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blog.ohmynews.com/litmus/176767 4.11 총선 단상
-위기를 기회로-
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을 합쳐 과반은 넘을 거라 예상했는데, 막판의 김용민 막말 변수가 생각보다 크게 작용했나 보다. “10석이 날아갈 것 같다.”는 민주당 후보들의 푸념이 그저 엄살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긴, 가장 중요한 선거전 피날레를 막말 파문으로 장식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전국에서 1,000표 안쪽으로 승부가 갈라진 곳이 무려 11곳. 다른 곳도 그렇지만, 1400여표 차이로 MB 정권의 화신인 이재오에게 은평을을 내준 것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문제들을 점검해 보기로 하자.
드러난 문제점들
첫째, 리더십의 문제다. 새누리당은 차기 대권주자로 사실상 확정된 박근혜 비대위장의 책임 아래 선거를 치렀다. 그녀는 친이-친박의 당내갈등을 수습하고 당의 미래를 대표하는 존재로 확고히 자리매김 했다. 반면, 민주당의 리더십은 문재인과 한명숙으로 갈라져 있었다. 한명숙 대표는 처음부터 지도력을 상실한 상태였고, 문재인은 이제 막 대권주자로서 시험을 치는 중이었다. 한 마디로 당의 현재와 미래를 책임질 만한 주체가 없었던 셈. 그러니 두 사람이 아무리 용을 써도 선거전에서 박근혜의 위력을 따라잡는 것은 무리였다.
둘째, 일찌감치 차기 대선주자로 자리매김한 박 위원장은 대선을 위해 마련한 메시지(가령 “복지 강화”)를 미리 총선용으로 (“이념에서 민생으로”) 적절히 활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와 미래의 주인이 없는 민주당은 ‘정권심판’외에는 유권자에게 던질 메시지가 없었다. 그 결과 총선이 ‘과거의 심판’ 대(對대) ‘미래의 준비’라는 구도로 흘러갔다. 하지만 친이계와 박근혜는 그 동안 (가령 세종시와 관련한 문제) 이명박 정권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 왔기에 MB정권 심판론으로 심판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셋째, 공천과정의 문제다. 당내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비대위의 혁신이 그나마 궤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박근혜 위원장의 리더십 때문이었다. 민주당에는 불행히도 공천탈락에 불복하여 달려드는 이들들 잠재울 만한 지도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민주당은 지난 몇 년 간 보궐선거와 지방선거, 특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승리한 이후 자만에 빠져 있었다. 워낙 정권심판의 심리가 강하다 보니, 굳이 쇄신을 하지 않아도 ‘심판’의 레토릭만으로도 승리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는 지지자들의 사기를 결정적으로 떨어뜨렸다.
넷째, 선거연합의 다른 한 축인 통합진보당의 문제다. 단일화 과정에서 터져 나온 사건은 ‘동부연합’이라는 이름과 함께 유권자들에게 이중의 실망을 안겨줬다. 하나는 ‘과연 구 민노당 세력이 종북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의 합법정당으로 변모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과연 그들이 운동권 시절의 악습에서 벗어나 정당정치의 민주적 절차에 따를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의구심들이 지지자들의 사기를 꺾었고, 야권연대에 대한 보수층의 경계심을 자극해 그들이 급속히 결집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다섯째, 김용민의 공천이다. 김용민이 공천은 애초에 진보개혁 진영 내에서도 ‘세습공천’이라고 비판을 받았으나, 민주당 지도부는 그에 대한 공천을 강행했다. 물론 ‘나꼼수’ 팬덤을 끌어안기 위해서였다. 결국 이는 한국 정치사에 길이 남은 최악의 캐스팅으로 드러나다. 이 이슈가 문대성이나 김형태의 경우와 달리 지역구를 넘어 전국적 중요성을 갖는 의제로 떠오른 것은 물론 나꼼수가 그 동안 누려온 전국적 인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김용민은 그저 지역구에 후보가 아니라 전국구 스타였다. 당연히 파장이 클 수밖에.
