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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밤이 되어서야 -7-
게시물ID : readers_2756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먼지티끌
추천 : 1
조회수 : 28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1/30 18: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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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화 링크 -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readers&no=27550&s_no=27550&page=1

 

 사내는 한 마디 덧붙일까 하다가 결국 입을 닫았다.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평소 엄마는 마을 뒷산에 묻히고 싶다고 말하곤 했어요. 거기가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면서. 그 산이 어딘지 정확히 들은 적은 없지만 방벽 안에 엄마가 살던 집 뒤편에 산이 하나 있었다고 들었어요. 아마 거기겠죠. 
 
 그래서 엄마 마지막만큼은 꼭 원하는 대로 해드리고 싶어서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어요. 장례원에 잠시 머무는 동안 출입 관리국에 얘기는 해봤지만 당연히 거절당했죠. 몇 번 더 연락해 봐도 결과는 그대로였어요. 

 공공 기관이긴 했지만 장례원 직원들이 슬슬 눈치를 줘서 언제까지나 머무르고 있을 순 없었어요. 가능한 한 빨리 장례를 마치라고 해서 결국 화장하기로 했어요. 

 화장터에 들어가기 직전에 염습을 마치고 누워있는 엄마를 봤는데, 죽은 게 아니라 마치 발작 직후에 소강상태인 것만 같아서 금방이라도 다시 움직일 듯 보였어요. 무서웠어요. 

 찾아오는 사람도 없이 단둘이 덩그러니 있는데 엄마가 갑자기 눈을 번쩍 뜨더니 너 때문이야 네가 날 죽였어, 라면서 달려들었어요. 목을 조르더라고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다고 말하니까, 아냐, 넌 예전부터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 라고 말하더군요. 반박도 못 하고 그대로 기절했어요. 의식 저 너머로 도피한 셈이었죠. 
 
 나중에 받은 뼛가루는 근처 언덕에 몰래 묻고 왔어요. 거기 되게 예쁜 아름드리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기억나는 게 그 나무밖에 없네요. 언덕을 내려오면서 언젠간 그곳 흙을 담아 엄마가 눕고 싶었던 곳에 다시 뿌리겠다고 다짐했어요. 

 

 사내는 이제 몸을 완전히 소녀 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네? 뭐가요? 
 
 뼛가루 말입니다. 
 
 결국 벽 안으로 들어가서 등단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담아갔습니까? 
 
 아, 아뇨. 그땐 너무 경황이 없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요. 합법적인 경로로 들어간 건 아니었거든요. 만약 다시 한 번 기회가 온다면 이번엔 잊지 않고 담아갈 거예요. 근데 얼마 전 화장터가 없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기억나는 게 화장터 뒤편에 큰 나무뿐인데, 다시 찾아갈 수 있겠죠? 
 
 화장터는 철거됐지만 큰 나무는 그대로 있습니다. 지나가다 몇 번 본 적이 있습니다.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소녀도 눈물을 닦고 사내 쪽으로 돌아누웠다. 
 
 
 고마워요. 그렇게 말해줘서. 
 
 



 알람이 울렸다. 사내는 평소대로 눈을 떴지만 피로는 아직 몸 여기저기에 남아있었다. 사내는 항상 최적의 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엄격한 시간표를 고집했고, 취침시간과 기상시간 역시 그에 맞춰 정해져 있었으나, 이 중 전자를 사내가 어젯밤 어긴 탓이었다. 사내는 소녀를 깨우러 가는 대신 알람을 계속 켜두었다. 소녀는 베개를 끌어안고 이리저리 뒹굴더니 결국 눈도 제대로 못 뜬 채로 일어났다. 소녀는 눈보다 입을 먼저 열었다. 
 
 아저씨, 그러고 보니 어제 의뢰 얘기를 안 했네요. 
 
 받겠다고 말한 적 없습니다. 
 
 우선 첫 번째 조건은 추가 비용은 받지 않기, 두 번째는....... 
 
 의뢰는 안 받겠다고 말했잖습니까. 
 

 사내가 목소리를 약간 높이자 소녀는 놀랍도록 차가운 목소리로 아저씨, 하고 불렀다. 울기만 했던 어젯밤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분위기에 사내도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는요, 배고픈 사람이 아무 음식점에나 들리듯 이곳에 온 게 아니에요. 나름 철저히 준비했고, 아저씨는 제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을 거예요. 
 

 소녀는 전자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종이를 누른 사내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간신히 앗, 하는 탄식에서 멈추긴 했지만 소녀가 우위를 접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으로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소녀는 종이 두 장을 더 건넸다. 각 종이에는 열 살 남짓한 어린아이와 삼십 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의 모습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소녀와 판박이였다. 동생하고 어머닌가? 사내는 생각했다. 동생도 있었냐고 물으려다 그만두었다. 쓸데없는 참견이다. 소녀는 식용 알약 하나를 입에 넣었다. 
 
