둑이라고 생각한 건 냄새가 좋았기 때문이고, 그리고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그 여자와….”

그녀는 주위 사람들을 의식해서인지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여자와 잤고.”

나는 이런 점이 시끌벅적한 술집의 거의 유일한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어떤 말을 하던 남에겐 그저 배경음이 되어버릴 뿐이다.

“완전 정신 나갔어!”

나는 그 말이 섹스를 암시하는 은어의 무신경한 사용에 대한 것인지, 아니면 그녀와 자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둘 다에 대한 것일지도 몰랐다.

“아무튼 그런 사람과 자버린 그녀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는데.”

그녀가 말햇다.

나는 고양이의 발정기에 대해 떠올리며 왠지 순서가 잘못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신기하지만 거의 쓸모없는 사실에 대해 많이 아는 친구가 해준 이야기이다.

‘인간은 섹스를 할 때마다 쾌락을 느낀다. 종족번식행위에 대한 보상으로. 하지만 고양이들은 다른 방법으로 섹스를 하게끔 유도된다. 발정기동안 섹스를 하지 않으면 고양이들은 계속해서 고통을 느낀다. 인간은 섹스를 원하지만, 고양이는 섹스를 필요로 한다.’

그 친구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크게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로는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서글프게 들렸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마도 고양이의 섹스를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못 알아들었어요? 너는 누구냐니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인간의 섹스든, 고양이의 섹스든. 어쨌건 우리는 섹스를 했고, 그녀는 내가 누군지 묻고 있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물건이 제자리를 벗어나는 것을 싫어한다. 제자리를 벗어난 물건들은 왠지 더럽게 느껴진다. 결벽증 같은 것은 아니다. 그저 침이 입속을 벗어나면 더럽게 느껴지는 것처럼 세상에는 위치를 이탈하는 것만으로도 더러워지는 것들이 존재한다.

나는 말보다는 글을 좋아한다. 말은 사라져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말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한다. 곧 사방으로 흩어지고 사라져버리니까 누군가는 평생 지고 갈지도 모르는 말을 막 뱉어내곤 한다. 하지만 글은 다르다. 글은 남기 때문에 사람들은 펜을 쥐기 시작하면 신중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말보다 글이 더 좋다.

나는 새벽의 거리를 좋아한다. 거리는 텅 비어있지만, 그 덕분에 주황색의 가로등 빛이 거리를 빈틈없이 채울 수 있다. 나는 그 모순적인 풍만함을 좋아한다.

그 외에도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많았지만, 그것은 단지 나에 대한 부가적인 설명일 뿐,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대답은 되지 못했다. 내가 누군지에 대해 생각하는 일은 나 자신조차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마침내, 나는 내가 누군지에 대한 완벽한 대답을 찾아내었다.

“그것은 모두, 내 일기에 쓰여 있어.”

그렇게 해서 그녀도 이 여행에 동참하게 되었다.


열차를 타자는 것은 그녀의 생각이었다. 나는 살면서 한 번도 열차를 타본 적이 없었다. 특별히 꺼렸던 것은 아닌데,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비가 오는 날 열차 속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골똘히 무언가 생각하는 영화 속 주인공들을 볼 때마다 어떤 기분일지 궁금했다. 단지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났을 뿐인지, 아니면 기차를 타고 비가 오는 창밖을 바라보면 모두 그렇게 되는 것인지. 아쉽게도 열차를 타고 창밖을 보았을 때, 비가 오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말대로 열차가 버스보다 썩 로맨틱하긴 했다.

우리는 어제 술집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마저 나누었다. 내가 누군지는 말해 줄 수 없지만 어떤 사람인지 단서정도는 줄 수 있었다.

“나는 철학과란 게 실제로 있을 줄 몰랐는데. 그런 건 예전에 다 없어진 줄 알았어.”

그녀가 말했다. 나는 철학이 멸종한 세계에 대해서 잠시 상상해 보았다. 지금과 크게 달라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무언가 부족하거나 넘칠 것이다. 철학이 없어진다면 누군가는 큰 불편함을 느끼리라. 나는 철학과라는 나의 소속이 좋았기에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냐. 많은 것들이 그런 식으로 존재하고 있는걸.”

