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의 반응은 보다 소란스러웠다. 부엉이와 추락사. 쉽사리 엮이지 않을 두 가지 키워드가 묶이니 부정할 수 없는 설득력을 갖게 된 것이다. 11일 방영된 개그콘서트의 부엉이는 결코 무관하지 않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짐작할 수 있게끔 만들어 놓았다. 오얏나무 아래선 갓끈도 고쳐 매지 말라고 했다. 이 정도는 과실을 손에 쥐고 비틀어댄 수위다. 당연히 논란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곧 한 커뮤니티 사이트의 상징성이 아닌가라는 의심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부엉이와 추락사는 ‘일간베스트’ 즉 일베의 주요 유희거리다. 일베에 발걸음조차 들이지 않은 사람이라 해도 이 사이트의 사건, 사고가 워낙 자주 회자되었고 각 커뮤니티에서 주의 요망을 부탁하여 올라온 게시물 또한 많았기 때문에 두 가지를 연결 시켜놓고 몰랐다는 주장은 궁색해 보인다.
더군다나 네티즌의 트렌드에 참 민감한 개그맨들이다. 그들이 설마 이것의 연결고리를 몰랐을까. 아니 모르고 만들었다 해도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리라는 가설을 전혀 세워보지 않았다는 것인가. 그 미련한 순진무구가 더 터무니없다.
개그콘서트는 이미 작년 11월, 코너 ‘렛잇비’에서 합성한 겨울왕국 엘사의 포스터에 일간 베스트 사이트의 상징을 그대로 붙여 보낸 일로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당시 개그콘서트 제작진은 고의가 아니었다고 말하며 추후 같은 실수가 재발하지 않도록 제작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개그콘서트의 시청자 참여 게시판은 제작진이 남긴 '렛잇비 합성사진 논란과 관련하여 제작진의 입장을 전달합니다.'라는 해명문이 지워지지도 않은 상태다. 전적이 있는 그들이기에 웬만하면 예상 가능할 법한 이 부엉이 사건은 개그콘서트의 고의성을 의심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100% 그럴 리가 없다’는 위험한 주장을 하려하는 것이 아니다. 때에 따라선 그럴 수도 있다. 우연이 여럿 모여 필연을 만들어내는 결과물이 전혀 존재하지 않으리라고 단언하는 것은 억지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불편함을 느끼는 건 그들이 소위 일베 언어를 썼기 때문이 아니다. 일베 언어를 쓰거나 쓰지 않거나 개그콘서트의 트렌드 자체가 이미 일간베스트의 그것을 지지하고 있으니까다.
이날 개그콘서트의 일베 논란은 해당 사건 하나만이 아니었다. 개그콘서트는 또 다른 코너 ‘사둥이’에서 ‘김치녀’라는 단어를 쓰며 논란이 됐다. 2015년 새해 목표를 묻는 아빠에게 둘째 여름 역인 김승혜가 “난 김치 먹는데 성공해서~ 김치녀가 될 거야!”라고 다짐하는 장면이다. 그저 언어유희가 빚어낸 오해라고 말하기엔 이미 김승혜가 해당 대사 이후 덧붙인 “오빠, 나 명품백 사줘. 신상으로! 아님 신상구두?”라는 말에 이미 해당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썼음을 증명하고 있다.
김치녀는 일간 베스트 사이트에서 한국 여성을 비하하는 의도로 만들어낸 용어다. 분수에 맞지 않게 명품을 탐하고 한국 남자의 등골을 휘게 하는 몰염치에 파렴치, 곧 인간쓰레기에 가까운 인간형이 바로 대한민국 여자들이라는 폭력적인 사상을 담은 단어다. 한때 유행했던 된장녀와 같은 노선을 달리지만 이는 전체 대한민국 여성을 비하하는 단어인 데다 여성 혐오, 증오 사상을 담고 있어 보다 위험성이 더하다.
개그콘서트 제작진이 해당 위기를 넘어가기 위해 쓸 만한 변명은 이는 풍자였다거나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몰랐다는 이야기 정도가 될 것이다. 단언하고 싶은 것은 진정 고의가 아니라 실수였다고 해도 현재의 개그콘서트는 일베스럽다는 것이다. 김치녀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쓰지 않았을 뿐. 이미 개그콘서트가 상징하는 여성의 이미지가 그 단어의 뜻과 다를 것이 없잖은가.
개그콘서트의 여자는 단 두 가지 부류뿐이다. 예쁜 여자는 명품에 미친 남자 등골 브레이커요, 못생긴 여자는 스스로를 자학하며 아무런 서사 없는 외모 비하 개그에 인생의 팔 할을 담는다. 당사자인 여자 개그맨 또한 아무렇지 않게 적극적으로 이를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문제다. 좀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개그콘서트의 코너 90퍼센트 이상이 여성 혐오, 증오로 이루어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프로그램 자체가 전반부에 걸쳐 충분히 일베스러운데 고의가 아니었다, 실수였다는 변명은 궁색할 뿐이다. 부엉이, 김치녀, 일베 캐릭터쯤이야 충분히 실수일 수도 있다. 문제는 오히려 실수하지 않는 일상에서 드러난 개그콘서트의 불편한 사상에서 비롯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