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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징악'과 '권모술수'의 딜레마
게시물ID : gomin_31127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난사람이다
추천 : 1
조회수 : 36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2/04/02 19:50:07
‘권선징악’과 ‘권모술수’의 딜레마

1.
  우리는 태어났다. 그리고 언어를 배웠다. 언어를 배우자 동화책을 읽었다. 동화책들은 모두 우리에게 ‘권선징악’으로 축약되는 메시지를 던져줬다. 그래서 우리는 언어를 깨우친 순간부터 도덕을 배웠다. 선하게 살던 흥부는 결국 제비에게 박씨를 얻어 부귀영화를 누렸다. 게다가 흥부는 자신을 괴롭히던 악인 놀부에게 재물의 일부를 주는 더 높은 선의 행위도 보여줬다. 뱀이라는 악에 대항해 까치를 구해줬던 나그네는, 그것이 인연이 되어 암컷 뱀에게 잡아 먹힐 위기를 넘겼다. 효를 중시해 인당수에 몸을 던졌던 심청이는 자신의 아비의 눈을 뜨게 했으며, 왕의 여자가 되어 행복해졌다.
  부모들은 모두 우리에게 선의 가치를 말하였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 당연했다.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었던 가치들이기에 우리는 비판 없이 받아들였다. 중학교에 올라가자 이러한 가치들은 학교에서 ‘도덕’이라는 과목으로 가르쳤으며, 고등학교에 올라가자 ‘윤리’라는 과목으로 가르쳤다. 우리가 배운 이러한 가치들은 서로 조화로웠다. 선, 정직, 성실, 효도, 신뢰 같은 이러한 가치들은 서로 모순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것들은 평생 계속 될 내 인생의 이정표로 보였다.
  착하게 사는 것이 우리의 부모를 웃음 짓게 했다. 내가 착한 것은 공부를 잘 하는 것보다 더 우선이였다. 우리는 착하게 사는 친구들을 답답하게 생각했을지라도, 잘못된 놈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우리는 20살까진 착하게 살아야 했다.

2.
  그러나, 20대에 진입하는 순간, 저러한 가치들을 휴지통에 내 던지라고 했다. 사회에선 필요가 없는 것들이라는 것이 근거였다. 20대에서 부턴 착하게 사는 것보다 효율적으로 사는 것이 중요했다. 이익을 위해서 가치를 약간 뭉개는 행위는 ‘사회생활 잘하는 행위’였다. 우리는 약간의 권모술수를 인정해야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이것이 내가 20대에서 처음으로 느낀 딜레마였다. 20대 이전의 교과서는 나에게 가치를 종용했지만, 20대 이후의 사회라는 교과서는 나에게 가치보다 더 우선의 것을 설파했다. 그것은 돈이였고, 효율이였고, 경제논리였다.
  수능이 끝나고, 그해 겨울 나는 식당에서 알바를 했다. 손님에게 서빙을 하는 일이였는데 그럭저럭 할만 했다. 알바 첫 날로 기억한다. 손님이 계산을 하고 자리를 비우자, 나는 손님이 먹고간 자리를 치웠다. 그리고 남은 반찬을 한데 모아 음식물쓰레기통에 넣었다. 그 순간 뒤에서 “니 지금 무슨 짓이고”라는 소리가 들렸다. “얘가 얘가 돈 아까운줄 모르나, 퍼뜩 가온나.” 그 말을 하고 사장은 손님이 남긴 김치 중에서 깨끗한 부분을 골라 김치 통에 넣었다. 그 순간이 내가 제일 처음 이 딜레마를 인식하는 순간이었다.
  식당에서는 손님이 남긴 음식을 재활용했다. 돈 때문이다. 정직하게 장사해야한다는 가치를 약간 뭉그러뜨리면 돈이라는 놈이 왔다. 이것이 장사였다. 뒤에 친구들에게 이 얘기를 하자 음식점에서 알바하는 친구들은 자기들도 다 그러라고 배웠다고 말했다. 나는 그때부터 권모술수라는 놈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식당뿐이 아니였다. 술집에선 손님이 술취한 틈에 빈병을 몰래 가져다 놓는 것이 영업비결이였고, 핸드폰대리점에선 어리버리한 손님에게 남들보다 비싼 금액을 물어 파는 것이 상식이였다. 그리고 대기업들은 소비자들을 기만하고, 그 기만의 대가로 얻은 이익의 일부만 과징금으로 냈다.
  나는 그렇게 20살 때부터 권선징악의 저 반대에 있던 권모술수를 보기 시작했다.

3.
  이 딜레마의 근원을 깨닫게 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사회를 보니, 이 사회의 작동 원리는 돈이였다. 사회계급은 사라졌지만, 세상은 돈을 기준으로 사람을 나눴다. 사람들은 모두 돈을 향해 움직였고, 돈 때문에 움직였다. 돈은 가치보다 우선의 것이였다. 돈을 위해서 가치를 저버리는 것은 사회의 상식이였다.
  이 사회의 맨 윗 층은 돈이 살고 있었다.

4.
  그래서 나도 묻어갔다. 남들처럼 살기로 했다. 가치를 조금씩 버리고 남들을 기만하기 시작했다. 아니 기만하기보다는 가치가 훼손되는 순간들을 방관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회가 말했다. “철들었군”
  철 든다는 것은 그 것이였다. 사회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 사회가 가치보다 돈에 더 우선순위를 준다면, 그것을 추구해야 하는 것, 그것을 철이라고 했다.
  남들처럼 사는 것은 힘들지 않았다. 형이상학을 버리고 형이하학적으로 살면 됐다. 보이지 않는 개념들을 쫓기보다, 당장에 내 눈에 보이는 물질들에 집착하면 됐다. 적당히 경쟁하고, 적당히 속이고, 적당히 방관하고, 적당히 배부르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중에도 내 밑의 무의식에선 죄의식이 항상 꿈틀댔다.

5.
  그 죄의식의 근원은 철이였다. 철드는 철이 아니라, 철학의 철이였다. 어릴때부터 배워왔던 철이 지금의 철 때문에 한순간에 떨어져 나가기는 힘든 일이였다.
  공자와 맹자는 아직도 인의를 말한다. 인의를 좇으며 사는 사람들에 의해 공자와 맹자는 아직도 이 세상에 살아있다. 권선징악와 권모술수를 양 극단으로 하는 수직선 위에서, 아직도 한 쪽에선 윤리적 가치들을 내게 종용하고 있다. 내가 20대가 되어 보기 시작한 것은 새롭게 나타난 것이 아니라, 보이기 시작한 것 이였을 뿐이였다.
  세상은 권선징악으로 정의되는 집단이 아니라, 수직선의 모양을 띄고 있었다. 그 수직선을 인식하자 나는 방황하기 시작했다.

6.
  나는 방황하고 있다. 10대의 방황은 일탈이였다면, 20대의 방황은 나의 존재를 어느 점에 찍느냐다. 수직선 위에서 아직도 나는 점 하나를 찍지 못하고 있다. 마음은 나를 왼쪽으로 찍으라 이끌지만, 머리는 나를 오른쪽으로 찍으라 밀어댄다.
  이 딜레마는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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