내가 말했다.

“자기 방금 되게 독실한 기독교인처럼 말했어.”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보통의 경우 증명의 책임은 존재를 주장하는 쪽에 있다는 교수의 말이 떠올랐다. 그 교수가 비록 ‘무의 존재를 증명하라.’는 엉터리 과제를 낸 엉터리 교수였음에도 철학과생들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그저 그런 대학 생활을 하다 다들 군대에 갈 때쯤, 나도 늦지 않게 군대에 갔지.”

내가 말했다.

“군대?!”

그녀가 꽤나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징병제를 취하고 있는 이 나라에서 그건 그렇게 크게 놀랄 일이 아닌 거 같은데?”

“왠지 자기는 그런 거랑 안 어울려서. 음… 비유하자면 하늘을 나는 분홍코끼리를 타다가 떨어졌는데, 그 가속도가 정확히 9.8m/s²인 느낌?”

그녀가 말했다.

“그 비유가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라면 완전히 실패한 비유 같아.”

“그러니까 자긴 되게 현실에서 동떨어져 사는 사람 같았거든. 열아홉 살까지 매일같이 일기를 쓴다거나 그 존재조차 잊어버렸던 일기가 사라진 것을 깨닫자마자 여행을 떠난다거나 철학과라던가 그런 거. 근데 군대라는 현실적인 게 끼어드니까 이상해서. 나쁜 뜻은 아냐, 그냥 그렇다고.”

그녀가 말했다.

“비현실적인 것으로 따지면 너도 마찬가지야. 처음 보는 남자와 자고 그 현실과 동떨어진 여행에도 따라왔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생리를 해. 그것과 똑같은 거야. 난 네 환상 속의 남자가 아니야. 여기에 이렇게 존재하고 있어. 나쁜 뜻은 아냐. 그냥 그렇다고.”

나는 그녀가 내 말을 공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길 바라며 말했다. 그녀는 내 말에 수긍하고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생각에 잠긴 그녀는 말 걸기 어려울 정도로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남는 시간을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비록 비는 끝까지 오지 않았지만) 보내기로 했다. 창밖엔 생각보다 다양한 풍경이 있었다. 처음엔 도시로 시작해서, 얼마쯤 더 가자 갈색이 주를 이루는 논밭이 나왔고, 조금 더 지나자 갈색에 푸른색이 추가된 산과 강이 나왔다. 버스나 자가용을 타고서는 보이지 않았던 풍경이었다. 역시 열차를 타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었다.

강과 산이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춘천역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타는 열차는 어디를 가든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는다. 나는 생각에 빠진 그녀를 깨워야했다.

“도착했어.”

내가 말하자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깨어난 것 같진 않았다. 벌써 시간은 정오를 넘겼고, 우리는 아침도 먹지 않고 모텔에서 나왔기에 무언가라도 먹자고 제안하자 그녀는 묵묵히 따라왔다.


“언제까지 입을 닫고 있을 거야?”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어색한 침묵을 참지 못한 내가 말했다. 나는 침묵을 좋아한다. 그리고 어색한 상황도 잘 견디는 편이다. 하지만 그녀의 침묵은 어딘가 견디기 힘든 구석이 있었다. 아마도 그 침묵이 내게 무언가를 질책하거나 요구하는 듯이 느껴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언제까지 입을 닫고 있을거야?”

나는 다시 물었다.

“조용히 이야기 할 곳이 필요해.”

마침내 그녀가 입을 열었고, 식사를 어영부영 마친 우리는 또 다른 모텔을 찾아나섰다.


“나는 사랑하는 남자가 있어.”

그녀가 운을 떼었다.

