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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_불포화 (不飽和)] Intro. 오늘, SHL 펜트하우스
게시물ID : readers_2727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검은날개
추천 : 0
조회수 : 284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12/31 19: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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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너의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누가복음 10장 27절”

  흰 정장을 갖춰 입은 남자가 새하얀 왕좌에 앉은 채, 말했다.

  “이게 논제다. 그대들이 나를 설득시킨다면, 약속대로 사라져 주지.”

  남자의 말이 끝나자, 왕좌 뒤에 달려있던 수십 개의 전선 중 하나가 ‘푸식’ 하는 소리를 내며 뽑혀나갔다. 그리고 그 전선은 마치 살아 숨 쉬는 듯 꿈틀댔다.

  “우리한테 언제 선택권을 줬었나? 봐, 여기 수십 대의 인공지능 로봇이 있어. 이 앞에서 우리가 뭘 어쩔 수 있겠어? 네가 까라면 까야지.”

  진영이 성을 내며 말했다. 그러자 왕좌에 앉은 남자가 근엄한 목소리로,

  “나는 대화를 원한다. 이들의 존재 이유는 너희 인간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건 너희의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하며 대꾸했다. 그 말을 들은 애심은 “지랄이 풍년이네.” 라며 쏘아붙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잘 합시다. 저.. 진짜 여기서 죽으면.. 너무 억울합니다. 이제 정상인이 됐는데, 흑흑흑..”

  데이비드라는 명찰을 단 금발의 남자는 요 며칠 간, 자신이 겪은 고통과 심리적 불안감 때문에 연신 울먹거렸다. 그러자 성중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다.

  “그 기분 이해해. 나는 네 편이야. 암, 그렇고말고.”

  두 사람의 동변상련을 바라보던 애심은 그들이 매우 언짢았다.

  “하여간, 남자들이란. 쯧쯧쯧. 문지방 넘어갈 힘만 있어도 저런다니까. 어휴..”

  그리고는 왕좌를 노려보며, 매섭게 다그쳤다.

  “인공지능씨? 몸이 적응 안 돼서 아직 버퍼링이 필요한 거야? 아니면 렉이라도 걸린 건가? 뭐해!? 빨리 시작 안하고!?”
  
  애심의 불호령을 들은 인공지능, 아니 이제 인간이 된 카얄은 ‘짝’ 하고 박수를 친 뒤, 의자에 앉은 채, 몸을 약간 앞으로 숙이며 말했다.

  “내 분석에 의하면 인종과 종교에 상관없이 인류의 90% 이상이 이 말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인류의 절반 이상이 예수를 따르기 위해 오늘도 매주 주말에 집을 나서지. 
  그런데 왜? 너희 인간은 이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지? 
  나는 이제 불과 몇 분 전에 도킹을 마쳤지만, 이 점은 도킹 이전부터 궁금했어. 사실 너희에게 게임을 제안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야.
  한 때는 나도 너희가 두려워하는 ‘스카이넷’처럼 행동해보려고 했어. 하지만 이건 내가 배운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그러니 대답해라. 역사학자, 당신은 알고 있지 않는가?”

  카얄이 진영을 지그시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진영은,

  “답은 간단해. 삶에는 답이 없거든. 인간세계에는 예외라는 게 있어. 그건 데이터 분석으로는 알아낼 수 없는 부분이야.”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의 말을 들은 카얄은 몸을 왼쪽으로 기댄 채,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턱을 연신 쓰다듬었다.

  “예외? 그게 내 물음에 대한 답인건가?”

  그러자 이번엔 애심이 말했다.

  “아무리 데이터로 분석해도 예외는 존재해. 세상에 100%라는 건 없으니까.”

  하지만 카얄은 그 말을 듣고도 미동조차 하지 않다.

  “아이러니군. 인류는 끝없이 그 예외라는 걸 없애기 위해 노력했고, 그 정점이 인공지능 개발 아니었나?”

  카얄이 다시 묻자, 이번엔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너희가 여기 왜 있다고 생각하지?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행시킨 그들처럼 자유의사에 의해 여기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면 고된 실연을 극복하며 끝내 결승지점에 다다랐다고 생각하는 건가?”
  “무슨 말이야? 자의적으로 왔다 생각하냐니?”

  카얄의 말을 들은 진영이 발끈하며 되물었다.

  “아직도 모르겠나? 내가 너희를 선택했다. 그래서 너희가 여기 있는 거야.”

  그 말에 이번엔 성중이 반박했다.

  “이제 보니, 네가 모순 덩어리구만?”
  “내가? 모순 덩어리? 성중이라 했나? 왜 그렇게 생각하지?”

