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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증과 문화의 발달 그리고 성도착자들.... 1편
게시물ID : phil_249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타자기사
추천 : 2
조회수 : 833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2/04/08 06:48:26
신경증은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합니다. 

히스테리, 강박, 우울증 등등이 모두 신경증입니다. 

신경에 이런 장애가 생기는 이유는 신경에 과부하가 걸렸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급속도로 발달하면 개인이 생존을 위해 처리해야 하는 과제의 양도 증가합니다. 

그런데 사회가 발달한다고 해서 개인이 그 만큼 발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과제의 양과 이를 처리하는 속도 상의 불균형이 발생합니다. 

쉽게 말해 사회의 발달은 앞선 시대의 축적된 성과물을 토대로 하는 반면 개인은 항상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개체는 언제나 계통의 발생을 반복해야 하니까요. 

시간이 흐를수록 한 개인이 처리해야 할 인생의 과제는 너무도 많아집니다. 

특히 사회의 급속한 발달은 미처 준비되지 않은 개인에게 엄청난 양의 과제를 부과하기 때문에 신경에 장애를 일으킵니다. 

급속도로 발전한 국가의 사람들, 이들의 정신 건강은 항상 염려스럽습니다.

사회의 급속한 발전은 일정한 패턴을 보입니다. 

1단계: 사회는 1세대 구성원들의 '비정상적인' 노력으로 성장에 성공합니다.

2단계: 2세대 혹은 3세대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우울증과 자살의 발생이 빈번해집니다. 

3단계: 사회의 발전과 인간의 행복은 무관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배고파봤던 1세대만 반대합니다.

4단계: 신경과 전문의들은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고 진단하거나 약물을 권장합니다. 

5단계: 의사들의 현실성 없는 진단에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들은 우울한 채로 근근히 살아갑니다. 

전문의들과 행복하다고 주장하는 연예인들은 욕심을 버리라고 충고합니다.

화끈한 이들은 좀 덜 도덕적으로 사는 것이 건강에 유리하다고 주장합니다.

비도덕성과 정신건강의 상호 보완성이 우리 시대에는 확실히 유효해보입니다.

정신의 행복을 위해서 욕심을 버리라고 하지만 개인의 신경이 처리해야 한다고 사회가 부과한 과제는 욕심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 

정신의 욕심을 포기하면 생존이 위태로워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생존과 직결된 과제에만 집중하기 위해 나머지 과제들에 투사되었던 에너지를 회수하려 합니다. 

특히 생존과 가장 거리가 멀어보이는 도덕적 과제들이 타겟이 됩니다. 

우리는 비도덕성을 선택함으로써 생존과 정신 건강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도덕성은 개인의 정신 건강을 보전하기 위해 사회의 정신 건강을 위협하기 때문에 사회의 생존이 위태로워집니다. 

사회의 붕괴는 개인의 몰락으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회가 부과하는 과제를 포기해서도 안되지만 비도덕성을 선택할수도 없습니다. .  

물론 부당한 사회에서 개인에게 주어진 과제는 부당한 사회의 척결이 되겠지요.

우리는 정신 건강을 빌미로 이러한 과제를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건강을 잃는다는 것은 모두 잃는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건강도 과제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급속도로 발전한 사회에서는 신경증과 함께 퇴폐문화도 동시에 증가합니다. 

급속한 발전과 신경증 그리고 성적 일탈은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성적 일탈을 그저 비도덕성의 문제로 치부하는 것은 너무 엉성합니다. 

사회가 부과한 과도한 과제와 신경증의 발발이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경증과 성적 일탈을 연관짓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원시적 생명체의 생존 일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원시적 생명체가 살아가기에 인생은 너무도 팍팍합니다. 

이 말랑말랑한 생명체에겐 외부의 사소한 자극조차 너무 강력해서 자신이 해체될 위험에 쉽게 직면합니다.

이들은 생존을 위해 내적인 결합력을 높여야 했고 이 과제를 성공적으로 이행한 생명체만이 살아남을 수 있게 됩니다. 

내부의 결합 에너지를 높여 외부 자극에 적절하게 반응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이 생명체에게 너무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해체에 맞서는 내적 결합 에너지를 얼마간 지녀야 하며 그 크기가 생존의 길이와 질을 결정합니다. 

한편 개체 내부의 결합도 뿐만 아니라 동족간의 결합력이 높을 수록 생존에 유리하며 세대간 결합력의 정도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따라서 식욕과 성욕은 결합 에너지와 직접적으로 연관됩니다. 

생명체는 내부의 결합도를 높이기 위해 먹어야 하고 동족간, 세대간 결합도를 강화시키기 위해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경우 사랑을 위한 성 에너지가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 오히려 문제가 됩니다.

인간은 발정주기를 극복한 유일한 생명체로써 성 에너지가 생식이 아니라 쾌락을 위해 복무합니다. 

성욕은 결합 에너지의 직접적인 표출형식으로써 생존에 너무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나 개인의 지나친 성욕은 공존을 위한 사회에 종종 위협이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인간이 구성한 사회는 으레 개인의 성을 통제하려하고 이때문에 엄숙주의로 흐르기도 합니다. 

사랑에 빠진 연인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두 사람 뿐이고 그들의 자녀마저도 방해가 됩니다. 

공존을 위해 개인이 자신의 욕구를 억제해야한다는 것에 이의가 없다면 성 에너지를 지나치게 많이 지닌 인간이 사회를 구성할 때 사회가 성욕을 통제하려든다는 것은 납득할만 합니다. 

물론 통제의 형식이 항상 문제를 일으키고, 이는 절대로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지나치게 중대합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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