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한인섭 교수의 포스트처럼 지금의 강동원 외증조부 '이종만'의 친일행적에 대한 논란은 연좌제적 성격을 띄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바탕에는 아직 청산되지 않은 친일파 문제와 누구를 친일파로 볼 것인가라는 문제가 깔려있습니다.
친일파 청산은 해당 시대를 살아왔던 사람들이 많아, 그 죄의 명암과 시대상황을 잘 밝힐 수 있는 시기에 이루어져야 됐기에..
제 사견으로는 1970년 즈음이 마지막 기회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어쨌든 한 세기가 지난 지금에 와서는 늦은 감이 없잖아 있고...
민족문제연구소나 임헌영 소장이 규정하는대로 이 사람은 친일파인지 아닌지가 명확히 갈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더군다나 강동원의 외증조부인 이종만이 일제에 헌납한 돈은 2000원(현재가치 2억)이지만...
이에 비해 민족운동에 헌납한 돈은 100만원(현재 가치 1000억 가량)이 넘습니다.
당시 상황에서는 사업하는 사람의 일종의 보험금적 성격을 띄고 있다고도 할 수 있고...
그 시기에 2000원만 내고도 사업을 했다는 사실은 오히려 대단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한 일제시대 독립운동가이자 김병로, 이인과 더불어 민족변호사인 허헌 선생이 1930년대초 변호사자격을 박탈당한 뒤
이종만의 광산사업체에서 중역으로 일했고...
이종만이 광복 이후 넘어간 북한에서는 일제시대 자본가 및 지주들이 씨를 말릴 정도로 숙청되는 가운데서도...
김일성에게 인정을 받고 애국열사릉에 묻혔다는 사실을 볼 때...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시한 바와 같이 친일단체에 가입하고, 2000원을 헌납했다는 사실만으로
그 시대를 살아보지도 않고, 광복 70년이 지난 이 시점에 와서 전문단체 혹은 전문가가 그를 친일파로 규정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절대적으로 타당하고 권위를 가질 수 있는지에는 의문이 남습니다.
p.s. 세간에 알려진 바와는 달리 백범 김구 선생이 작성한 친일파 살생부 명부에는 이종만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