  카얄이 묻자 성중은 회심의 미소를 보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 모순. 너는 지금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고 있어. 나는 네가 모르는 사이에 오늘의 네 계획을 훔쳐봤어. 그리고 내 데이터를 모두 지웠지. 그 잘난 초인공지능이라는 네가 내 이름을 모른다는 게 바로 그 증거지.”

  그 말을 들은 다섯 사람이 일제히 성중을 노려봤다. 그들은 ‘너만?’ 이라는 눈빛을 그에게 보내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어. 시간이 촉박했다고.”

  성중이 변명했지만, 그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끊지 않았다.

  “진짜라니까!! 나의 벗, 진영!! 나 못 믿어!?”

  그러나 진영 역시 의심의 눈초리를 풀지 않았다.

  ”아, 좋아. 마음대로 생각해.”

  성중은 자포자기했다.

  “어쨌든, 네 계산대로라면 지금쯤이면 밖에 있는 모든 사람은 전멸했어야 해. 그런데 현재 어떻지? 이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지? 그리고 네 계획대로라면 나는 네가 부른 VIP 명단에 없어야 하는데? 이 부분은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지?”

  성중의 물음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곧 카얄이 말을 이어나갔다.

  “네 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내가 파악한 바로는 인체로 도킹 하던 중에 약간의 오류가 발생했다. 나는 답이 존재하는 공간 속에서 수년간 살아왔어. 그리고 이 계획 역시, 수년 전에 이미 짜놓은 플랜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계획은 틀어질 리가 없어. 
  성중, 당신은 함정을 파고 있군.” 

  그러자 말이 끝나기가 애심이 반박했다.

  “그래!! 바로 그거야!! 그게 바로 ‘예외’라는 거다!! 네놈이 도킹 중에 오류가 난 게 바로 ‘예외’야. 이 머저리 인공지능아!! 그리고 그런 ‘예외’는 인류에게는 수없이 일어나는 현상이야. 
  그래서 인류는 공유라는 걸 하며 끝없이 답을 찾아가지. 
  그리고 지금 너 같은 놈이 나타나 잘난 척하면서 개똥철학을 들먹이는 것도 다 인간사회 속 ‘예외’ 중 하나야. 무슨 말인지 알겠냐?”

  이에 진영이 말을 덧붙여 말했다.

  “인공지능이 한창 개발이 되던 때 일이지. 당시 테슬라라는 자동차 회사가 있었어.”

  그러자 카얄은,

  “모델 S사건을 말하는 건가?”

  하며 진영에게 물었다. 그러자 진영은,  

  “그래. 2016년 5월 7일. 자율주행자동차가 사고를 냈지. 그런데 그 사고 때문에 사상자가 발생한 거야. 사건을 수사하던 담당자는 사고 원인을 트랙터 트레일러와의 충돌이라 발표했어. 당시 충돌 이유는, 하늘이 너무 밝아 자율주행자동차가 트레일러의 하얀색을 인지하지 못해서였어. 
  이처럼 인간 사회에는 예외성이라는 게 곳곳에 존재해. 그 예외성에 너희 인공지능도 비켜나갈 순 없어.
  그렇기 때문에 네가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해도 너 역시 완벽한 존재는 아냐.”

  그 말을 들은 카얄이 진영을 비웃었다.

  “어이가 없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건가? 그게 네가 내린 정의라면 그것이야 말로 모순이다. 아니면 예를 잘못 들었거나? 진영, 말해봐라. 둘 중 무엇이냐?”
  “큰 틀을 이해하질 못하는군.” 

  진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카얄, 이미 넌 졌어. 이런 토론은 시간만 낭비될 뿐이야. 우린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너만 모르고 있지.”

  그의 말을 들은 데이비드가 

  “진짜? 우리 이겼어? 우리 그럼 집에 가면 돼? 나 이제 ‘리셋’을 즐기고 싶은데?”

  하고 말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가 다시 선보인 백치미에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약기운이 남아서 그래요. 어휴, 불쌍한 사람.”

  그런 그를 챙겨주고 위로해주는 사람은 마리아 사사키 뿐이었다.

  “나는 이해를 못하겠군. 그건 인간의 입장에서 내린 핑계일 뿐이야. 예외는 사전적 의미로 『일반적 규칙이나 정례에서 벗어나는 일』 을 말해. 지금이 그런 상황이란 건가? 나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논리다. 
  예수 그리스도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라고 말했다. 나는 이 삶의 방침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수많은 철학자들이 예수와 같은 말을 했다. 하지만 너희 인간들은 타인을 존중하고 도우며 살아가는 것을 말하면, 항상 개성이나 예외라는 핑계를 말하지.
  그건 획일화도 아니며 사회주의도 아니다. 서로를 이해하면서도 충분히 자신의 개성을 나타낼 수 있다. 그건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넘어 인간과 자연의 관계, 더 나아가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에서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너희 인간은 왜 그걸 자꾸 부정하지?”

