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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readers_2755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R18
추천 : 1
조회수 : 377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7/01/30 13:35:29
glaireous 끈끈한, 점성이 있는
aspersory 성수를 담아두는 그릇
zaftig <여자가> 풍만한, 곡선미가 있는, 글래머의


우리 종교의 세례식은 어두컴컴한 토굴 안에서 이루어진다. 토굴의 벽을 파내어 만든 선반에는 수백 개의 양초가 타오르고, 그것이 굴 안을 밝힌다. 기껏해야 스무 명 남짓이 들어갈 수 있는 토굴을 밝히기에는 조금 과한 양인 것 같기도 했지만, 신부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에 어둠이 깃들 것이라며 항상 많은 양의 양초를 켜두도록 했다.

나는 원래 세례식에는 참가하지 않는다. 나는 이미 세례를 받았고, 기본적으로 종교를 믿기는 하지만 그 미적지근하고 텁텁한 공기가 감도는 토굴에 들어가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신부님도 굳이 세례식에 참석하는 것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건 일반적인 예배도 마찬가지였는데, 내가 생각하기엔 토굴이 너무 좁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난 오늘 세례식에 참가했다. 내가 토굴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제법 많은 수의 또래 남자애들이 자리를 차지한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 녀석들 역시 평상시에는 예배에 참가하지 않는다. 예배에 참가하지 않는 내가 그 사실을 알 수 있는 건, 예배가 이루어질 시간에 그 녀석들과 공터에 모여 공을 찼기 때문이다. 우글대는 녀석들의 모습을 보기만 했는데도, 평상시의 답답한 냄새 대신 시큼한 땀 냄새와 찌든 기름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나는 키가 멀대 같이 큰 친구의 곁에 자리를 잡았다. 녀석은 짐짓 경건한 척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러다 내가 옆자리에 앉자 슬쩍 눈을 떴다. 녀석은 자기도 다 안다는 듯한 미소를 띠었다. 녀석이 내게 몸을 살짝 기울인 뒤 속삭였다.

“이 새끼, 관심 없는 척 하더니만.”

나는 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는 ‘트허흐허’ 하며 고통과 즐거움이 반쯤 뒤섞인 탄성을 냈다.

나와 친구를 포함한 남자놈들이 세례식에 모인 이유는 단순했다. 오늘 세례식의 주인공이 특별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특별함은 우리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토굴 안쪽에 하나 더 파놓은 작은 방에서 나이 든 신부님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의 손에는 희미한 빛을 내는 투명한 연두색 액체를 담은 병이 들려 있었다. 신부님은 성수가 담긴 그릇을 연설대 위에 올려두었다. 그는 잠시 왼손을 가슴에 얹고 기도하더니, 입구 쪽을 향해 손을 뻗어 가볍게 흔들었다.

‘자박’하고 흙과 굵은 모래를 밟는 소리가 났다. 남자애들의 고개가 일제히 입구를 향해 돌았다. 단 한 놈도 빠짐없이. 거기엔 물론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비교적 어두운 복도로부터 새하얀 튜닉을 입은 여자아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애들 모두가 기다리고 있던 주인공의 등장이었다. 옷의 모양새가 튜닉일 뿐, 그녀가 입은 것은 체모가 다 비칠 정도로 얇고 부드러워 속옷이나 잠옷에 가까웠다. 

옆자리에 앉은 친구놈이 급하게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 덕분에 내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녀가 고개를 푹 숙인 채 토굴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연설대 앞으로 다가갔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남자애들은 굴에서 빠져나와 적의 모습을 쫓는 설치류처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연설대 앞에 선 뒤, 한 바퀴 돌아 우리 쪽을 바라보곤 다소곳이 무릎을 꿇었다. 아마 몇 번은 연습했을 것이다. 나 역시 세례를 받을 때 그랬다. 그녀가 무릎을 꿇자 신부님이 다시 기도를 올렸다. 남자애들은 봉긋 솟아오른 그녀의 가슴팍을 쳐다보다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높으신 그 분의 권능 앞에, 오늘 또 하나의 여린 생명이 무릎을 꿇었습니다. 부디 당신의 종복이자, 수족이자, 은혜를 몸소 체험할 여린 생명이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보살펴주시옵소서.”