나꼼수의 문제
또 하나 짚어야 할 것은 지지자들의 행태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코믹한 부분은 김어준이 민주당 수뇌부 데려다 놓고 무슨 취조를 하듯이 정봉주 구출 계획을 묻는 대목이리라. 약간의 과장을 섞어서 말한다면, 지도력 없는 민주당에서 유일하게 지도력을 가졌던 것은 차라리 실패한 스나이퍼 정봉주였다. 이번에 문제가 된 김용민의 공천도 한때 ‘홍성대군’이라 불렸던 정봉주와 그의 팬덤의 영향력이 없었다면 애초에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쯤에서 진선미 세 가지 관점에서 나꼼수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진보의 도덕성의 문제다. 문제는 곽교육감 사태 때부터 시작됐다. 당시 나꼼수가 곽교육감을 옹호하기 위해 내세운 억지논리, 즉 ‘무죄추정의 원칙’은 몇 달 후 민주당의 공천원칙이 되었다. 이 원칙(?)은 부산 저축은행비리에 연루되어 실형을 선고 받거나, 기소 당한 후보에게 공천을 주는 행태를 정당화하는 데에 사용됐다. 이 수구적 행태가 그 동안 비리나 물의를 일으킨 인사들을 과감히 배제해온 새누리당 비대위의 활동과 대비되면서, 대중들 사이에 진보의 도덕성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확산시켰다.
둘째, 진보의 지성에 관한 문제다. 나꼼수가 유포한 음모론적 사유는 10.26 부정선거에 이어 이제 4.11 부정선거론까지 낳았다. 정권의 오류를 턱없이 과장하는 나꼼수의 어법은 역설적으로 MB정권의 실제 오류를 사소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민간인 사찰’이 엄청나게 중대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그 중대함에 상응하는 대중의 공분을 끌어내지 못한 것은 이와 관련이 있다. 나꼼수를 통해 대중은 정권심판의 심리적 에너지를 너무 일찍 배설해 버렸다. 정작 중요한 두 번의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조루증에 빠진 셈이다.
셋째, 풍자의 미학성에 관한 문제다. 나꼼수의 막말이 불러올 문제점은 이미 비키니 사건 때 예고된 바 있다. 물론 막말과 욕설도 하나의 취향으로 인정해줄 수 있다. 문제는 그 막말과 욕설에 담긴 내용. ‘라이스를 강간하자.’는 얘기는 발설자의 의식상태를 의심하게 만드는 심각한 망언임에 틀림없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지적은 안 하겠지만, 나꼼수 멤버들의 발언과 생각에는 ‘비키니 코피’, ‘라이스 강간’을 능가하는 초대형 망언이 될 가능성이 농후한 것들이 더러 남아 있다. 그저 대선에서 터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마지막으로 팬덤의 태도를 지적할 수 있다. ‘팬’이라는 말 자체가 원래 ‘광기’를 의미한다. 팬덤은 호오(好惡)의 감정 위에 선 것이라, 선악(善惡)이나 진위(眞僞)의 피안에 존재한다. 정치가 팬덤에 장악되면 선악이나 진위를 따지는 담론은 간단히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 팸던에게 형아/오빠는 무조건 선하며 무조건 참이기 때문이다. 팬덤은 스타에 대한 광적인 사랑과 비판자에 대한 광적인 증오만을 알 뿐이다. 그 결과 정치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해도 합리적으로 지적하거나 이성적으로 교정할 수 없는 상태가 발생한다.
나꼼수를 비판의 성역으로 만드는 데에 사용된 유치한 어법들. “조선일보에서 이용한다.” 조선일보 따위가 무서워 자기비판과 자기교정도 못한다 말인가? “나꼼수에 열등의식 있다.” 이로써 나꼼수 비판하는 것은 졸지에 열등의식의 표현이 되고 만다. 팬덤의 눈에는 나꼼수 멤버들이 원빈이나 장동건으로 보이나 보다. 애써 비판을 해 봐야 듣는 소리는 “관심병 환자다.” 비판자가 그들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가장 관대한 처분은 이것이다. “무관심이 약이다.” 물론 나꼼수 팬덤은 이 최후의 관대함을 베푸는 데에조차 인색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첫째, 민주당은 이제 진보개혁 진영의 구심을 세워야 한다. 특히 민주당의 당선자들은 누구 체제가 됐든 신속히 내적 쇄신을 거쳐 차기 대권주자를 구심으로 강력한 지도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선거의 패배로 빛이 바랬지만, 문재인 후보는 부산-경남에서 40%에 육박하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성과를 거두었다. 나아가 대선을 효율적으로 치르기 위해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을 비롯한 다른 야당들과 대선공조를 위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일시적인 선거연합의 차원을 넘어 집권 후 연합정부를 구성하는 수준의 협의가 되어야 한다.
