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던 하늘이 맑아, 수고스러움 없이 수월하게 투표를 했습니다. 늦잠 자다가 점심을 먹고 나서도 한참을 TV 앞에서 움직이지 않았는데, 선거방송에서 20대의 투표율이 20% 언저리라는 그래프를 보고서는 마음이 급해지더군요. 곧바로 투표하러 집을 나섰습니다.
비밀선거가 원칙이라 밝히지는 않겠지만, 제 소신껏 한표를 썼습니다. 사실 제가 바라는 결과는 여당과 제 1야당이 1:1의 비율로 의석을 나눠 갖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세운 잣대로 봤을때, 저 또한 이번 선거의 결과가 아쉽습니다. 여당이나 제 1야당, 어느쪽에도 무게가 더 실리지 않은 상태에서 서로를 견제할수 있다면. 더하여 소수파 의원들의 다양한 시각이 팽팽한 균형에서 좀더 옳은 방향에 힘을 실어주지 않을까 기대했다면, 저는 정치에 소질없는 이상주의자인가요. 헤헤.
접전 끝에 거의 같은 의석을 가지리라 예상되던 개표진행이 서서히 새누리당쪽으로 기울자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어느 기사에서 '민주통합당은 넷심을 잡는데 주력했지만, 민심을 얻는데 실패했다'라는 문장을 봤는데, 그 문장이 완전히 옳지는 않아도 어느정도 제가 느낀 당혹감을 설명할수는 있었습니다. 저 또한 PC와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이용하는 20대였고, 제가 보는 인터넷 화면안의 세상은 이번 선거를 '심판의 도구'로 설명하고, 당장 4월 11일이면 2, 30대가 투표를 통해 세상을 바꿀것이라 예언했습니다. 모든 여론은 여당의 졸렬함을 비난하고, '거짓보수의 몰락'을 기대하는듯 했습니다. 제 생각과 인터넷에 몰아치는 파도는 조금 달랐어도, 저 또한 그 파도가 대한민국의 정국을 삼킬듯 덤벼들리라 믿고 있었나봅니다. 그리고 결과는 우리가 기대하고, 우리가 예상한 바와 조금 다릅니다.
자, 당신은 무엇이 분합니까?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손에 더러운 것을 잔뜩 묻히고도 국회로 들어서는 것입니까? 아니면, 같지도 않은 보수세력에서 끝없이 배신을 반복하는데도 묵인하며, 다시 여당의 편을 드는 무지한 우리의 아버지, 할아버지가 화나나요? 그것도 아니라면 징그럽게 질긴 지역주의가 분합니까? 아, 이 모든것에 관심도 없으면서 살기 힘들다고 투덜대는 우리 세대가 한심하고 분할수도 있겠습니다.
글쎄요. 이 모든 이유가 당신을 화나게 할수 있지만, 지금은 인정할 부분을 인정해야할 때입니다. 당신과 나는 이 네모난 화면을 통해 세상을 보지만, 네모난 화면의 밖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사상과 이념을 갖고 삽니다. 당신과 다른 것을 원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을 뿐이지, 당신의 사상이나 이념이 틀리거나 패배한 것은 아닙니다. 당신이나 내가 원하던 사람이 아니어도, 그들은 우리의 대표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우리, 국민의 뜻으로 이 나라를 움직일수 있도록 지켜보고 다그칠 의무와 권리를 가졌습니다.
그들을 인정할수 없고, 모두가 잘못된 과정이라고 치부한다면 우리는 또 한세대의 국회를 방치하게 됩니다. 우리는 지난 국회를 방치했고, 그들의 파행이 마치 버라이어티라도 되는 것처럼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결과는 우리가 오늘날 피부로 느끼잖아요.
이번 4.11 총선을 통해서 우리는 열매를 얻으리라 기대했습니다. 아쉽게도 땅이 고르지 않았고, 비가 달게 내리지 않아서 싹을 틔우는 것으로 그쳤지만, 우리는 저마다의 이념을 떠나서 하나의 문화를 시작했다고 자축합시다. 열매를 쉽게 얻길 바란 스스로를 반성도 합시다. 어제까지 고개를 조아리고, 허리 굽혀 우릴 받들던 그들이 어떤 자세로, 어떤 세상을 만들려 하는지 놓치지 않고 봐두었다가, 4년후, 더 좋은 세상을 위한 거름으로 쓰면 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