엉성하게 만든 연설대가 삐걱거렸다. 이제 조만간 신부님이 성수가 든 그릇을 들고 그녀가 앉아 있는 곳으로 내려올 것이다. 나는 아주 살짝 실눈을 떴다.

“이것은 그 분의 손길, 그 분의 눈물, 그 분의 피와 땀이니라. 이로 인해 너는 죄 사함을 받을 것이며, 그 분께서 너의 죄를 사하신 것만큼의 너그러움을 다른 이에게도 베풀어야 함을 잊지 말지어다.”

신부님이 그릇의 뚜껑을, 열고 그 안에 든 성수를 그녀의 정수리에 붓기 시작했다. 아주 약간의 점성을 가진 액체가 그녀의 머리칼과 꼭 감은 눈, 콧날,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제법 많은 양의 성수가 들어 있던 그릇이 바닥을 드러냈다.

누군가에게는 죄 사함을 받는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죄를 짓는 순간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녀의 풍만한 가슴에 걸쳐 있던 천이 짓궂은 장난을 치듯 그녀의 몸에 달라붙었다. 그 어느 곳을 보아도 촛불을 받아 노란 빛으로 번쩍이는 아름다운 곡선뿐이었다. 그녀가 차가운 성수의 기운에 어깨를 움츠릴 때마다 어떤 곳은 급격하고, 어떤 곳은 완만한 수많은 곡선들이 파르르 흔들렸다.

그 때 어떤 놈이 침을 꼴깍 삼켰다. 나는 세례를 받고 있는 그녀가 수치심에 괴로워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그 못된 놈을 찾으려다 친구 놈과 눈을 마주쳤다. 녀석은 가늘게 뜬 눈으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침을 삼킨 게 나라는 걸 깨달았다.

“이제 너는 그 분의 종복이자, 수족이자, 그 분의 은혜를 몸소 받게 될 몸이라. 항상 가르침을 잊지 말고 그 분께서 행하신 것처럼 남을 사랑하고 베푸는 삶을 살지어다.”

내가 기억하기론 그게 세례식의 마지막 기도였다. 언뜻 듣기로는 사정상 약식으로 치루는 것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세례식이 치러지지 않음을 한탄했다.

이윽고 그녀가 신부님의 도움을 받아 몸을 일으켰다. 튜닉은 이미 젖을 대로 젖어 입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차마 그 모습까지 훔쳐볼 수는 없었다. 지금은 번들거리는 튜닉을 입은 매혹적인 여성이지만, 내일이면 또 아무렇지도 않게 얼굴을 맞대야 하는 이웃이니까. 거의 알몸이 된 그녀의 몸을 보는 것에는 거부감이 있었다.

그 누구도 정적을 깨트릴만한 소리를 내지 않았다. 덕분에 그녀의 맨발이 흙바닥을 밟는 소리를 또렷이 들을 수 있었다. 그녀의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지자, 남자애들은 일제히 긴 한숨을 내쉬었다.

친구 놈이 옆구리를 툭 쳤다.

“야, 봤냐?”
“뭘?”
“뭐긴, 마지막에 일어섰을 때.”
“병신, 그러다 그거 병 된다. 관음증이라고 못 들어봤냐?”
“웃기고 있네, 쪼다 같은 게.”

녀석은 욕지거리를 하면서도 실실 웃었다. 갑자기 살짝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난 간다. 호색한 놈아.”
“잘 가라. 오늘 밤에는 잠 못 자겠네~”

녀석의 엉덩이를 한 방 걷어찼다. 그래도 녀석은 낄낄대고 있었다.
나는 무릎을 꿇은 채 일어나지 못하는 머저리들을 뒤로 하고 토굴을 빠져나왔다.







제가 제안드린 방식이 아주 사알~짝 잘못 설명된 것 같아서 부연 설명을 드리려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제안했던 것은, 주어진 세 개의 단어를 공통분모로 하여 여러 사람이 각기 다른 글을 써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세 가지 단어를 제시하면 댓글로 그 단어들을 사용해 글을 지으면 되는 거였죠.

제 설명이 조금 애매했던지라 혼선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방법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중요한 건 우리가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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