둘째, 안철수를 끌어들일 게임의 전략을 짜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은 중간층으로까지 지지를 넓히는 데에 일정한 한계를 드러냈다. 안철수는 그 한계를 보완해줄 유일한 인물로 보인다. 나의 제안은 문재인과 안철수가 승패와 관계없이 러닝메이트가 되기로 약속을 하고 경선을 벌이는 것이다. 경선은 그 자체가 흥행성 높은 빅이벤트가 될 것이다. 경선과정에서 두 후보는 유권자를 향해 미래에 대한 메시지를 던질 수 있고, 상호검증을 통해 미리 본선에서 몰아닥칠 사나운 네거티브 공세의 백신을 맞을 수 있다.
셋째, 진보개혁 진영은 한국사회의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 한국 사회의 가장 큰 고통은 안정적인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데에 있다. 비정규직과 청년실업의 증가와 같이 서민층이 가진 공포를 가라앉힐 계획이 필요하다. 화두는 경제 민주화와 보편적 복지, 그리고 질적 성장으로의 전환이다. 박근혜는 눈치 빠르게 좌 클릭하여 복지담론을 선점한 후 최근엔 경제민주화까지 운운하고 있다. 이 선거운동 ‘좌파 코스프레’의 허구성을 적극 폭로하고, 그 의제들의 진정성을 회복해 다시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넷째, 선거 때 골목 누비는 것을 빼면 어차피 정치권의 활동은 고공비행일 뿐이다. 정치에서도 주력은 보병이다. 건강하던 시절의 ‘노사모’는 높은 정치의식과 철저한 도덕의식, 그리고 발랄한 풍자의 미감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설득을 위해 다른 사이트를 방문할 때에 반드시 지켜야 할 매너의 코드까지 마련해둘 정도로 나름 철저히 자기관리를 했다. 지금은 어떤가? 솔직히 지금의 팬덤은 몰락하던 시절의 ‘노사모’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에 가깝다. 재무장을 통해 보병들의 수준과 사기를 높일 필요가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위기는 곧 기회다. 총선의 패배는 가장 큰 싸움을 앞둔 우리에게 귀중한 교훈을 주었다. 정권심판의 욕망이 완전히 소진된 것은 아니다. 그 동안 이어진 크고 작은 승리들을 통해 그때그때 해소되어 왔을 뿐이다. 하지만 총선의 패배, 그에 따른 좌절의 경험을 통해 정권교체의 욕망은 새로이 타오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패배는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물론 심판론만 가지고 대선을 치를 수는 없다. 그 동안 없었던 것은 ‘심판 이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물음에 대한 명확한 답변이다. 유권자들에게 그 답변만 제공해준다면,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 믿는다.
추기 :
급한 대로 대충 이 정도만 지적해둔다. 자세한 얘기는 (아마도 주변 사람들과 논의를 거쳐) 정치 팸플릿의 형식으로 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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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투표독려 영상 보고, 이건 아니다 싶었던 저로선 안철수가 좀 못미더운 면이 없지 않지만,
(노란색 새가 초록색 돼지 까는거 보고, 사실 안철수에게 많이 실망함..ㅠㅜ
과연 이런 사람이 문재인 혹은 야권과 함께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까지도 들더군요..ㅡㅡㅋ)
많은 사람들의 의견처럼 문재인과 안철수가 승패와 관계없이 러닝메이트가 되기로 약속을 하고 경선을 벌이는 것 이외에는
야권에 이렇다할 대안이 없어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