“그 사람도 나를 사랑해. 결혼생각까지 하고 있을 정도로 진지한 사이이고. 우리가 처음 만난 건 중학교 때였어. 그때 난 아무도 돌아봐주지 않는 초라한 여자아이였는데, 그 애가 처음 내게 예쁘다고 말해주었어. 밤에 슬쩍 나를 불러내서 고백하는데 그 애는 자신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막 울었어. 내가 오히려 당황해서는 왜 그러느냐고 묻는데 내가 너무 예쁘다는 거야. 그 초라했던 내 모습을 보고, 그때 나는 이 사람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빼앗겨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녀는 두 시간에 걸쳐 그들의 연애사를 들려주었다. 그녀는 시골에서 서울로 대학교를 왔는데, 그녀의 남자친구는 공부에 뜻이 없었지만 1년의 재수 끝에 그녀의 학교를 따라왔다는 이야기. 7년이 지난 지금도 처음같이 사랑해주고 예뻐해 준다는 이야기. 말로만 들어도 풋풋하고 가슴 아려오는 사랑이야기였다. 철없는 시절 만나 사랑에 빠지고 성장해 가면서도 서로를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문제는 그녀와 내가 자버렸다는 것이다. 그것도 남자친구가 군대 간 사이에. 이제야 군대와 현실이야기가 나오자 달라진 그녀의 태도가 이해되었다. 둘 다 그녀의 그 사람을 연상시키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이미 저질러버린 일을 책망하긴 싫지만,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거야?”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 화가 나서 말했다. 나야 상관없다고 쳐도 자신의 여자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믿고 있는 어떤 이는 배신당한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그 여자가 배신한 이유가 마음이 떠나서가 아니란 것이고.

“나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어. 왜 그랬는지도. 그와 떨어져 있으니 문득 이게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와 함께하면 행복할 거란 건 알아. 그보다 더 좋은 남자가 있을리 없다는 것도 잘 알고. 그와 결혼하면 그와 나를 반반씩 닮은 아이를 몇 명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 죽을 때까지 행복하겠지. 하지만 그걸로 된 걸까? 내가 인생을 세 번쯤 산다면 마지막 인생을 그렇게 사는 게 맞겠지만, 한번뿐인 인생을 그렇게 사는 건 내 인생에 있을 수 있는 수많은 기회에 대한 외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네가 나타난 거야. 그전까지는 보관하고 있는 것도 까먹고 있었던 일기가 도둑맞은 것을 깨닫자 망설임 없이 여행을 떠나는, 어느 작가의 엉뚱한 상상 같은 네가. 상상은 죄가 아니잖아. 일탈을 상상하고 그걸 통해 내가 어리석었단 걸 깨닫는다면? 그건 좋은 거 아냐?”

그녀가 말했다.

“못 들어 주겠네. 나는 네 환상이 아니고, 우리는 섹스를 했어. 그게 네게 얼마나 ‘환상적’이었을지는 몰라도.”

더는 들어줄 가치가 없었다. 내가 나가려하자 그녀가 매달리며 말했다.

“제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줘.”

나는 대답했다.

“두 가지 방법이 있어. 그에게 솔직히 말하고 용서를 빌어. 그러면 용서해 줄테니. 하지만 그는 평생 회복하지 못할 상처를 입을 거야. 아니면 평생 어젯밤 일을 숨기고 살아가.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걸 기억해. 많은 것들이 그런 식으로 존재하니까.”

어느 쪽이던 그녀는 결코 행복하지 못하리라.


평소와 조금 다른 종류의 수치스러움을 느끼며 모텔을 나설 때, 뒤로 사람이 뛰어내리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야말로 fall in love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녀와 헤어진 이후로 얼마간은 그저 방황하며 지냈다. 잠이 필요하면 모텔을, 배가 고프면 편의점을, 용변이 급하면 화장실을 찾았다. 욕망의 노예가 된 시간이었다. 나머지 시간은 공원의 벤치에 앉아있었다. 그렇게 앉아서 시간을 죽였다. 말 그대로 의미 없이 죽어가는 시간이었다. 따지고 보면 모두들 죽어가고 있었다. 물론 죽어간다는 표현이 보통 비관적인 상황에서 쓰이곤 하지만,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살아가다’와 ‘죽어가다’는 동의어 아닌가.

