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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년생 어느 아줌마가 승부조작에 관한 심정 (펌)
게시물ID : humorbest_27659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시바취업
추천 : 84
조회수 : 6008회
댓글수 : 2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0/05/19 13:51:57
원본글 작성시간 : 2010/05/19 12:21:19
10 여년 전에 아주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제1회 투니버스 스타리그의 첫 방송을 보게되었고 그게 인연이 되어서 지금까지도 스타의 열혈 팬이며 시청자가 되었어요. 

처음엔 재미도 없었고 애들 장난 같은 게임을 방송으로 중계한다는 게 신기하긴 했지만 그게 다였죠. 특히 게이머들 사이에선 유명하다는 선수들이 나와서 게임을 하는데 해설자들 말로는 대단한 선수라지만 제 눈엔 그저 공부하기 싫어서 게임에 빠져 사는 철부지들 같았죠. 

하지만 회가 거듭될수록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그들은 어딘가 모자라서 게임에 빠져 사는 게 아니라 그 방면에 특출난 재능을 지닌 사람들이었고, 또한 비슷한 또래의 학생들보다 더 많이 노력하고 더 많은 열정을 지녔다는 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일주일 내내 게임중계를 하지만 예전에는 매주 금요일만 되면 아무데도 안가고 TV 앞에 앉아서 흡사 월드컵 응원을 하듯이 소리를 지르고 감탄사를 연발하며 시청하곤 했지요. 

그들은 참 대단했어요. 전 김동수와 박정석으로 이어지는 프로토스 라인의 팬이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모든 선수들의 경기를 즐깁니다. 요즘은 이영호 선수를 보는 재미가 더없이 좋아요. 정말이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경이로운 경기를 보여줍니다. 지금의 이영호선수가 있기까지 모든 과정을 만들어 낸 숱한 선수들, 특히 올드라 불리우는 역사를 만들어 낸 선수들을 칭송하지 않을 수 없겠죠. 

그런데 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선수가 자신의 페이지에 오물을 뿌렸네요.

너무 큰 충격을 받았고 멍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했을까?' 

돈이 이유의 전부였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물론 몇몇 선수들은 정말 단순히 그게 이유의 전부였을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마선수만큼은 그게 다는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때 너무도 잘나갔고 모두의 우상이었던 선수가 자신이 잘할때는 그토록 열광하던 사람들이 성적이 부진하자 점차 등을 돌리고 심지어는 조소와 비아냥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에 대해 분노를 느끼고 일종의 복수를 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벌을 주기 이전에 치료부터 해줘야겠지요. 그가 가졌을 지도 모르는 피해의식이 결국은 우리 모두를 아프게 만들었으니까요. 

미처 인성이 형성되기도 전에 승리에만 집착하는 삶을 살아온 것에 대한 부작용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너무 큰 충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루된 모든 선수들을 생각하면 정말 안타까워요. 그들은 아직도 어리기때문이지요. 살아갈 날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지요. 아~ 가슴이 아프네요.

 

하지만 이유를 불문하고 그들이 한 짓은 우리 모두를 향한 테러입니다.

그것은 마치 10만 관중이 모였던 광안리 결승전에서 폭탄을 터트린 꼴입니다. 

더군다나 자신들의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 분명한, 어쩌면 가족보다 더 친밀할지도 모르는, 가족과도 다름없는 동료들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패륜입니다. 

그 때문에 더 큰 상처가 됩니다. 

제가 오랜 시간동안 어린 친구들에게 받았던 감동이 한순간에 갈갈이 찢겨져 나가는 아픔을 느낍니다.

이 허탈함을 어떻게 치유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허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부정할 순 없습니다. 지금껏 열정과 신념으로 만들어 온 모든 것을 거짓이라고 해선 안됩니다. 서로를 비난하는 짓을 반복하며 더 아픈 상처를 만들진 말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파편에 맞았습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지금 당장은 너무 아프지만 서로를 보듬어가며 파편조각을 빼주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쩌면 조작에 연루된 선수들은 자신들이 폭탄을 던졌는지도 모르고 있을지 모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할지 상상도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는 알았을 겁니다. 그들 외의 모든 선수들도 알았을 겁니다. 감독이나 코치들도 그 밖의 모든 관계자들도 다 알았을 겁니다. 

그러니까 희망이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더 큰 감흥이 있을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매년  WCG 시즌이 되면 나라의 명예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금메달을 목에 걸고 태극기를 펄럭였던 그 선수들이 올해도 내년에도 변함없이 또 그렇게 해주리라 믿습니다.

 

저를 비롯한 상처받은 모든 사람들의 아픔이 하루빨리 치유되기를 희망합니다.

또한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죄의식을 가졌을지도 모르는 동료 선수들도 힘을 내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지금의 E스포츠가 되기까지 가장 많은 공헌을 한 온게임 넷이 여러가지로 난감하리라 생각됩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이렇게까지 큰 성장을 일궈냈으니 이보다 더한 일도 슬기롭게 헤쳐나가리라 믿습니다.

 

끝으로 올드들의 화려한 부활을 끝까지 기다리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박정석 선수가 다시 우승하는 날이 온다면 아마도 제 인생에서 가장 큰 감동을 받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참, 강민 선수 꼭 예선 통과 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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