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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없는 알람이 생겼다
게시물ID : freeboard_58886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이성주
추천 : 4
조회수 : 27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2/04/19 01:34:04
알람을 하나 지웠다.
어제까지 그 알람이 울리면, 난 눈도 뜨지 않고 네게 전화를 했다.

"잘잤지? 일어나."

낮게 새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면 잠깐 조용하던 네가 '알았다'고 대꾸하곤 했다. 잠에서 허우적대는 네 목소리가 좋았는데.
30초도 되지 않는 통화가 끝나면 나는 다시 눈을 감고 누워서 그림을 그린다. 일어나서 비틀, 벽을 짚고 화장실 문을 열어 변기에 앉았겠다. 칫솔에 치약을 짜서 입에 물고 또 잠깐 졸겠지. 머리를 감으면서 이제 슬슬 지각걱정을 하겠네. 가끔은 피식 웃기도 했다.

내가 알람을 듣지 못하고 늦잠자는 날이면 점심쯤에 너에게 전화가 온다. 네가 지각을 한건 내 탓이다. 난 투정을 듣는것도 싫지 않았다.

같은 침대에서 자고 일어나는 날에는, 손을 쑥 집어넣어 맨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드렸다. 네가 얼굴 찌푸리면서 안기면, 그게 또 싫지 않아서 잠깐은 아무말 하지않고 꼭 끌어안고 있었다. 귀여워서 '뽀뽀!'라고 하면 눈도 뜨지 않고 입술을 내민다. 행복했다.

아침은 고만고만한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이었지만, 네가 있는 아침의 그림은 눈이 부셨다.
속옷을 입으려고 맨몸을 드러내는 너를 난, 안고 싶고, 만지고 싶고, 입을 맞추고 싶고. 잠깐 내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네 모습을 떠올려도 봤다가, 지금 우리 관계를 불안해하기도 했다가. 유리공처럼 아름답고 위태로운 이 순간을 영원히 손에 쥐고 있을수 있을까.

네가 머리 말리는 동안에 네 얼굴을 빤히 보고 있으면, '내가 그렇게 예쁘냐'고 묻곤 했다. 넌 아름다웠다.
웃는 모습을 어떻게 지켜줄수 있을까. 내가 네게 어떤 세상을 보여줄수 있을까.
쉽게 마르지 않던 머리가 뽀송뽀송 해지면, 넌 옷을 갖춰 입고 신발을 신었다. 난 문앞에서 네가 신발신는 모습을 보다가 한번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딱 거기까지가 나의 아침이었고, 하루중 내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제 그렇게 아침을 시작할 알람이 필요없다. 필요없는 알람을 지운다.
너한테는 차라리, 내가 지워버리면 그만인 알람같은 사람이었음 좋겠다. 내가 없어서 잠깐 불편하지만, 곧 적응이 되버리고 있었던 기억조차 없어지는 그런 사람이었으면 한다.

난 긴 꿈을 꾸느라 아침을 거르고, 느지막하게 일어나 살아지는대로 살래. 아침이 조금 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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