 우선 그 두 명부터 구현해주세요. 나머지 배경은 잠시만 생각하고 결정할게요. 
 
 



 다시 날이 밝았다. 사내는 어제 하루 동안 소녀가 건넸던 두 명을 완벽히 구현해놓았다. 
 
 이렇게 빨리 끝내는데 왜 소녀 구현 작업은 아직도 끝내지 못한 걸까. 
 
 사내가 혼자 밖을 나서려는데, 소녀가 이를 막았다. 
 
 아저씨. 지금 현장조사 하려고 나가는 거죠? 그렇습니다. 
 
 소녀는 외투를 주워들었다. 
 
 같이 나가요. 주변까지 같이 가드릴게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냥 위치만 말해주시면 제가 나중에....... 
 
 위험한 곳 아니에요. 요 앞에 마을이니까 여기서 그리 먼 곳도 아니고, 사람도 많으니까 별일 없을 거예요. 아저씨 바퀴의자도 제가 밀어드릴게요.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지 말란다고 안 올 소녀가 아니다. 괜히 힘 빼지 않는 편이 좋다.  가방에 각종 장비를 욱여넣고 알약까지 챙기고 나서야 방을 나섰다. 
 
 밥까지 챙기는 걸 보면 꽤 오래 걸리나 봐요? 
 
 길면 일주일까지 걸릴 때도 있습니다. 
 
 소녀가 바퀴의자 손잡이를 잡았다. 
  
 기계식도 아니어서 직접 밀어야 하네. 대체 언제 적 의자예요? 저 태어나기도 한참 전에 만들어진 거 같은데. 
 
 오래된 편은 아니지만 혼자 만들어서 그렇습니다. 손재주가 없어서 이게 최선이었습니다. 
 
 전자식이 비싼 편은 아닌데, 하나 사지 그러셨어요? 
 
 말했잖습니까. 돈 없다고. 웬만한 돈은 공무원들 주머니로 들어갑니다. 
 
 그 정도도 없어요? 
 
 네. 없습니다.
 
 

 어두운 복도를 지나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승강기에 타 한참을 올라가서야 비로소 별빛 가득한 밤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었다. 건물 밖에는 언제 내렸는지 소복이 쌓인 눈이 달빛에 눈 부셨다. 
 

 누구랑 같이 나온 건 오랜만이군. 사내가 중얼거렸다. 
 
 네? 못 들었어요. 다시 말씀해주세요.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소녀는 천천히 의자를 밀었다. 야광봉 하나만 켠 채로 어둠 속을 걸으니 멀리 있는 사람에겐 외로이 날아가는 반딧불이처럼 보일 것이다. 조금씩 내리는 눈이 자꾸만 불빛 안으로 들어오려 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누가 밀어줬어요? 
 
 혼자 밀었습니다. 
 
 정말요? 팔 안 아파요? 
 
 그래서 꾸준히 운동했습니다. 웬만한 곳은 혼자 갈 수 있긴 합니다. 
 
 에이, 뭐야. 그럼 굳이 제가 밀 필요 없네요? 
 
 
 소녀가 손잡이를 놓으려 하자 사내는 잠시 주춤하더니 소녀의 옷자락을 슬며시 잡았다. 
 
 
 주변 풍경 구경을 좀 하고 싶습니다. 팔이 아프면 아무래도 경치에 관심이 덜 가게 되거든요. 
 

 소녀는 너스레를 떨며 씩 웃어 보였다. 
 
 온통 어두운데 구경할 게 뭐가 있다고. 이것 보세요. 아저씨. 저도 다리 한 짝 없는 장애인이에요. 스스로 할 수 있으면 혼자 해야죠. 안 그래요? 
 
 
 소녀가 시선을 맞춰보려 했지만 사내는 뚱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눈길을 피했다. 
 
 네, 그렇군요. 좋은 조언 감사합니다. 
 
 사내는 홀로 휠체어를 밀었다. 어느새 저 앞에 가 있었다. 소녀는 절뚝거리며 뛰어와 손잡이를 잡았다. 
 
 하하, 농담이에요. 값도 깎아주고 순위도 우선으로 해주셨는데 이 정도는 해드려야죠. 
 
 


 한참을 걷다가 소녀가 문득 입을 열었다. 
 
 아저씬 언제부터 이 일을 했어요? 
 
 오래전부터 했습니다.  
 
 왜 이 하필 이 일인 거죠? 
 
 무슨 뜻입니까. 
 
 아니, 다른 일도 많잖아요. 아저씨 정도 능력이면 충분히 멀쩡한 직장 찾을 수 있을 텐데. 
 
 가상현실이 꼭 나쁜 일에만 쓰이는 것 아니지 않습니까? 
 
 모든 기술이 그렇죠. 근데 일단 벽 밖에서는 무조건 불법이라고요. 악용되는 경우도 많고. 그리고, 아저씨가 그런 말 할 처지는 못 될 텐데? 
 

 사내는 노인의 의뢰를 떠올리곤 말을 삼켰다.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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