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ARMA
[3부-현계(顯界)]
아카스_네팔
3. 「수배」
# episode1. 신명철(24), 서울 거주.
용산역,
한 청년이 주위를 살피며 물품 보관함 쪽으로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롯데리아 앞의 한 명과 보관함 앞에 미리 가 있던 한 명이 주목하고 있었다.
청년은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투입구에 넣었고 키패드의 번호를 눌렀지만 그의 눈은 연신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는 매고 있던 백팩을 내려 지퍼를 열고 보관함 안의 물건을 담았다.
“물건 좋냐?”
“예에?”
“저번거 보다 좋냐고? 양도 꽤 되는 것 같던데?”
“아이 시발!”
청년은 홀을 가로질러 달릴 계획이었던 것 같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롯데리아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형사가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었다.
“명철아 밥 먹으러 가자. 콩밥.”
# episode2. 김영남(44), 서울 거주.
휴대폰이 울렸다.
“네 김영남 역학연구소입니다.”
“안녕하세요? 여기 지하주차장인데요. 제가 차를 빼다가 그쪽 차를 좀 긁었어요. 죄송합니다...만 잠시 내려와 주실 수 있으세요?”
# episode3. 이형만(25), 대구 거주.
담뱃불을 붙이기 위해 잠시 멈춰 설 때였다.
“이형만씨죠?”
어느새 양복 두 명이 양옆에 붙어 있다.
“왜..왜요?”
조금의 빈틈도 없었다. 그들은 아주 능숙한 솜씨로 형만을 길가에 대기하고 있던 자가용 뒷자리에 태웠고 차는 즉시 출발했다.
“뭐하는 짓입니까!”
형만은 몸을 뒤틀었지만 양옆의 양복들은 형만의 팔을 제압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수석에 앉은 제 3의 인물이 대답을 대신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안전하게 다시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그리고 당신들 누구야?”
주변 지리라도 기억해두려고 창밖을 보았지만 형만은 다시 한 번 놀라고 말았다. 창에 비친 것은 그의 얼굴이었다. 밖은 전혀 보이지 않고 마치 거울처럼 아니 모든 창문이 거울이었다.
선글라스를 낀 운전사가 능숙하게 운전을 하는 것으로 봐서는 무슨 특수 유리 같았다. 차는 한참을 어디론가로 달렸고 같은 장소를 몇 바퀴 도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어딘지도 모를 건물앞이었다.
계단을 타고 한참 내려간 어느 사무실로 들어가, 소파에 자리를 잡고 나서야 두건이 벗겨졌다.
“죄송합니다.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요즘 경찰들 아무리 막가는 정부라 해도 이따위로 학원사찰합니까?"
“경찰과는 관련 없는 일입니다.”
.
.
.
탁자 위에는 CD 2장이 놓여 있었다.
“내 다 봤는데...그래서 이걸 나보고 믿으라는 거야? 횡설수설하는 여자한테 최면 걸어서 얻은 정보를 가지고 사건을 해결하겠다? 이거 신문에 나면 세상 웃음거리야 알아?”
대통령은 심기가 불편했다.
“각하, 이번 사건 뿐만 아니라 살인 사건 전반을 검토한 결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국정원장은 대통령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자 작정한 듯 말을 계속 이어갔다.
“몇 가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각하 이 사진을 봐 주십시오. 작년 12월 18일 중앙고속도로 원주 휴게소 근처에서 일어났던 35중 추돌사고 당시 맨 앞 차량 사고 후 사진입니다.”
원장은 준비해 온 사진 중 한 장을 테이블에 올려 대통령 쪽으로 밀었다.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일 때부터 그의 총애를 받아 부시장으로 함께 해온 그는 주군을 설득하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되도록 스스로 고민하게 하지 말 것, 최대한 쉬운 시청각자료를 가지고 브리핑할 것, 보고서 두껍게 쓰지 말 것.
그가 내민 사진은 사고 차량을 정면 앞에서 찍은 것이었다.
