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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ARMA [2부-끝의 시작] 1. 실험
게시물ID : readers_2759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카스_네팔
추천 : 1
조회수 : 26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2/02 12:47:14

The KARMA

      [2부-끝의 시작]         

                                               

       아카스_네팔


1. 실험



우리는 작년 음력 9월 11일에 만났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전쟁이 끝난 뒤, 먼지처럼 부서진 몸과 마음을 부여잡고 어떡하든 일어서 보려 했지만 매번 실패하고 죽음이란 주사위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내가 배설처럼 글을 싸지르던 인터넷 문학카페의 회원이었고 어쩌다보니 죽이 맞아 만나기로 했는데 그날이 바로 그날이었다. 굳이 꿰맞추려면 그것도 운명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왜냐하면 그날이 하필이면 나의 생일이었고, 그날 밤 우린 내 자취방에서 함께 보냈으며, 심지어 다음날 결혼을 약속했기에. 그리고 며칠 후 생뚱맞게도 길고양이 한 마리가 찾아와 껌딱지처럼 붙어버리는 바람에 그 ‘우리’는 셋이 되었고.
그녀로 말하자면 용기가 부족한 실천가였다. 나는 몽상가였고.
내가 ‘아프지 않게 죽는 방법이 없나?’같은 병신 같은 생각에 빠져 있을 때, 그녀는 당당하게 자살을 실행에 옮기고자 무슨 섬엔 가를 찾아 갔었다고 한다.

“굳이 섬까지 갈 필요 있었냐?”
“폼 나게 죽고 싶어서.”

그래서 섬까지 가긴 갔는데 용기가 밥그릇 반 공기만큼 부족해서 죽지 못했다 한다. 그녀가 나를 만난 날은 섬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고 한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무릎을 탁 쳤다.

‘이 정도 똘아이라면 뭔가 통할지 모른다!’

아니나 다를까, 우린 ‘통’했다.
우린 한 이틀을 붙어 다니며 술을 퍼마셨으며, 어마어마하게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니 어마어마하게 긴 이야기를 그녀에게 했다. 
내가 먼저,

“내 이야기 좀 들어줄래?”

라고 말했던 것이다.
당시 나는 최근 일 년 동안 겪은 일들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채 벌레처럼 살고 있었으므로 살기 위해선 수다를 떨어야만 했다.
방언 터지듯 쏟아지는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난 그녀가 나에게 한마디 했다.

“그걸 글로 써봐.”

그리고 또 한마디,

“돈도 벌어야 되니까 학원에서 애들 가르쳐봐. 당신한테 맞을 것 같아.”

그리하여 직업과 삶의 의욕과 여자와 고양이가 동시에 생겼다.
만남이 운명적이었기에 오히려 뭔가 불안한 동거가 어느덧 해를 넘겼다.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과분한 행복이 자꾸만 쌓여가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고양이, 그녀는 고양이를 탐탁지 않아 했다.

“고양이 누구 주면 안 될까?”
“왜?”
“당신도 알잖아? 하루 종일 나만 따라 다니는거? 감시당하는 느낌이라구.”
“왜 그래? 고양이 이름도 본인이 지어놓고선.”

고양이 이름은 ‘나루’였다.

“근데...너 최면 한 번 걸려 볼래?”
“무슨 소리야? 뚱딴지같이.”
“그 왜 있잖아? 내가 전에 말했던 연쇄살인사건....지금 그 부분 쓰고 있는데 좀 필요해서. 중요한 부분이거든.”
“요즘 안 쓰는 것 같더니 다시 시작했나봐? 그러지 뭐. 재밌겠는 걸?”
“오케이!”

그리고 D-day.
돌아온 쉬는 날, 그녀가 침대에 누웠고 인터넷을 뒤지고 뒤져 찾아 낸 최면유도파일을 틀어주기 전까지 우린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즐거움에 들떠 있었다. 심지어 침대 옆 바닥에서 배를 깔고 누워있는 나루보고 너도 최면 걸려 보려고 그러냐며 웃기도 했다. 그때까지는 그랬다.

“자, 튼다?”
“에구구...그려.”

침대에서 자리를 잡으며 그녀가 말했다. 동시에 스피커에서 청아한 시냇물 소리가 흘러 나왔다.
시냇물 소리, 시냇물 소리, 그리고 계속 시냇물 소리.

