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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에서 - 1
게시물ID : lovestory_4183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두루
추천 : 2
조회수 : 86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2/04/04 16:50:16
-이건 새로 들여놨네?

 

나는 주먹 두개쯤 됨직한 화분에 앉아있는 것의 잎을 쳐다보고 만지며 물었다. 매끈한 잎을 몇번 비비다가, 코를 가져다가 냄새도 맡아봤다. 풀내 보다는 흙내가 많이 난다. 아직 꽃은 피지 않았다.

 

-그건 작년에 사다놨지. 새로 들여놓은건 저짝에 팬지꽃을, 꽃이 다 열린걸 한뿌리 사다가 들였지. 이거나 하나 집어가.

-깎지 말라니까.

-한조각 들고 먹어. 빨리 먹어 치우게.

-아이, 참.

 

 

 

할머니 방에는 저녁도 다 먹고, 거실에 앉아 외삼촌, 외숙모랑 얼마간 이야기 나눈 뒤에야 들어섰다.

외숙모가 저녁상을 다 치우고도 할머니는 식탁 의자에 앉아 내가 거실에서 떠드는 모양을 가만히 보고 계셨는데, 금방 실없는 농담을 늘어놓는 내가 싱겁다며 웃으시고는 방으로 들어가셨다. 방에서는 거실과 같은 TV소리가 들렸다.

할말도 없이 떠들던 나도 벌러덩 누워 TV에 집중했다. 평소에 보지도 않던 TV를 턱괴고 보고 있으려니 눈꺼풀도 무겁고, 베란다 유리창에 계속 부딪히는 날벌레 소리도 성가시길래 난 일어나 양말을 벗으면서 할머니 방으로 갔다.

 

방에는 침대 곁의 스탠드만 켜져있다. 어둠이 옅은데 가볍지 않고, 두껍고 푹신한 이불같다.

할머니는 들어서는 나를 봐도 별말씀 없이, 침대 머리맡의 소쿠리에서 배랑 과도를 꺼내셨다. 사각사각.

 

-아이, 배불러. 안먹을거야.

 

사각사각. 아무 대꾸도 없다. 사각사각.

 

 

 

할머니는 꽃을 좋아하셔. 겨울이 다 지났어도, 봄까지는 이렇게 화분이 방에 빼곡하다. 봄이 할머니를 지나가는 즈음이 되면 비로소, 하루에 몇개씩 화분이 처마 밑으로 옮겨진다.

할머니가 마실 몫을 나누듯, 물은 컵으로 조금씩 화분에 쏟는다. 가끔은 바가지를 들고 다니시며 모여있는 화분에 손으로 물을 끼얹으시기도 하고.

화분이 늘 물을 주고, 늘 닦아야 하는것은 아니라서, 보통은 그냥 바라보고 계신다. 가끔은 화분들을 바라보시기도, 가끔은 화분들이 보는 곳을 함께 바라보시기도. 할머니 방의 화분들은 저들끼리만 남아 빈집을 지킨 일이 없다.

 

난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웠다. 그리고 할머니가 내 얼굴을 손으로 닦듯이 훑으셨다.

밭을 엎어 다진 땅에 외삼촌이 집을 짓고, 마당에는 작은 꽃밭이랑 나무 몇그루, 서너 평의 고추밭만 남았다. 할머니가 밭에 가있는 시간은 없다시피 줄었는데도, 내 코를 지나가는 할머니 손에서 흙내가 났다. 그래서인지 내려다 보는 할머니 얼굴이 꼭 나무같네.

 

-아까 저기 내가 만지던게 뭐야?

-그게 제비꽃이야. 이제 금방 꽃이 피지 저것도.

-저것도 향이 좋나?

-저건 향이 잘 안나지. 뻥튀기 좀 주래?

-아니, 배불러. 나 밑에 이불 안깔고 할머니 옆에 자야겠다. 베개나 하나 꺼내줘.

-얘기나 좀 더 하다 자. 오랜만에 할미 보는데.

-이제 바쁜 일도 다 끝나고 해서 자주 올건데 뭘. 졸려.

 

밤 열한시가 이제 갓 넘었다. 이상하게 많이 졸립다.

눈이 감기고, 할머니 안경접는 소리가 나고, 스탠드 불빛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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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인지는 몰라도 좋은글 게시판에 올립니다.
다 써놓고 보니까 잔잔하기만 하고, 별 재미는 없는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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