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발이 거세진다.
공책의 줄 같은
기찻길 선로는 까맣고
아스팔트는 까맣고
길 위로 각색 각양 소재가 실려.
공책에는 줄이 있듯이
그 줄에 맞춰
문자를 필름처럼 수놓듯이
세상에도 줄이 있어,
가야 할 길이 있지.
지구는 공 모양이고
계속 적혀지는 책, 그래서
공책이란 말 생각해본다.
그런 차원에 태어났으니
뭐라도 계속 써야 해.
길에 놓인 순간
단 한 걸음이라도 방향성을 갖지.
제자리 혼자 서 있는 숫자 "1"이 적힐 때도
위에서 아래로
마음먹기 따라 아래서 위가 있어.
줄을 붙잡아
줄을 따라서
끝이 아득한 페이지를 걷는다.
발자국은 남기 마련, 그 미련이
고대 유적처럼 잊히든
아주 나중에 발굴되든
상형 문자로 남겨져
더 멋진 이야기가 쓰이도록
누군가한테 힌트를 줄 테지.
물론, 그중 아닌
많은 게
정보의 흐름 속 그냥 없던 것이 되지만
띄어쓰기가 겨우 공백이라고?
문명의 요소든
생명체 것이든
도태돼 감춰졌지만
그것 없이는
진화가 쓰일 수 없었어.
탈락이 있어야
시상이 가려지니, 숭고하게
멸실환이라 여긴다.
우린 꼿꼿이 선 펜의 육신을 지녔고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는 잉크의 영혼을 지녔고
한혈과 눈물을 뿌리면서
차차 닳아지자 희미해지는 도구.
곧
레퍼토리가 지겹고
문장은 더 새롭게
시대는 변해야 해,
허락된 분량이 있거든.
공룡을 봐.
몇천 만 년 동안 길을 지배해서
빙하기를 겪고서야
하얀 공책 위에
마침내 다른 장르가 적혀지게 됐어.
우리도 뭐 핵폭풍이 펄럭이면
새 페이지로 휘리릭 넘어가겠지.
그리고
사후는 무엇이 있지?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멍, 아마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