“야, 잠 온다. 이거 최면 유도 파일 맞냐?”
“기다려봐. 말하지 말고.”

한참이 지나서야 시냇물 소리 사이로 중년의 남자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자...편안하게 심호흡을 합니다.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고. 다시 들이마시고 내쉬고.
마음이 편안해 지고 온 몸이 나른해집니다.
발끝에서부터 나른한 느낌이 조금씩 올라옵니다.
발끝에서부터 올라오는 나른한 느낌은 종아리를 거쳐 조금씩 올라옵니다....]

편안하게 들리는 소리에 그녀는 몸을 맡기고 있었다. 약간은 무료할 만치 느린 시간을 보내고 있을 찰라 그 목소리는 어디론가 그녀를 데리고 가고 있었다.

[자, 이제 머리위에 한 점을 떠올려 보세요. 거기엔 당신을 지켜주는 빛이 있습니다. 그 빛은 당신을 항상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위험하다고 생각할 때 언제든지 본인의 의지로 눈을 뜰 수 있습니다.
자 이제 당신은 당신의 과거로 가게 됩니다.
당신의 앞에는 과거로 가는 계단이 펼쳐져 있습니다.
한 발 한 발 내려갈 때마다 당신은 당신의 과거와 가까워집니다.
한 발 한 발 계단을 내딛습니다. 조금씩 당신의 과거와 가까워집니다.
한 발 한 발 마음이 더욱 편안해지고 조금씩 당신의 과거와 가까워집니다.
자..이제 마지막 계단을 내딛습니다.
이제 당신 앞에는 활짝 열린 문이 보입니다. 열린 문사이로 빛이 새어 나옵니다.
그 빛은 당신을 과거로 인도합니다. 자 앞으로 걸어갑니다.
자 이제 당신 앞에 문이 있습니다. 당신이 발을 내딛는 그곳이 바로 당신의 과거입니다.
천천히 발을 들어 내딛습니다.
자!
자!
이곳이 바로 당신의 과거입니다. 발의 감촉을 느껴보세요. 발의 감촉이 어떻습니까?...]

그런데 그 순간, 그녀의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아악!”

예상치 못한 격렬한 그녀의 반응에 놀라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목소리는 무심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최면 상태를 강제로 멈추려 할 때 사고가 났었다는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주위를 둘러보세요. 무엇이 보입니까?...]

“안 돼...! 아...안 돼!!”
“괜찮아 괜찮아!”

안되겠다 싶어 스피커 버튼을 누른 채 그녀의 손을 나도 모르게 움켜잡았을 때 그녀는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었다. 그리고는 어처구니없게도 의식을 잃어 버렸다.
                                              
“이제 괜찮아?”

그녀가 의식을 되찾은 곳은 근처 병원 응급실이었다.

“응 괜찮아. 집으로 돌아가자.”

그날 이후 그녀는 완전히 변했다.
그녀가 시든 화초처럼 변했으므로 모든 일상조차 잿빛으로 변해 버렸다. 일단 둘 중 한 사람이 웃음을 잃어버렸으니 생활의 활력이 사라져 버렸고 동시에 대화가 사라졌다. 잡지사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하던 그녀는 출퇴근이 불규칙했지만 퇴근하고 집에 오면 항상 현관에서 날 반겨주었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현관문을 열면 잠긴 방문 안에서 새어나오는 울음소리를 듣기 일쑤였으며, 나루는 밖에서 방문을 빠각빠각 긁어대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난 빨래처럼 축 늘어진 채 거실에서 소주를 마셨고 자꾸 떠오르는 과거의 상념에 괴로워하며 밤을 지새우곤 했다. 기억을 글로 남겨 털어내려는 작업은 없던 일이 되 버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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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역사 판타지 [카르마 ( The KARMA )] 는 
문피아 일반연재 ( https://blog.munpia.com/akash_nepal )에도 올리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오늘의 유머 '책게시판'에도 올려보려 합니다. 관심가져 주시면 열심히 올려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피드백이 너무나 목말라서라는 건 비밀
문피아 (검색 : 아카스네팔 또는 카르마)에서는 카르마의 '1부 외전'과 기타 허접한 단편들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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