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여행
게시물ID : humorstory_29021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리리로로
추천 : 27
조회수 : 2004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2/04/19 15:40:00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만은 나는 진짜 허벌나게 여행을 좋아한다. 엄마가 좋아, 여행이 좋아 물어보면 삼겹살을 굽고있는 엄마의 손끝을 보며 엄마가 좋다고 말하는 비겁한 인간이긴 하지만 나는 그래도 여행이 좋다. 물론 여행이 좋아, 삼겹살이 좋아 물어보면 여행은 어느 부위야? 하면서 삼겹살을 집어먹는 돼지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여행이 좋다. 수많은 여행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시내버스만 갈아타고 서울에서 부산가기였다. 이 여행은 말 그대로 광역버스나, 고속버스, 기차 등을 제외한 오직 시내버스만을 갈아타고 부산까지 가는 것이었다. 내가 이 여행을 결심한 것은 어느 한 블로거의 여행기때문이었다. 그 블로거도 서울에서 부산까지 오직 시내버스만으로 도착한 여행기를 남겼는데, 그때 난 시간이 남아도는 잉여퀸이었기에 바로 실행에 옮겼다. 평소 나는 양아치같은 성품으로 남이하는 걸 따라하기 좋아하는 삐에로같은 여인이기에 그 블로거의 루트를 그대로 종이에 옮겨적었다. 물론, 프린트로 뽑을 수도 있었으나 그 마저도 프린트로 손쉽게 얻어버리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는 개뿔 집에는 프린터기가 없었고, 동네 피씨방은 프린터기가 고장났다고 하는 바람에 나는 집에서 원치않는 손운동을 해야만했다. 물론, 손운동을 원해서 하는 남자들은 많으리라... 하지만 나는 손운동을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없었기에 여행루트를 종이에 옮겨적는 것으로 그 운동을 대신했다. 덕분에 나는 소위 남자들이 말하는 딸근 대신, 펜근을 얻었다. 이것이 나의 서울에서 부산가기 여행에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이다. 이로써 나의 여행기를 마친다. 거짓말이지롱.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총 24번의 시내버스를 갈아타야했다. 하지만 버스 노선이 헷갈린 나는 중간에 두 번의 택시를 탔고, 두 번의 버스를 더 탔다. 차비만 ktx기차비 보다 2만원 가량이 더 들었다. 대구에서 하룻밤 찜질방에서 지샌것을 더하면 6천원 더 들었다. 찜질방에서 미역국에 밥 먹은 것까지 더하면 6천원 더 들었다. 맥반석 계란에 식혜까지 먹은 것을 더하면 5천원 더 들었다. ... 그렇게 난 돈지랄을 하며 1박 2일에 걸쳐 부산에 당도했다. 중간 과정은 너무 길기도 하고, 이미 오래전 일이라 까먹었으니 생략하도록 한다. 부산에 도착한 것은 이튿날 저녁 6시였다. 배가 고팠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해운대로 향했다. 해운대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명소 중에 하나다. 죽기 전 누군가,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어디입니까라고 물으면 해운대라고 대답할 정도로 나는 해운대를 좋아하지만, 죽기 전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없으므로 지금 그 대답을 미리한다. 부산하면 회, 회 하면 부산이기에 나는 곧장 해운대에 즐비한 횟집으로 향했다. 횟집 아저씨들은 얼굴에 개기름을 바르며 걷고있는 내게 회를 먹으러 오라며 안쓰러운 눈길을 보냈지만, 여자는 튕기는게 매력이라는 우리 외할머니 말씀에 따라 그런 횟집들은 뒤로하고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방구석에 쳐박혀있는 내 모습과 닮은 해운대 가장 구석에 쳐박혀있는 횟집으로 들어갔다. “몇 분이세요?” “일인분이십니다.” 주인 아저씨는 당황하셨지만, 금세 내게 티비 앞자리를 안내해주셨다. “뭘로 드릴까요?” “모듬회 大자로 주세요.” “한 분 아니십니까?” “한 분이지만, 제 위장은 5인분이니 大자로 주십시오.” 