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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억 년간 이기적 유전자가 관제한 생명체의 성 역할을 관찰할 때
생체시계와 호르몬 탓에 불가항력인 교미기는
몸이 번식할 수 있게 설계되었단 주기적인 신호며
인지력 있는 다세포군 중 특히
동물은 그 신호에 맞춰 주로 신경 말단이 더 강도 높은 쾌락, 운동을 느끼도록 예민해진다.
이처럼 번식은 멸종 회피 본능에 기인한 종의 이념 같은 행위가 아닌
자극받은 욕구에 따라 신체적 한 기능을 실험한 생식세포 생성의 결과일 뿐
나는 번식의 의무란 말이 납득 안 간다.
의무란
규칙적으로 관찰되는 질서를 이룬 군집이 그 체제를 결속하기 위해
본능이 이끄는 것과 별개로 지키고자 둔 약속 아닌가
지극히 사회적이고 철학적인 뜻의 단어.
번식의 의무 그 말엔 장구한 자연의 섭리가 와 닿았기보다
일꾼, 고기, 유흥이 필요해 짝짓기를 종용하는
고작 몇십만 년 역사의 자칭 현명한, 사피엔스주의적 이면을 느꼈기에
딱 잘라 질색이다.
자웅 중 누가 더 짙게 유전되는지 이웃과 원시적인 경쟁처럼 된 섹스를 보라
꽃가루가 바람에 실려 먼 곳에서 수정되는 게 과연 꽃의 의무란 말인가
나는
석불을 선망하여 등 떠미는 풍파에 흔들림 없이 척추가 장작인 내 안의 욕정, 불꽃을 차갑게 다스린다.
거듭 되뇐다, 불꽃을 다스려야 한다고
극저온에 이르러서야 조급한 기운은 소진되어
꺼질 듯 영겁인 불티의 이름이 남으리, 그것은 순수한 사랑.
오직 그 잔재로 박동하는 발화석 빚어
가까이 안아도 태우지 않는 등불이 되리
고행나기 앓은 관절의 서리 모두 녹이고 좌선坐禪을 풀면
이 몸 머리카락 한 올까지 내 쓰임은 빅브라더가 정한 의무 아닌
마지막 꺼지지 않는 불티의 이름으로 맹세할 터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