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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리더십이 경제개발에 끼친 영향
게시물ID : history_2751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고금연구가
추천 : 1
조회수 : 941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7/02/11 15:03:24
밑에 박정희의 경제개발에있어서의 역할, 특히 중공업 진흥에있어서의 역힐에 대한 토론 글이 있었는데요. 저는 이시타르님의 의견에 동의하는 편입니다.즉 박정희의 지도가 영향력을 주었다고 보는 쪽입니다.

징하준 교수 말마따라 국가 산업 진흥을위해서는 중앙정부의 감독과 육성이 필요합니다.그런데 이승만의 경우 그런 계획개발정책에대해서 그것은 소련 공산주의 방식이라고 거부하다 말기되어서야 un의 권고와 국내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서 계획개발을 세웠고 2공화국때 수정되었는데 정치불안으로 실천되지 못하고 3공화국때 되어서야 다시 수정보완되어서 실천된것으로 압니다.


장하준 교수 말을 빌리면 박정희는 독재자고 파시스트였지만 국가 경제를위해서 제법 현명한 몇가지 조치를 취했다고 했는데 그걱이 계획개발, 산업보호, 외화유출 적극방지 등의 중앙통제경제였습니다.

그런데 이건 박정희만 한 게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산업화를 위해서거쳤던 과정들이란 것입니다. 박정희 덕에 우리가 산업화가 되었다 박정희 만세!! 박정희 님 짱!! 믿쓥니다. 이런 차원이 아니고...

산업화를위해서 이승만이 취하지 않았던 필요한 조치를 박정희가 실행에 옮겼다는 면에서, 즉 케인즈 방식의 조치를 취했다는 면에서는 평가를 해줄 수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여기에 베트남 전쟁 특수와 참전대가로 받은 미국의 대폭원조, 한일수교를 통해 유입된 일본 자금이 그 밑천이 되었습니다.즉 박정희의 조치만으로 된건 아니고 외부요인과 함께, 우리도 가난을 면해보자는 국민들의 각오로인한 희생과 손해 감수도 큰 역할응 했습니다.더 좋은 외국제 안 쓰고,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을견디고 했었습니다. 즉 정부의 리더십, 외부자금, 국민 희생 이 세가지가 모여 이룩한 것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정부 리더십이 한 축이니 이면에서 박정희의 리더십이 기여를 했다고도 볼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의 각종 폭압행위가 면죄되는건 아고 그런 독재폭압행위는 경제개발과는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그런데 1970년대 들어서 남베트남이 무너지고, 미국이 대륙 중국과 수교하고 대만을 버렸습니다.이에 힘입어 소련의 혁명수출도 활발해졌고, 1960년대 말기에 북한에서 좌경모험주의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무장공작원 침투사건, 푸에블로호 납치, 판문점 도끼만행등이 벌어지면서 박정희는 안보위협을 느끼면서 자주국방의 필요성을 절감합니다.

여기서 도출된 것이 중화학공업 진흥정책입니다.중화학공업 진흥정책은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못하게 막았지만 박정희의 의지대로 밀고 나갔다고 봐야합니다, 당장 포항제철도 미국이 반대했지만 일본 자금 빌려다가 밀어붙인거죠.

1960년대 개발과는 달히 1970년대 중공업, 군수공업 진흥은 외부에서 빚을 끌어다가 추진했습니다.특히 일본 돈.일본에서야 돈 빌려주고 나중에 엉망이되면 그거 핑계로 집어먹을 꿍꿍이도 있었다고 합니다.

석유파동과 국제 스태그플레이션으로 경제가 어려워질 때 부마항쟁, 박정희 암살, 서울의 봄, 광주항쟁, 전두환과 신군부 집권이 연이어 일어났는데.. 3저 호황과 김재익의 산업구조개편으로 한국 경제가 위기를 헤쳐나갔습니다..그렇다 호황을 즐기디가 맞은게 IMF 금융구제...


박정희 식 경제개발을 두고 유종일 교수와 장하성 교수는 대기업의 독점체제 만들고, 정경유착을 통해 시장질서를 해고 지역간 불균형이란 결과를 낳았고 오늘날의 경제문제 촉발의 근원이 되었다고 하지만...

장하준 교수나 송병락 교수는 또 그로인해서 산업화의 기틀이 마련되었고, 그런 방식은 어느 나라나 산업화하면서 밟는 과정이며, 특히 중공업 진흥은 대기업과 정부의 관리감독없이는 힘들었다...중소기업중심의 대만은 자력으로 자동차, 배같은 것은 못만드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사실 토론에서 소련과 중국이야기도 나왔는데, 소련은 말할 것도 없이 스탈린의 리더십과 강제력이 십분 발휘되었고 중국의 경우에도 대약진정책으로 중국경제가 박살 나는데도 모택동은 중공업 집중투자는 꾸준히 했고 이는 현재 중국의 중공업과 항공우주산업에서 성적을 많이 올리는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물론 농민들은 죽어나갔습니다.

어느나라든지 산업화를위하서는 특히 중공업방면에서는 많은 노동력과 자원을 쏟아붇고도 단시간에 결과가 안 나오고 실생활에도 바로 연계가 없기 때문에 희생과 인내를 강요할 강제력이 필요합니다. 선발선진국은 여유가 있으니까 필요 강제력이 비교적 작지만 후발국가에서는 여유없이  희생과 인내가 강요되기 때문에 혹독한 강제력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란 것입니다.

종합하면 박정희의 리더십은 산업화에 큰 영향을 끼쳤고 지금 시점이서도 교훈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악영향도 많았고 그 악영향을 어떻게 개선힐 것인가가 숙제가 되었다 .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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