아저씨는 나의 패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힘차게 외치셨다. “여기 모듬회 大자 같은 中자 있어요!” 그리고 흔들리는 내 눈동자를 향해 “이쁜 아가씨 혼자 오셨으니, 中자에 양 많이 드리리다.” 난 그말에 횟집안을 두리번거렸다. 이쁜 아가씨는 어디있지? 하지만 곧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아저씨에게 미소를 넌지시 날렸다. 하지만 아저씨는 이뭐병이라는 눈빛으로 주방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잠시 후, 정말 大자 같은 中자 모듬회가 나왔다. 스끼다시도 엄청났다. 멍게, 해삼, 산낙지, 개불... 나는 먹이를 주지않을 때 나타나는 상어의 공격성을 알아보기 위해 갇혀있는 실험실의 한 마리 굶주린 상어처럼 미친듯이 회를 입에 밀어넣기 시작했다. 아니, 입에 밀어넣기보단 젓가락으로 바로 장까지 회를 쑤셔넣었다. 그리고 내가 내뱉은 한 마디 말에 아저씨는 짧은 박수를 치며 내게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여기 좋은 데이 한병이요!” 회와 소주의 궁합은 누가 만들어낸 것이란 말인가. 나는 회와 소주를 먹으면서도 그 물음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나의 어리석음에 탄식하며 매운탕을 시켰다. 하지만 매운탕도 해답을 내려주지는 못했고, 결국 나는 아무 소득없이 상 위에 있는 접시를 모두 비워냈다. 황폐해진 식탁을 보며 기분이 좋아진 나는 악기를 꺼내 연주를 시작했다. 꺼어어어억 나의 트림 삼중주에 아저씨는 앵콜을 외쳤지만, 나의 입밖으로 풍기는 회와 소주 매운탕 조합의 알싸한 향에 아저씨는 이미 넋이 나간듯 했다.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날 다시 붙잡은 것은 아저씨의 감동어린 매실차였다. 매실차를 마시면서 아저씨와 나는 많은 대화를 나눴다. “왜 혼자 왔어요?” “여행왔어요.” “그래. 그러니까 왜 혼자 왔어요?” 그 말에 나는 대답대신 해운대 바닷물같은 짭쪼름한 눈물을 한방울 떨구었고 아저씨도 울고, 광어도 울고 우럭도 울었다. “잘 곳은 있어요?” “찜질방에 가려고요. 여기 가까운 찜질방이 어디에요?” 아저씨는 친절히 찜질방을 설명해주셨고, 나는 거금 9만원의 횟값을 지불하며 유유히 횟집을 빠져나왔지만, 밖에는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뒤이어 다급하게 따라나오신 횟집 사모님께서 우산을 씌워주며 말씀하셨다. “이쁜 아가씨 혼자 이 밤에 거기까지 어떻게 가려고. 비도 오는데.” 그 말에 나는 다시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이쁜 아가씨? 하지만 곧 창가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며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사모님께서는 그런 내 뒷통수를 때리고 싶은 손길을 꾹 누르시고 차에 시동을 걸며 데려다주겠다고 하셨다. 친절한 횟집 분들의 배려로 나는 찜질방에 편히 도착할 수 있었고 아침에는 대구탕도 한다는 사모님의 말에 아침 예약까지 하고 찜질방에 들어섰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해수탕. 나는 그곳에서 맥반석 계란과 맥주로 혼자만의 여행을 다시 즐겼고, 다음날 대구탕으로 여행을 마무리했다. 서울로 돌아올때는 ktx를 이용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도 나는 도시락과 콜라, 오징어를 뱃속에 밀어넣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 몸무게나 2kg이나 불었지만, 빚이 7억이나 7억 14만원이나 별 차이 없다는 이봉원의 말처럼 2kg의 불은 몸무게는 날 슬프게 하지는 못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시내버스로 여행하기는 그로써 대성공을 거두었고, 나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마을버스로 갈아타고 가는 여행을 계획중이다. 출처 : www.liliroro.com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