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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예찬 (5) - 폭풍의 언덕
게시물ID : readers_2795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다뎀벼
추천 : 1
조회수 : 44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3/12 15:20:51
기형도를 평하기를....
 
"그는 자신이 쓴 시를 대부분 외우고 있었는데 길을 걷거나 차를 마실 때 시를 하나씩 외워 보이면서 묻곤 했다. 듣는 사람의 의견에 따라 고치는 일은 드물었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 시가 아주 익숙한 것으로, 심지어는 듣는 사람이 자신이 쓴 구절로 착각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자신의 시에 대한 완벽한 비평가, 교정자, 낭독자, 창조자였다"(황경신)
 
"도대체 왜그리 일찍 우리 곁을 떠났단 말이오...
아으, 칼국수처럼 풀어지는 어둠......."              (다뎀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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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 기형도 -
 

이튿날이 되어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간유리 같은 밤을 지났다. 그날 우리들의 언덕에는 몇 백 개의 칼자국을 그으며 미친 바람이 불었다. 구부러진 핀처럼 웃으며 누이는 긴 팽이 모자를 쓰고 언덕을 넘어갔다. 어디에서 바람은 불어오는 걸까? 어머니 왜 나는 왼손잡이여요.
 
부엌은 거대한 한 개 스푼이다. 하루종일 나는 문지방 위에 앉아서 지붕 위에서 가파른 예각으로 울고 있는 유지 소리를 구깃구깃 삼켜넣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너는 아버지가 끊어버린 한 가닥 실정맥이야.
 
조용히 골동품 속으로 낙하하는 폭풍의 하오. 나는 빨랫줄에서 힘없이 떨어지는 아버지의 런닝셔츠가 흙투성이가 되어 어디만큼 날아가는가를 두 눈 부릅뜨고 헤아려 보았다. 공중에서 휙휙 솟구치는 수천 개 주사 바늘. 그리고 나서 저녁 무렵 땅거미 한겹의 무게를 데리고 누이는 뽀쁠린 치마 가득 삘기의 푸른 즙액을 물들인 채 절룩거리며 돌아오는 것이다.
 
아으, 칼국수처럼 풀어지는 어둠! 암흑 속에서 하얗게 드러나는 집.
 
이 불끈거리는 예감은 무엇일까. 나는 헝겊 같은 배를 접으며 이 악물고 언덕에 섰다. 그리하여 풀더미의 칼집 속에 하체를 담그고 자정 가까이 걸어갔을 때 나는 성냥개비 같은 내 오른팔 끝에서 은빛으로 빛나는 무서운 섬광을 보았다. 바람이여, 언덕 가득 이 수천장 손수건을 찢어 날리는 광포한 바람이여. 이제야 나는 어디에서 네가 불어오는지 알 것 같았다.
 
오, 그리하여 수염투성이의 바람에 피투성이가 되어 내려오는 언덕에서 보았던 나의 어머니가 왜 그토록 가늘은 유리막대처럼 위태로운 모습이었는지를.
 
다음날이 되어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폭풍의 밤마다 언덕에 오르는 일을 그만 두었다. 무수한 변증의 비명을 지르는 풀잎을 사납게 베어 넘어뜨리며 이제는 내가 떠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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