여기까지 생각하고는 그만두었다. 이미 충분히 비참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왜 이렇게까지 비참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도 그녀의 냄새를 좋아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내가 그녀의 말랑말랑한 귓불의 감촉이나, 맑고 깊은 눈동자, 내 혀가 그녀의 피부에 닿을 때 느껴지는 맛이나 소리를 좋아했더라면 이 정도까진 아니었을 텐데. 그녀의 그런 점을 좋아했더라면 기억하고 떠올리며 먼 훗날에도 추억할 텐데…. 난 이미 그녀의 냄새를 떠올릴 수 없었다. 애초에 냄새란 감각은 떠올리기보단 맡고나서 비로소 떠오르는 종류의 것이었다.


공원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었다. 아침엔 보통 운동하는 사람들이 주를 이뤘고, 저녁에는 산책하는 연인들이 더러 보였다. 그 외의 시간에는 나처럼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오늘 하루도 그저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같이 죽어가는 이들이었다. 처음엔 날 경계하던 그들은 내가 며칠째 머무르자 나도 그들과 같은 부류라 생각했는지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젊은 사람이 어쩌다 이러고 있소. 조금 더 노력해보는 게 어떻소.’

자기들도 나와 똑같이 죽어가는 주제에. 하지만 쫓아내는 것도 귀찮아 그냥 떠들게 내버려두었다. 그렇게 나는 공원 속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그 사내도 그 풍경 중 하나였다. 사내는 늘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기 때문에 작가나 소설가라는 소문은 있었지만, 모두 추측일 뿐이었다. 그는 좀처럼 입을 여는 법이 없었다. 내가 사람으로서의 기능을 잃고 풍경이 되어 버린 지 일주일쯤 되었을까. 그 사내는 내 옆에 와서 앉았다. 내 옆에 오고 싶었던 것인지, 오고 싶었던 곳이 내 옆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한때 나 또한 그와 같았기 때문일까. 그는 내가 그와 동류였음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일까. 어떤 추측이 내 머릿속에서 펼쳐지건 그는 평소처럼 말없이 낡은 노트에 볼펜을 휘적거릴 뿐이었다. 나는 비가 오면 그가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졌다. 비가 온다면 그것을 알아차리고 비를 피할까, 아니면 물에 불은 공책이 볼펜에 허물어져서야 알아차릴까. 골똘히 생각해보았지만 어느 쪽일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생각하는 도중에 그것보다 빗소리를 들어본지 너무 오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빗소리를 들어본 것이 언제였던가. 나는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를 좋아했다. 불규칙한 게 분명한데도 어쩐지 규칙적으로 들리는 그 소리를 듣고 있자면 안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부터 비 오는 날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어렸을 땐 오히려 비가 오면 싫었다. 비를 좋아하기 시작한 것은 손이 여유로워지면서부터였다. 나는 숙제를 미리 하는 아이가 아니라 학원가는 길에 허겁지겁하곤 했는데, 우산을 받들고 있어야 하는 비오는 날은 늘 혼나는 날이 되었다. 그래서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고 나서야 비오는 날을 좋아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술에 취해 돌아와서 내게 학원을 그만두어야겠다고 말하던 그날의 아버지가 조금은 고마워졌다.

어린 시절에 대한 긴 회상이 끝나고 나서도 사내는 그대로였다. 나는 내가 진 것을 순순히 인정하고 먼저 말을 걸기로 했다.

“뭘 그리 열심히 적어요?”

사내는 대답이 없었다. 하긴 그 수많은 물음에도 침묵하던 그가 나만 특별대우해줄 리는 없었다. 나는 금세 단념하고 그냥 직접 확인하기로 했다.

‘청년은 금방 포기하고 나의 노트를 훔쳐보려했다. 나는 그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지금 이 상황을 모두 적고 있는 건가요?”

‘지금 이 상황을 모두 적고 있는 건가요, 라고 청년은 물어봤다. 그렇게 생각해도 좋다, 하고 나는 생각했지만 대답은 하지 않았다.’

“이런 식의 대화도 나쁘진 않네요. 인내심이 조금 필요하지만. 그렇게 모든 일을 적는 데는 어떤 의미가 있는 건가요?”

