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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에대한 일본의 속사정
게시물ID : history_2749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고금연구가
추천 : 4
조회수 : 1184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7/02/07 17:07:17
http://m.blog.naver.com/alsn76/220235940614

독도에관한 한일간의 역사는 이곳에 매우 재미있고 잘 설명되어있으니 참조하시고..

자유게시판에서도 독도가 왜 우리 땅인지 논리를 알고싶다는 야기가 나왔고, 역사게시판에서도 우리가 일제부역자들을 제대로 처벌했다면 일본이 독도가지고도 저렇게 우기지 못할 것이란 댓글을 쓴분도 있어서 올립니다.

가장 독도문제의 시작은 근대이전의 불명확한 영토관념입니다.사실 중국과 대만 베트남,필리핀,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인접국가들간에 싸움이 붙은 남사군, 중국과 일본, 대만이 싸우는 조어대 도서분쟁의 출발도 여기서 비롯된 면이 있습니다

독도 문제로 돌아가면 전근대시대, 한국은 자국 행정구역에 독도를 넣었고, 일본도 독도가 조선 영토라고 알았고 그런 증거들을 문서로 기록하기도했습니다.그러나 그건 중앙 정부내지 관청문서상의 일이고 일반 백성들은 그런걸 제대로 몰랐습니다.

왜냐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바위섬이었기에 어부들 내지 벌목꾼들이나 지나다닐뿐 관심도 인식도 없었고 현대처럼 국경경비대가 검문소설치하고 여권 비자 확인해서 통과시키고 하는 그런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독도에 관아같은것도 없었고 말입니다.

그런 이유로 그냥 생선잡으러, 나무하러 조선인이던 일본인이던 아무런 제지없이 자유자재로 들락거린겁니다.공문서에 조선 땅이고, 일본인은 거기 들어가지 말라고 제대로 명령이 하달되지도 않았고, 하달되었어도 지키는 녀석도 없었고 제지하지도 않았습니다.조선이라고 딱히 정부차원에서 공들여 관리하지도 않았습니다.그러다보니 양국 주민간 도중에 충돌도 있었고 그런 와중에 벌어진게 안용복 사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개화기에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세밀한 영토와 국경 개념이들어왔고 1900년 대한제국 칙령으로 독도는 한국령으로 공포되지만 1905년  이를 무시하고 일본은 시마네현 고시로 독도를 시마네현 소속으로 만들었습니다. 러일전쟁을 대비해 러시아 함대를 감시할 요충지이기도 했고 자기네 어부들이 고기잡고 나무베고 물개잡고 하니까 아예 일본땅으로 만들자 한겁니다.


그리고 한국이 일본 식민지가 되고 당연히 일본 어부들은 자유자재로 독도 주변을 들락거렸겠지요? 시마네,돗토리 현 주민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즉 독도 해역은 이들 두 개현의 어민들의 주 수입원이었거란 이야기 입니다.

그런데 일본이 2차대전에서 깨지고 혼슈,시코쿠,홋카이도,규슈 및 그 부속섬들로 일본 영토를 규정하게되는데 여기서 우리측의 실책으로 독도의 영유권이 한국에 있다는 이야기를 미국과 영국측에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냉전상황으로 이 조약체결에 참여하지도 못했습니다.

이 조약으로 일본은 제주도,거문도,울릉도 등 옛 한국영토에대한 소유권 주장을 하지 않게되는데 독도라고 분명한 표기가 없으니 일본은  독도를 한국영토로 인정한적없다고 뻗대게 된거죠. 

이를두고 저의 대학때 국제법  교수님은 그럼 강화도,흑산도, 진도, 대부도 등등도 다 일본땅이게? 웃기고 있네 라고 하신 바 있습니다.


그럼 왜 일본은 독도에 이렇게 욕심을 부리고 미련을 버리지 못하느냐? 흔히 독도 해역에 나는 천연가스가 탐이나서 그런다 라고 알고 있긴한데...독도 해역에 천연가스 난다는게 알려진건 뭐 1980년대? 1990년대? 하여튼 그 때 알려진 이야기고 그 이전부터도 일본은 독도에대한 미련을 계속가졌습니다.

