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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선생 이야기가 나오길래 써봅니다.
게시물ID : history_2744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고금통감
추천 : 3
조회수 : 48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1/29 21:43:27
뒤에 글을 보니 백범 김구 선생님에대한 글들이 좀 있더군요. 뭐 이승만 대신 백범 선생이나 몽양 여운형 선생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이라던지..하는 그런 글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백범 선생을 존경 합니다. 그런데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이 분의 정치 역정을 보면 아쉬운 데가 많이 있습니다. 현실 정치 행보면에서 지나치게 명분을 내세우다 길을 좀 잃었다고 해야하나? 하는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독립 이후의 정치 행보를 보면 특히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많은 분들이 백범 선생을 우익으로보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백범 선생은 우익이나 좌익같은 근현대 정치철학적 잣대로는 평가할 수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근현대 정치철학을 기준으로해서 좌파다 우파다라고 나눌 것이 아니라, 개화된 위정척사파,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위정척사파 같은 느낌입니다. 

아무래도 봉건 왕조 시대에 젊은 세월을 보낸 분이고, 불교, 동학, 기독교를 거치긴 했지만 화서 이항로 학파의 제자였다는 고능선 선생에게 젊은 시절에 받았던 가르침의 뿌리가 엄청 깊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백범 선생이 후에 신문물을 접하면서 교조적인 성리학 가지고는 안 되겠다 싶어서 고능선 선생과 결별하긴 했지만 그 영향력이 일생 내내 지속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명분을 중요시하고, 백범 선생 말씀대로 이것이 시세에 유리하냐 불리하냐를 생각하지 말고 옳은 것이냐 그른 것이냐를 생각하라 라는 인생관이라던가 하는 것은 위정척사파와 그 결이 매우 유사합니다. 
어쩌면 그런 인생관 때문에 일평생 독립운동에 우직하게 투신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왠지 백범 선생과 고려 말기의 충신인 최영 장군과 비슷한 구석이 많다는 생각을 많이 해봤습니다. 

첫째 최영이 왕씨의 고려 왕조에 충성을 다 바쳤듯이 백범도 임시정부의 정통성에 충성을 다 바쳤습니다. 임정 주석이기 때문에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한 것이라는 정치적인 해석도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임정정통론만 지켜지면 이분은 정말 임정 비정규직 경비원도 하셨을 분 이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둘째, 타협에 서툴고 무력을 행사하는 방식을 선호하고 또 익숙합니다. 최영은 고려 왕조의 정통성에 장애가 되는 자는 무력으로 토벌했습니다. 정치적 타협이 뭐고 그런것을 한 적이 없습니다. 백범 선생도 다 아시다시피 무력 투쟁의 화신이었고, 일제는 물론이고 같은 독립운동가라 할지라도 임정의 정통에 장애가 되는 인물에게는 무력과 폭력을 불사했습니다. 해방 공간에서 정치적 라이벌에 대한 암살 배후 의혹설에 자주 시달렸습니다. 

셋째 깡과 용맹입니다. 최영은 수많은 전쟁터를 누볐고 심지어 60 노구를 이끌고 겨우 백여명의 군대만 끌고 선봉에서서 고지를 점령하고 있는 왜구 본진으로 쳐들어갔습니다. 그 담력과 용맹성을 짐작할만 합니다. 

백범 선생도 어렸을 때부터 칼을 들고 양반집에 쳐들어가고, 맨손으로 칼을 가진 일본인에게 덤벼서 패죽이고, 동학군에 가담하고, 임정 활동 중에있던 수많은 목숨을 노린 위기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남북협상도 그렇습니다. 김구의 직속 무장 조직으로 알려진( 물론 그렇지 않다는 설도 많습니다.)백의사의 수류탄 투척으로 김일성은 죽을 뻔했고 김일성의 외삼촌인 강양욱은 사망했습니다. 고로 백범의 북한행은 백범의 죽음을 의미할 수도 있었지만 개의치 않고 북한으로 갔습니다.

넷째 교활한 보수파 지략가와 친하게 지냈고 결국 결별했습니다. 최영은 이인임과 친했습니다.그러나 후에 결별하고 이인임을 쳐냈습니다. 백범은 이승만과 매우 친했고 심지어 교회도 같이 다녔으며, 줄곧 이승만의 권위를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정읍 발언을 거치며 균열이 생겼고 장덕수 사건으로 완전히 결별하여 대립관계가 됩니다. 그리고 암살 되는데 암살 배후는 이승만일 것이란 가능성이 강력히 제기 되어 왔습니다. 


다섯째 강력한 배외의식이라고 할까요? 최영이 명나라의 철령위 할양 요구에 군대를 동원해서 요동을 치려고 했었고, 친원파로 알려지긴 했지만 몽고군의 침략을 격퇴하고 제주도의 몽고 잔존 세력을 토벌한 것이 최영이죠. 백범도 행방 공간에서 미군정과 엄청난 갈등을 겪었고 반탁과 반소련 반공 운동에 모든 열성을 다 바쳤습니다. 이걸 악용한 일제협력자들이 반탁반공을 명분삼아 편승하여 생명 연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백범 김구 평전을 쓴 김삼웅씨도 말하지만 백범 김구 선생은 무인 기질이 투철한 인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전체적인 일생을 조감해봐도 정치인 기질보다는 군인이나 무인 기질이 더 강한 분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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