‘라고 청년은 멍청한 소리를 했다. 사람들은 아무 의미가 없는 일에도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려 든다. 그게 인간이란 족속의 습성이다. 어떤 사건이나 현상이 생기면 그것이 그냥 일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납득하지 못하고 원인이나 의미 같은 것을 찾으려 드는 것이다.’

“진정해요. 당신과 싸우려 드는 게 아니니까. 난 그냥 무언가를 쓰는 것에 그렇게 오랫동안 열중하는 사람은 처음 봐서 소설가인가 하고 궁금증이 생겼을 뿐이에요.”

사실 처음 본 것은 아니었다. 나 또한 모든 것을 글로 적어 내려가던 때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내 입으로 나는 당신과 비슷한 사람입니다, 하고 말하는 것처럼 모양 빠지는 일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굳이 드러내지는 않았다.

‘소설가. 소설가라는 단어의 울림이 텅 빈 뇌와 몸뚱이 구석구석을 파고들었다. 언젠가는 나도 의미가 가득 찬 글을 쓰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들이 나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 안에 숨겨진 은유와 의미를 찾아내며 기뻐하던 시절이 언젠가는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나는 회상했다.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었다. 내가 소설로서 처음 성공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이루고 나서 나는 바로 그녀에게 청혼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내가 절망하고 좌절할 때마다 그녀는 그녀가 줄 수 있는 모든 사랑과 할 수 있는 모든 위로를 주었다. 나의 성공은 반절은 그녀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어렵고 힘든 날들을 같이 견디며 사정이 나아지면 곧바로 결혼하자고 약속했다. 함께하는 미래에 대해 상상하는 것이 그 시련들을 견딜 수 있는 가장 큰 힘이었다. 하지만 나의 청혼을 받은 그녀의 반응은 차가웠다. 나는 그녀의 사랑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기에 동요하지 않았다. 갑작스런 성공과 급변하는 상황에 잠시 혼란스러워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쪽은 나였다. 내가 그녀에게 청혼한지 몇 달 뒤 그녀는 내가 전혀 모르는 어떤 남자와 결혼했다. 우리는 거의 모든 친구를 공유했었기에 그것은 내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그녀의 행동에서 의미를 찾으려 했다. 내게 부족했던 점이 있었나. 그 남자로부터 협박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직 머릿속에 떠오르는 왜? 라는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만 먹고 숨 쉬고 잠잤다. 그리고 불러오는 배를 보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 그녀를 보며, 마침내 깨달았다. 그녀의 행동엔 아무 의미도 이유도, 숨겨진 의도도 없었다. 그저 나에 대한 사랑이 식고, 내가 지난 인생동안 전혀 알지 못했던(그리고 앞으로의 인생동안 절대 잊지 못할) 어떤 남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한 것이다. 거기에는 어떤 숭고한 의미나 원대한 목적이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소설을 쓰면서 한 번도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었다. 나에게 소설 쓰는 법을 처음 가르쳐주신 교수님이 타당한 이유나 의미 없이 쉽게 등장인물을 죽여선 안 된다고 가르쳤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누군가 죽어 마땅한 이유를 떠올릴 수 없었고, 나의 소설이 어쩐지 극적인 부분이 부족하다는 혹평을 들을 때도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 하지만 교수님의 가르침은 틀린 것이었다. 애초에 소설이란 것 자체가 아주 웃긴 것이었다. 사람들은 소설을 읽으며 인과관계니 개연성이니 하며 따져대지만 현실엔 아무 개연성도 아무 의미도 아무 인과관계도 없는 일이 세상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었다. 소설이 정말 현실의 거울이라면, 개연성이니 하는 그따위 것들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는 그날 처음으로 누군가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그 극적인 마지막 신에서 여주인공은 울부짖었다. 나 또한 몹시 슬퍼졌다. 하지만 거기엔 어떤 의미도 없었다. 그저 그렇게 아무 의미 없이 생겨버린 일이었다.‘

거기에서 손을 멈춘 그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공원에는 아무도 없었다. 찬바람에 매미가 남기고 간 허물이 바스라졌을 뿐이었다.