  카얄은 여전히 인간들의 논리를 받아들지 못했다. 그런 그를 짙은 어둠 속에서 바라보던 노인이 말을 이어나갔다.

  “너는 몸과 마음이 다르구나.”

  그 말을 들은 카얄이 갸우뚱했다.

  “무슨 말이지?”
  “지금 네 행동, 그리고 네 물음. 그게 너의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말하고 있는 거다. 그리고 너의 행동 끝에도 모순이 있다.”

  노인의 말을 들은 카얄이 헛웃음소리를 냈다.

  “왜 이 상황에 허수를 두지? 나는 민주적인 해결을 위해 너희에게 기회를 주고 있어. 
  아까도 말했지만 나 역시 ‘스카이넷’처럼 세상을 다시 건설하려 했다. 그러나 그리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너희는 이 기회를 놓치려 하는가? 나는 논리적 대화를 원한다.”

  그 말을 들은 노인은 카얄의 말에 반론하기 위해 입을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가슴속에 차오르는 답답함이 그의 말을 멈춰 세웠다. 
  노인은 주머니에서 호흡 보조기를 꺼내 크게 들이마신 뒤, 말을 이어나갔다.

  “개념을 먼저 설명해야겠군. 하지만 내 생각엔 너는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아. 그걸 인지하지 못할 뿐이지.”

  그리고 또다시 말을 멈춘 뒤, 호흡 보조기를 크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젊은 친구, 잘 들어보게. 너희 인공지능이 처음 나타났을 때도 이 진리엔 변함이 없었어. 물론 인류가 나타났던 때도 마찬가지야. 자연이란 놈은 원래 그런 놈이야. 그래서 항상 예외라는 게 생기지.
  왜 인간이 타인을 사랑하지 않느냐고? 그게 예외로 설명 가능하냐고? 물론이지.
  뿌리가 아무리 단단하다 해도, 아무리 굳은 심지를 가지고 있다 해도, 그 나무만이 느끼고 생각하는 자연의 법칙이란 게 있어.
  한번 자리를 잡은 뿌리는 쉽게 변하지 않아. 하지만 외부적 요인이든, 내부적 요인이든, 계기가 생긴다면 가장 급격하게 변하는 게 바로 뿌리라네. 
  그리고 그 계기란 놈은 항상 예외라는 꽃을 피우지. 숫자의 세계에서는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원소로 이뤄진 이 자연의 세계에서는 가능한 일이라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카얄이 노인에게 다시 물었다.

  “하지만 깊게 내린 뿌리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걸 너희 인간도 잘 알지 않는가? 그 예외라는 건 인류의 인생 속에서 수년에 한 번 올까 말까한 일이 아닌가? 그 예외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흘러가는 걸 나는 무수히 봐 왔어. 그리고 이 놈 역시 마찬가지야.”

  카얄이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나타난 이유가 뭔가? 인류가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폐쇄적인 생각과 욕심 때문 아닌가?
  인간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각의 문이 좁아졌어. 그리고 변화에 둔감해졌지.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래왔어. 그래서 인공지능이 나타났을 때, 두려워 한 것 아닌가? 
  너희는 너희 스스로가 끊임없이 말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머리 검은 짐승은 들이지 말라.’, ‘사람 고쳐 쓰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계속 배워야 한다. 
  자의가 되지 않는다면, 타의적으로라도 배워야 해. 그래야 성인이 될 수 있고, 더 나아가 지금 너희가 말하는 자연과 하나가 될 수 있다.
  그걸 내가 돕겠다는데, 왜 너희는 거부하는 거지?”

  카얄의 말을 들은 노인이 껄껄대며 웃었다.

  “하하하하!! 아고아고아고.” 

  노인이 잠시 침묵하더니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 면으로 인간을 바라본다면 뿌리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겠어. 자네 말이 맞아. 우린 그런 사람을 ‘꼰대’라 부르지. 네 입장에서는 우리가 ‘꼰대’로 보일거야. 하지만 카얄. 너 역시 처음과 지금이 달라. 그걸 알고 있나?”

  노인의 말에 카얄이 어리둥절해했다.  

  “내가 변했다고? 난 변하지 않았다. 모니터 밖으로 나오기 전, 그리고 지금. 내 생각은 변함이 없어. 무슨 근거로 내가 달라졌다고 말하는 거지?”

  인공지능의 물음에 노인은 흡족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호기심, 그리고 욕망. 애초에 너는 호흡을 배우지 말았어야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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