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곧 내용이지만... 디테일을 좀 살려봅니다.
소개팅으로 만나게 된 여자가 있는데요,
처음 보고 성격 외모 모두 시원스러운지라 나름 관계를 진전시키고 있습니다.
남녀가 몇번 만나다보면 대충 신상조사가 끝나잖아요? 취미, 가족, 좋아하는 음식 등...
다른건 몰라도 이 여자분은 운동을 좋아하시더라구요. 피트니스클럽도 다니는 것 같고...
...저는 그런 면이 좋았습니다.
저도 운동 좋아하고, 지나치게 내숭충만한 여자는 싫기도 했거든요.
어제도 만나서 천사다방에 갔습니다.
이런 저런 담화를 섞던 도중... 웨이트 이야기로 샜더랍니다.
이분 웨이트에 대해서도 제법 아시더라구요.
아예 그냥 저는 두 눈이 ♡.♡가 되서 열심히 들어줬죠.
그렇게 정신없이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
"팔씨름 해볼까요?"
"아 예. ...네!?"
정신을 차리니 이미 테이블 위에 팔꿈치를 찍어누르고 있는 여자님 -0ㅡ;;
자 생각을 해보자. 여긴 천사다방이야. 내 주위엔 다른 사람들이 앉아있어. 보통은 젊은 사람들이지. 저 사람은 폰만지고, 저 사람은 책읽고, 저 사람은 이야기하고 있네. 자, 팔씨름 하는 사람을 찾아볼까? 다행히도 아무도 없네. 이 테이블 빼고. 종업원이 벌써 커피숍에서 보통 사람은 하지 않을 이 여성분의 이상한 자세를 눈치챈 것 같은데. 여기 보지 말고 문으로 새 손님 들어오니까 주문이나 받으세요. 저 화이트초콜릿모카에 자양강장성분이 있었나? 이럴 줄 알았으면 숏으로 시켜줄걸. 근데 이런 생각을 되도록 빨리 끝내고 행동에 들어가야 이분이 어색한 자세를 창피해하지 않을텐데. 손 되게 이쁘시네요. 여튼 손 잡을 기회 주셔서 ㄳ.
"얼른 하세요."
그래 일단 배틀에는 응하자.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자세가 부끄러워. 빨리 끝냈으면 좋겠어. 종업원이 주문 받으면서도 여길 보고 있어. 젠장 피하지마요 눈마주친 거 다 알아. 왜, 신기함? 나도 그래. 어쨌든 지금은 눈앞의 상대에게 집중해야 한다. 어쭈 내 팔꿈치 밑에 자기 손을 괴는 걸 보니 한두번 해본 게 아닌 듯. 상대방이 이러면 나도 해야 하잖아. 아, 님 손이 참 부드러우신듯.
"제가 시~작할게요?"
네네. 전 준비됬으니 어서 하세요. 그나저나 시선처리 안되네. 아놔 이번엔 앞테이블 사람과 눈마주쳤어. 웃지마-.-^ 그래도 종업원은 웃지는 않는 예의를 갖춰주잖아. 자 일단 하긴 했는데 이겨야 되나, 져야 되나? 지는 것은 남성의 존심이 용납하지 않고 이기자니 여자 앞에서 힘자랑하는 마초로 보일 것 같고. 그나저나 만난지 일주일도 안됬는데 팔씨름하는 남녀도 있나? 옷 고르는 시간 좀 아껴서 지식인에 커피숍 상황별 대처 매트릭스같은걸 찾아봤어야 했나? 나랑 눈마주친 앞사람이 일행한테 속삭이는 게 보인다. 속삭임이 들리진 않았지만, 그 테이블 네명이 일제히 여길 힐끗거리는 걸 보니 내용은 대충 짐작가네.
"시작!"
그래 일단 이기자. 상대는 운동으로 다져진 체력이 있으니 내가 이긴다고 해서 나쁘게 비춰지진 않을ㄻㅇㄴ히ㅏ;ㅁ소ㅜ'무ㅗㅠㅑㅜㅠㅁ도ㅓ ㅗ품 ㅇ러ㅣ;멈ㄴ야ㅗㅎ;/ㅑㅁㅇㄴ 어 손등이 테이블에 키스할 뻔 했잖아? 여기서 이기려면 힘좀 써야겠ㄱ1ㅓㅗㅅ호 무'ㅁ노쿄ㅗㅂㅁ'ㅈ도ㅜㄹㅇ니ㅑㅜㅋㅌ;퓨ㅜ모'ㅐㅑㅁ
"이겼다!"
막판에 힘쓰느라 시뻘개진 얼굴을 보이지 않기 위해 3초만 숙이고 있자. 아놔 근데 창피해서 화끈거림이 가시질 않아. 내가 테이블위에 백너클을 날린 순간 들려온 풉 소리는 앞 테이블 사람들이 분명해. 그 사람들에게 나는 여친(은 아니지만)에게 최선을 다해 져주는 남자의 훈훈한 모습은 개뿔 커피숍의 팔씨름이란 희대의 닭살행각을 보고 재수털렸다는 표정을 하고 있겠지.
"운동하셨다면서 별로네요~"
헐. 상처ㅠㅜ
여자분의 표정을 보니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려.
그걸 보는 저는 그저 허허 웃음만.
다시 하자고 할까?
라는 마음이 샘솟았지만 왠지 처참해보일 것 같아서 꾹꾹 눌러담았습니다.
뭐 이날의 만남은 그렇게 마무리.
다음에 보자고는 했는데요. 아직도 창피합니다;;
슬기로운 오유님들, 판례를 만들어 주소서.
여자에게 남자는 팔씨름을 져야 합니까, 이겨야 합니까?
그것도 힘 좋은 여자한테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