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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소설)몽상 -2-
게시물ID : readers_2750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먼지티끌
추천 : 5
조회수 : 29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1/25 22:4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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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를 보니, 상당히 읽기 불편해 보여서 글 구성 방식을 약간 달리 해보았습니다. 1편도 고치고싶지만 조회수 50 이상은 고칠 수 없다고 나오네요ㅠ
 네이버 소설에도 연재 중이니 그곳에서 더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네이버 웹소설 1화 링크 - http://novel.naver.com/challenge/detail.nhn?novelId=615013&volumeNo=1
 오늘의 유머 1화 링크 -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readers&no=27487&s_no=27487&page=1


 청소를 마친 사내는 기기 앞에 앉아 작업을 시작했다. 노인으로부터 받은 사진을 토대로 대상을 자료화한다머리 꼭대기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을 직접 창조해야 하는 성가신 작업이다. 하지만 정작 힘든 일은 따로 있었다. 간혹 기억을 구현해달라는 손님이 있는데, 후회되는 과거를 가상현실 속의 기억으로 대체하려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상황이 자신의 기억과 일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사내는 직접 기억 속 장소를 찾아가 길게는 일주일까지 머물며 현장 조사를 해야 한다. 물론 이때는 추가비용이 청구된다. 그렇게 일정 반경 이내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나면 다시 일주일 동안 자료화하는 작업을 한다. 그러면 비로소 손님을 받을 준비가 끝난다.

 

 한창 작업에 열중할 무렵,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사내는 예약목록을 뒤졌다. 이 시간에 오기로 한 고객은 없었다. 경찰인가? 사내가 밖에 대고 말했다

 누구십니까

 저, 혹시, 여기가 가상현실 가게 맞나요

 여자 목소리였다. 발음이 샌다. 하지만 어조가 일정한 거로 보아 취한 사람은 아니었다

 누구신데요

 이름 말해줘도 모르잖아요

 손님인지 경찰인지는 알아야 할 거 아닙니까

 손님이에요

 솔직히 말하면 손님이 아니어도 문제 될 건 없었다. 건물을 포함한 주위의 땅은 모두 사내의 소유였고, 기기는 버튼 하나면 모든 자료를 지우고 평범한 전산기로 돌아갈 것이다. 지금껏 해온 작업물이 아깝긴 하겠지만 징역 사는 편보단 훨씬 낫다. 사내는 문을 열었다. 여자는 색안경과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가상현실, 그거 하러 왔어요

 여자가 말했다. 다행히 강도는 아닌듯하다. 사내는 들고 있던 권총을 몰래 내려놓았다.



 사내가 차를 내왔다. 하지만 여자는 가만히 앉아있기만 했다

 드세요. 비싼 찹니다

 여자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복면을 내렸다. 화상으로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사내는 입술 없이 하얗게 드러난 이에서 애써 시선을 돌렸다

 어, 그러니까. 가게가 처음이십니까

 네. 하지만 어떤 곳인지는 대충 알아요

 여자는 다시 얼굴을 가렸다

 예전 얼굴로 다시 돌아가 보고 싶어요. 가능하죠

 가능하긴 한데, 추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왜요

 한 번 바뀐 모습을 보고 나면 앞으로 지금 모습에 만족하지 못할 겁니다

 괜찮아요

 사내는 여자의 조촐한 옷과 가방을 슬쩍 훑었다

 어떻게 알고 오신 건진 모르겠지만

 이거 꽤 비쌉니다

 알아요

 여자는 단호했다

 그 돈이면 치료하는 게 나을 텐데.......? 

 그만큼은 없어요

 오백만 원이 전 재산이에요

 오백만 원이면 한 시간 밖에 못합니다. 게다가 그 돈으로는 정말 얼굴을 구현하는 정도가 전부입니다. 주변 배경이나 상황을 설정하는 데에도 추가 비용이 들거든요. 차라리 오 분 정도만 하고 남은 돈으로 치료받으시는 쪽이 나을 겁니다

 아뇨. 이 돈으로는 완전복구가 불가능한 거 알잖아요? 게다가 방벽 밖에서 그런 기술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그냥 한 시간 동안만이라도 예전 얼굴로 있어 보고 싶어요

 그다음엔 어떻게 할 겁니까

 죽을 거예요

 사내는 순간 눈살을 찌푸렸지만 이내 무표정한 얼굴로 되돌아왔다

 그런 거라면 더더욱 해 드릴 수 없습니다. 이건....... 

 저기요

 여자는 말을 가로챘다

 참 말이 많으시네요. 여긴 손님이 어떤 부탁을 해도 들어주는 곳 아니었나요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짐승만도 못한 것들이 현실에선 다가가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가상현실로 구현해서 욕정 푸는 곳이잖아요. 제 부탁이 그 사람들보다 못한 거예요? 연예인을 불러내겠다는 것도 아니고 미성년자를 보겠다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냥 얼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제 얼굴 좀 보겠다는데 왜 그렇게 막아서요? 의뢰가 뭐든, 그 후에 내가 어떻게 되든 간에 신경 안 쓰면 안 돼요

 여자는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책상을 내리쳤고 그 바람에 잔이 쓰러졌다. 머쓱해진 사내는 귀밑만 긁적였다.