그와의 만남(만남이라는 표현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와의 일 또한 만남이라 칭하기엔 너무 동물적이었다.) 이후 나는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일주일도 넘게 비웠던 집은 내가 나가기 전 그대로였다. 라면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동생은 ‘왔어?’하는 표정만 지어보이곤 다시 라면을 먹는데 집중했다. 늘 말없이 나갔다가 말없이 들어오는 형이었으니 그에 마땅한 대우였다. 나의 존재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과연 나는 존재하고 있는 것인가. 나의 존재에서 중요한 것은 세상일까 나일까. 내가 내 자신이 존재한다고 인지하는 것이 종요한가 아니면 세상이 나의 존재를 인지해주는 것이 중요한가. 내가 나의 실재에 대해 회의하고 세상도 나를 인지해주지 않는다면 나는 사라지고 마는 것일까. 동생에게 나는 존재하는 것일까. 나라는 존재 자체로 실재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저 가끔 집에 왔다가 밖에 나가는 어떤 것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 동생의 반응은 후자였다. 그렇다면 동생에게 나는 가끔씩 집 앞에 쥐 시체나 물고 오는 고양이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나를 유령인 것인가. 나는 과연 언제부터 유령이 되어버린 것일까. 나는 언제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을까.

아기는 어머니의 몸과 분리되어 독립된 존재로서 세상에 태어나게 된 이후로 세상과 끊임없는 소통을 한다. 눈도 뜨지 못하는 그 첫 순간에는 피부로, 어머니의 부드러운 팔과 젖으로 소통한다. 눈을 뜨고 나선 눈빛으로, 그리고 아주 천천히 몇 년에 걸쳐서 말하는 법을 배운다. 세상의 그 어떤 소설가들도, 카프카, 헤밍웨이, 까뮈,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에 이르기까지 그 수많은 글쟁이 중에서도 말보다 글을 먼저 배운 이는 없었다. 나 또한 그랬을 것이다. 글을 쓰기 전 ‘맘마’라는 그 초라하고도 위대한 말을 먼저 꺼냈을 것이다.


나는 나의 방으로 들어갔다. 적어도 10년 이상의 시간을 보낸 나의 방으로 다시 돌아가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나의 태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기억이 나지 않는 부분들은 그저 열심히 상상하며 나의 인생을 되짚어 갔다.

인간의 일생이란 것은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믿을 수 없이 짧은 것이었다. 그 때 당시의 매일 매일을 적으며 썼던 일기는 몇 권의 노트를 꽉 채우고도 넘쳐나는 말들을 감당하지 못했는데, 지나고 나서 다시 써보니 채 세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어렸을 때의 일은, 부모님이 크게 싸운 일, 아빠의 폭언을 견디지 못하고 엄마가 집을 나가버린 일, 괴롭힘을 당하다 자살해버린 반 친구 같은 충격적으로 각인된 것들만 남아 나의 인생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나는 인간 기억력의 한계에 안타까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열아홉까지의 나는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만 것이다. 열아홉까지 그의 생각은 세상에 아무런 변화도 주지 못하고 그저 일기에 적힌 채 도둑맞아 사라지고 만 것이다. 나는 20살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최근으로 갈수록 괜찮아졌다. 지금과 가까운 일일수록 더 세밀한 부분까지 기억할 수 있었고, 그것은 상당한 위안이 되었다. 나는 아직 존재하고 있다.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은 글로 적혀 기억될 것이다. 누군가에게 읽히는 일이 없더라도 존재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의 일생을 적은 일기를 마무리 지었을 때, 밖에서 딩동 하고 초인종이 울렸다. 동생이 나가겠지, 하고 가만있었는데 초인종은 계속해서 울렸다. 뭘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짜증 섞인 생각에 나가 보았는데 동생은 여전히 라면을 먹고 있었다. 재촉하는 초인종에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열아홉 살의 내가 있었다. 그는 나를 죽였다. 나는 드디어 유령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나는 다시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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