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假名의 美,,, 에밀 싱클레어와 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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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다뎀벼
추천 : 4
조회수 : 29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3/05 09:48:49
假名의 美,,, 에밀 싱클레어와 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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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우리에게는 잊지못할 3.1절의 그해,
에밀 싱클레어라는 무명작가는,
<데미안, 어느 청춘의 이야기>라는 책을 펴낸다.
그리고 그 책은 토마스 만의 표현을 빌자면,
천둥번개와 같은 감명으로 온 세상을 뒤흔들어 놓았다.
 
나는 놀라웠다.
왜? 헤르만 헤세는 전세계의 문인이 아는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아무도 모르는 에밀 싱클레어라는 無名人의 이름을 사용했을까.
 
분명한 것은 "헤세 자신이 자신의 명성에 기대어 이 글이 비추어지지
않게 하였으리라는 것", 그리고 제2의 처녀작이라는 놀라운 자신감과
"零點에서 출발하기 원하는 자신에의 강한 욕구의 발로"이지 않았을까...
.....정말 그랬을까?
 
" " 이 표시를 한, 전자의 말은 일반적인 데미안의 책에,
거의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끝맺음의 말에 항상 포함되는 말이고,
정말 그랬을까? 의 후렴은 내 자신 스스로에게 되묻는,
<데미안, 어느 청춘의 이야기>에의 글에 대한 질문이다.
 
만약 베를린의 신인 문학상인 폰타네상을 수상하지 않았더라면,
<데미안, 어느 청춘의 이야기>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지 않았더라면,
불길같은 평론가-코로디 같은-들의 극찬이 없었더라면,
지금도 이 작품이 에밀 싱클레어의 작품으로 남아 있었을까?
 
조용필의 허공 이라는 히트곡은,
작사에 정욱, 작곡에 정풍송 이라는 이름으로 음반에 표기되어 있다.
이 작품 이전에도 수많은 트로트 가요가 정욱과 정풍송의 작품으로
발표되어져 있는데, 놀라웁게도 이 두사람은 동일인물임이,
조용필에 의해, 정확하게 표현하면 허공이라는 작품에 의해 밝혀지게 된다.
 
글을 쓰는 작가나 곡을 쓰는 작가나, 그 감성에의 유사성은 비슷하다고 보여지며,
자칫 실패할지 모르는 얌전한 고수들의 비애라고나 할까,
나에게는 그러한 면이 언뜻 언뜻 보여 어쩐지 가슴에 와 닿는다.
 
언젠가도 쓴적이 있었지만(아마 서머셋 모옴에 대한 글이였지 싶다),
작가는 자신의 감성과 성격을 글중에 표출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헤르만 헤세 역시 "수레바퀴 밑"에 나오는 한스라는 소년에서
자신의 유년과 소년시절을 은연중 드러낸다.
내성적이고 감수성 예민한 소년으로 그려지는 한스, 아니 헤르만 헤세.
 
수레바퀴 밑, 知와 사랑, 청춘은 아름다워 등의,
수많은 명작들을 뽑아낸 그가 새로운 시도와 새로운 문체로 도전하는
데미안에서 어떤 표현하지 못할, 大家의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언젠가 전국노래자랑의 심사위원으로 나와 수줍어하며 말을 꺼내는
정풍송의 언변에서 이 사람은 참으로 얌전하구나, 하는 인상을 받은것이
비단 나만의 생각일까?
 
타고난 내성적임은 그 어디서나 표시나는 법,
전혀 연관성 없는 헤르만 헤세와 정풍송을 엮어볼려는,
어느 나른한 일요일 오후의 다뎀벼의 思考...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무한한 상상의 나래로 자라난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문체와 더불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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