“눈길에 미끄러져서 중앙분리대를 들이박은 것 아닌가? 이게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각하 차량 본네트를 자세히 봐 주십시오. 무언가 찍어 누른 듯이 찌그러져 있지 않습니까? 분명 차량은 하행선으로 운행 중이었고 중앙분리대에 긁힌 부분은 운전석 쪽이었습니다. 그런데 보시다시피 본네트가 찌그러져 있습니다.”
“뭐.. 좀 세게 부딪히면 그럴 수도 있지 않나?”
“그런데 그 찌그러진 모양이 정면에서 누가 찍어 누른 모양입니다.”
과연 그랬다. 본네트는 두군데가 움푹 꺼져 있었는데 그 가운데 모양은 손바닥 자국이 분명했다.
“아무도 이 상황에서 통제 불능의 차량을 정면에서 손바닥으로 찍어서 이렇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CCTV 확인 해봤어?”
“네, 사고 당시 도로위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대통령은 자리에서 일어나 담배를 찾았다. 원장은 재빨리 라이터를 꺼내서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파일에서 사진 한 장을 더 꺼냈다.
“정확히 일주일 뒤 12월 25일 새벽 중앙고속도로 하행선 제천 터널입니다. 보도로는 졸음운전으로 인한 사망사고로 나갔지만 사실 이 사건도 수수께끼입니다. 하행선 터널 입구 길옆에서 사체가 발견된 사건입니다. 이건 당시 사망자 사진입니다.”
대통령 쪽으로 사진을 내미는 원장의 손이 느리게 움직였다.
“제가 이 사건에 대해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결심하게 된 사진입니다.”
“아..아니! 뭐야 이거?”
사진을 보던 대통령의 표정이 굳어졌다.
사진 속 인물은 나이도 성별도 확인하기 힘든 앙상한 몰골이었다. 전혀 부패하지 않았으나 신체의 모든 수분이 다 빠져나간 듯 유골의 형상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가죽이 말라붙어 있었다. 한 손으로 들어도 가볍게 들 수 있을 정도의 종잇장 같은 몸이었다.
“이거 미라 아니야? 신원 확인 해봤어?”
“인근 마을에 살고 있던 47세 남성입니다. 사체 발견 전날 집에서 나가 돌아오지 않았답니다.”
집무실 안에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또 정확히 일주일후 이번 중앙고속도로 칠곡IC 사건이 터진 겁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생존자가 발견되었고 그 여자를 통해 단서를 얻은 겁니다. 각하.”
원장은 열심히 대통령을 설득하고 있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그를 설득하기 위해서 그는 먼저 스스로를 설득해야 했으나 2차장이 들고 온 사건 자료와 보고서를 보고 그는 말도 안 되는 이 상황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각하. 하지만 다행인 것은 이번 사건의 생존자를 통해 사건 해결의 단초를 마련했다는 겁니다. 이틀에 걸친 조사과정을 영상으로 담아 왔습니다. 1차 조사는 국과수에서 설문기박사가 최면 시술을 통해 공개 진행했고, 2차 조사는 저희 직원이 동석하여 비밀리에 진행했습니다. 각하께서 보신 두 개의 영상이 바로 그것입니다.”
대통령은 피우던 담배를 비벼 끈 뒤 원장을 쳐다보았다.
“하...이것참. 만약 이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국민들에게 알려진다면 어느 정신 나간 사람이 믿겠는가 말이야.”
“이부분은 은밀하게 진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각하. 사건이 커지기 전에 해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 말 뿐인 소리...”“제가 직접 챙기고 있습니다. 이미 요원들이 각 분소에서 설득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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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모처.
“준비 다 됐으면 틀어봐!”
스크린이 천정에서 내려왔다.
“보십시오. 며칠 전 칠곡IC에서 터진 살인사건 생존자의 진술 영상입니다.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실 겁니다. 유심히 보셔야 합니다.”
영상이 돌아가자 사무실의 불이 꺼졌다. 화면에는 사건 피해자로 보이는 이십대 후반의 여자와, 가운을 입은 중년의 남자가 있었다. 여자는 무척 긴장한 상태로 연신 두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박사는 그런 그녀에게 웃음을 띤 채 말을 건네고 있었다.
"안심하세요. 이곳은 안전한 곳입니다. 아무도 당신을 해칠 수 없는 곳입니다."
박사의 첫마디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