 

 사내가 책상을 치우는 동안에도 여자는 말이 없었다. 사내는 슬쩍 눈동자를 굴려봤지만 얼굴을 가린 탓에 어떤 표정인지도 알 수 없다. 사내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더는 참견하지 않겠습니다

 그제야 여자도 입을 열었다

 고마워요. 그럼 언제쯤 다시 오면 될까요

 좀 오래 기다려야 합니다

 예약이 많은가 보네요

 그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의뢰 하나에 소요되는 시간이 많으니까요

 사내는 예약 목록을 뒤적였다

 두 달 뒤에 오시면 됩니다

 두 달이나 걸려요? 의뢰가 얼마나 많은 거예요

 얼마 없으니까 그 정도입니다. 원래는 평균이 반년인데 최근 몇 년 사이에 같은 업체가 생겼는지 손님이 많이 줄었습니다

 그렇군요.......



 여자는 문을 나서다 말고 가방에서 종이 하나를 꺼내 건넸다

 잊고 있었네요. 이걸 드려야 작업 할 수 있겠죠

 종이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앳된 소녀의 모습이 있었다. 제법 예쁘면서도 어딘가 낯익다는 생각은 잠시 구석으로 치우고, 사내는 언제나처럼 종이를 눌렀다. 하지만 소녀의 미소는 그대로였다. 여자가 건넨 것은 흑백사진, 그것도 원색사진에 인위적인 조작을 가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흑백사진밖에 찍지 못하는 백 년도 넘었을 법한 골동품으로 찍은 것이었다. 간혹 정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답시고 그런 사진기만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여자의 재산 처지를 보아 수집가는 아닐 것이다. 사내는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7x8cm 종이 안에 박제된 소녀와 소녀의 미소와 밝음과 어두움의 조합만으로 소녀를 둘러싼, 해가 뜨는 지 지는지 구분할 수도 없이 그저 산등성이에 걸쳐만 있는 해의 시간과, 푸른 보리밭인지 황금빛 들판인지도 구분 못 할 공간의 조화는 어딘가 기이함마저 들었다. 움직이는 사진에 익숙한 사내에게는 소녀가 금방이라도 미소를 풀고 자유롭게 움직일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사내는 사진 속 소녀가 영상에서 마냥 계속 웃고 있다고 생각했다. 오래 쳐다보면 언젠가 아름다운 미소가 극심한 경련 속에 신음하며 일그러질지도 모른다.


 뭐 하세요

 여자의 말에 사내는 정신을 차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내는 끊임없이 사진을 누르고 있었다. 재생이라도 하려는 듯이. 사진을 잡은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사내가 말했다

 이 사진으론 정확한 데이터 구축이 어렵습니다. 다각도의 영상이나 최소한 원색사진이라도 뽑아 오셔야 합니다.

 여자는 사내에게서 도로 사진을 돌려받았다

 옛 모습까지 보여줬는데 아직도 모르시겠어요

 무슨 말씀하시는 겁니까

 다른 사진이 필요하다고 했죠? 이미 그쪽이 하나 갖고 있을 거예요

 사내는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모르겠습니다. 무슨 말인지.......라고 말하던 사내는 아, 하고 조그맣게 외치더니 책장 앞으로 달려갔다. 먼지 쌓인 앨범 하나를 꺼낸 사내는 한참을 뒤적이다가 사진 하나를 가리켰다

 3학년 417, 맞습니까?

 복면 탓에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광댓살의 움직임으로 보아 웃고 있음이 분명했다. 뒤이어 들리는 명랑한 웃음소리가 이를 입증해주었다. 사내가 십오 년 전 기억 저편에 묻은 웃음이었다.



 사내는 여자와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십 년이 넘는 세월은 사내를 첫사랑에게마저 무디게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여자가 건네고 간 계약금을 보며 사내는 이내 자신의 처지를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가게 주인. 추억은 분명 기쁜 기억이겠으나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는 못했다. 얼마 내리지 않은 단비는 갈라진 땅으로 순식간에 스며들 뿐이다. 여자는 이제 손님에 불과했다.


 간만의 추억을 즐기는 것도 잠시뿐, 사내는 곧 자리로 돌아와 칠순을 앞둔 노인을 상대해야 하는 열여덟의 소녀를 자료화하기 시작했다. 전자 종이 속 소녀는 무엇이 그리 기쁜지 여전히 웃으며 춤추고 있었다. 조금 전 여자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짐승만도 못한 것들이 연예인이나 미성년자 상대로 욕정 푸는 곳....... 사내는 앨범 속 여자와 종이 안에 소녀를 번갈아 봤다. 세상 물정 모르는 천진난만한 웃음 때문에 사내는 기껏 만들어 놓은 자료를 몇 번이나 지웠다 다시 그리기를 반복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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