도대체 왜? 한일회담 당시 일본측 국장이던 이세키 유지로의 히비야 공원 크기만한 폭파시켜도 상괂없다던 그 작은 돌섬에 왜?  
바로 어족자원때문입니다. 정확히 말해서 자기네 어민들, 특히 인근의 시마네, 돗토현 등의 어민들 생계가 달린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광복 이후 독도를 한국영토로 아예 못을 박은 이승만 해양선도 독도는 우리 영토란 개념을 확실히 가져서가 아니라 그 주변 우리 어민들 생계보장을 위해서였던 겁니다.우리 어민들도 거기서 생선많이 잡았는데 일본땅으로 넘어가면 황금어장을 뺏기니까, 심지어 당시에는 일본 어선들은 엔진이 달렸지만 한국 어선은 돛단배,노젓는 배였기에 더했습니다. 일본애들이 황금어장 생선 다 잡아가게 생겼는데 경상도, 강원도 어민들은 뭐 먹고 사냐? 이렇게 된겁니다.

결국 우리의 닥터 싱만 리가 결단을 내립니다.해역선을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거기서 출몰하는 외국 선박은 죄다 나포, 즉 잡아처넣어라라고 명령했고 당연히 바로 전까지만해도 너무도 자연스럽게 독도 해역에서 고기잡던 일본 어민들이 무더기로 잡혀와서 깜빵에 들어갔습니다. 이승만 안티인 저도 인정하는 닥터 리의 업적이기도 하지요.

자국 어민들이 잡혀가니 일본이 가만 안 있게 된 겁니다.여기에  독도 해역에서 해산믈 잡아다 생계유지하던 시마네, 돗토리현 어민들이 "거기가 우리 밥줄이었는데 우리는 뭐 먹고 살라고!! 정부는 보고만 있을건가?"라고 나온 겁니다.
"거긴 대대로 우리가 생선 잡던 곳인데 거기가 왜 한국 땅이라고 하루 아침에 우리를 잡아가!"뭐 이렇게...걔네들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운 반응이였습니다. 

전근대 시대때는 거기 한국땅이니 가지말라고 제대로 제지받은 적도 없었고 식민지 시대때는 당연히 일본 영역이니 가서 생선잡을 수 있었을 테니까...
한국 생활경험과 지식이 좀 많은 일본인이 1990년대에 쓴 책에의하면 거기 주민들의 정치인과 정부에 가하는 압력을 무시할 수 없었다고 하더군요.

사실 독도의 존재는 2000년대 이전까지는 시마네,돗토리 현등 독도에 생계와 이해관계가걸린 동네 주민들을 제외한 타지역 주민들은 제대로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습니다. 일본에는 다케시마란 이름의 섬이 독도말고도 대여섯개가 더 있기때문에  거기 이야기 하나보다 했다는 겁니다.

그러나...2008년 세계경제위기가 터져 안 그래도 거품붕괴로 어려웠던 일본 경제가 더 어려워지면서 인간들이 우경화하기 시작한 겁니다.여기에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인한 고통과 불만을 잠재우려면 애국심 마약, 내셔널리즘 아편이 가장 좋았고 인접국가 때리기가 좋았던 겁니다.

그러자 이제는 독도가 일본 내셔널리즘의 아이콘 중의 하나로 떠오른 겁니다. 여기에더해서 러시아와 분쟁이있는 쿠릴 열도 4개섬, 중국과 분쟁이있는 조어대 섬들과 연결되어서 독도를 포기한다는 것은 곧 쿠릴 4개섬과 조어대 섬들에대한 의지가 없다는 뜻으로도 읽히기때문에 더 목숨을 걸게 된 겁니다.

이제 독도의 존재에대해서 모르는 일본인은 거의 없습니다. 즉 처음에는 인근 어민들 생계보장 차원에서 어족자원을 더 많이 차지하기위해 독도를 일본영역으로 만들었는데..일단 그렇게 하다보니 포기가 안 되는 겁니다.계속 우겨야하는거죠.여기에 이제는 심지어 쿠릴 4개섬, 조어대와함께 일본 내셔널리즘의 상징이되어 반드시 지켜야할 일본의 영토란 이미지까지 생겼습니다.

결국 남은 우기기밖에 없는 겁니다. 거기 한국 영토 맞다고 인정하는 순간 내각과 정부가 박살나고 총리이하 장관들과 정치인들은 돌팔매에 맞아 죽을 겁니다.  독도는 일본영토 주장을 조금이라도 게을리하면 야당 혹은 일본 국민들의 공격대상이되기 십상이 되게 된겁니다.매국노라고...   

우리나라가 일제부역자 후손들과 친일정치인 잡아처넣는다해도 저짓은 계속 될겁니다. 왜냐? 안그러면 매국노가 되어서 몰매맞고 죽게 생겼으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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