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려간 송아지가 혼자 돌아온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어렸을 적에 소와 송아지의 정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제가 직접 본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집에는 늘상 암소를 주로 일소로 키웠는데 그것은 황소보다는 송아지를 낳으면 자식들이 많았던 우리집에는 늘상 집짐승들을 하나씩 자식들에게 배치시켜서 돌보아 키우도록 하면서 어미소와 송아지와의 사랑을 지켜보도록 하려는 부모님의 속셈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외양간 하나에 소를 두 마리씩 키울 수가 없기 때문에 송아지가 일년여 정도 크고 나면 우시장에 내다 팔곤 했습니다. 송아지를 판 목돈이 황소 키울 때와는 다른 별도의 농가 수입이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럴 때는 송아지를 팔기 위하여 어미소와 송아지를 함께 시장으로 몰고 가게 됩니다. 송아지 혼자는 어미소에게 떨어지려 하지 않기 때문에 시장까지 몰고가기가 쉽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어미소와 송아지를 함께 몰고 가서 우시장에서 송아지를 다른 주인에게 맡겨 팔아버리고 어미소만 집으로 몰고 오면, 돌아오는 들길이 어미소의 우는 울음 소리로 가득했습니다. 며칠이고 어미소는 송아지를 찾는 목소리로 울곤 했지요. 외양간에서 먼 하늘을 바라보고 우는 어미소의 모습이나 일을 하다가도 우는 어미소의 울음 소리는 지금까지 언제나 나의 가슴 속에서 애련의 마음을 갖게 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아버지께서 이십리 정도의 시장에 어미소와 송아지를 몰고 가 송아지를 팔고 오셨는데 그날밤 아주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날도 송아지를 두고 온 어미소는 울면서 밤을 새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 새벽에 그 팔려간 송아지가 제 혼자 돌아온 것입니다. 그 거리가 얼마나 먼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팔린 시장은 적어도 이십리길은 되었으며 그 송아지를 사간 사람의 집 또한 다른 길로 꽤나 먼 동네의 사람이 사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밤을 통하여 어찌 된 일인지 송아지가 아직 코뚜레는 하지 않아서 목에 맨 새끼줄 고삐를 땅에 질질 끈 채 울면서 우리집 마당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새벽에 송아지 울음 소리를 듣고 온식구들은 안그래도 마음이 쓰린 판인데, 모두가 일어나서 돌아온 송아지를 보고 모두가 놀라와 하면서도 반가워 했던 것입니다. 송아지가 그렇게 먼 길을 한번 간 길을 밤길을 헤치며 혼자 돌아온 것입니다. 아마도 팔려가는 동안 모든 곳곳을 그렇게 눈여겨 보기라도 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어떻게 그렇게 한번 간 길을 그렇게 잘 알고 돌아왔는지 지금 생각해도 놀랍기만 합니다. 그 새벽 저마다 일어나서 반갑게 쓰다듬어 주며 송아지를 외양간 안으로 어미소에게 들여보냈습니다. 상당히 큰 한 살여 된 송아지인데도 그 어미소는 얼마나 그 송아지의 등이며 얼굴을 혀로 핥아주며 반가와하는 눈치가 역력하였습니다. 그 때 어미소의 그 핥아 주는 속도가 평소보다 훨씬 바쁘게 핥고 있었습니다. 날이 새고 이튿날 오후가 되었습니다. 그 송아지를 사 간 사람이 물어물어 우리집을 찾아왔습니다. 놓친 송아지를 찾으러 온 것입니다. 그 사람의 말에 의하면 송아지를 자신의 집까지 데리고 갔는데 그 집에서 없어졌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 사람의 얼굴을 보니, 아마도 집으로 돌아가다가 시장에서 마신 막걸리 기운도 있고 하니 코뚜레도 없는 송아지를 제대로 몰고가지 못하여,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아마도 송아지가 도망을 쳐서 우리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나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먼 길을 그것도 밤길을 혼자 돌아온 송아지를 다시 그 사람에게 넘겨주는가였습니다. 물론 아침부터 우리 형제자매들은 모두 반대에 반대 '데모'를 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우리 아버지는 그 팔았던 송아지가 돌아온 것에 대하여 우리들의 의견과 함께 팔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송아지를 사갔던 사람에게 그 송아지의 사정을 이해해달라고 하면서 현금을 돌려주도록 하고 그 송아지를 다시 더 키우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송아지만은 다른 송아지들과 달리 오래오래 동네사람들의 이야기거리가 되기도 하면서 어미소와 함께 지내다가 나중에 덩치가 제법 커서야 시장에 내다 팔았던 것입니다. 지금은 일소보다 경운기나 트랙터가 많이 보급되었고 소를 키우는 것도 한 집에 한 마리 소를 키우는 시대는 점점 지나가고, 목장에서 큰 소 작은 소를 모두 함께 키우기 때문에 그렇게 울며 불며 헤어지는 어미소와 송아지를 보지 않게 되어서 더욱 좋은 세상이 된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 평소에 정이 많이 든 어미소를 판 돈을 허리춤에 차지 않고, 조기 몇마리를 담은 비린내 나는 비료포대 종이 봉다리에 함께 담아서 지푸라기 끈에 묶어 손에 달랑 들고 돌아오는 날은 그래도 참을만했습니다. 그러나 울고 또 우는 어미소만 몰고 시장에서 돌아오시는 모습은 언제나 어린 우리 형제들의 마음을 며칠이고 쓰라리게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제가 송아지와 소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른 모든 동물들보다 바로 그 어미소를 부르는 송아지의 소리가 너무나 사람의 '엄마' 부르는 목소리와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도 마당으로 들어서며 '음메! 하고 울던 그 돌아온 송아지의 울음소리가 들리는듯 합니다.
이상 글 출처 - 오두방정의 꿈꾸는 풍경 [퍼온글 2] 담양 창평 용운동은 노인들만 사는 시골이라 고즈넉하고 뒹구는 낙엽들만 소리를 낼 뿐이다. 친정 엄마가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몸이 안 좋다고 하셔서 서둘러서 창평으로 갔다. 시장에서 따뜻한 음식을 사드리고 싶었고, 또 현미 찹쌀을 사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더니 창평 장날이었다. 5일, 10일이 창평 장이다. 모처럼 짜장면을 드시고 싶어 하셨는데, 짜장면 집이 하필 실내 리모델링 하는 중이어서 국밥집에서 선지국으로 사드렸다. 오매댁 할머니 집에서 현미 찹쌀을 사기로 했는데, 오매댁 할머니가 창평 미용실에서 파마를 하고 계신다고 했다. 엄마는 몇 군데 안되는 미용실을 뒤져서 찾으셨다. 우리 셋은 같이 차를 타고 용운동으로 올라갔다. 현미찹쌀 20kg을 4만원에 샀다. 거기다 고구마를 봉지에 담아 주시며 일요일날 우리 애들 삶아 주라고 하신다. 엄마같은 정을 다시금 느껴본다.
미용실에서 파마 보자기를 뒤집어 쓴채로 같이 오신 오매댁 할머니 집이다. 소를 열마리 넘게 키우셔서 마당에 여물 써는 작두를 비롯해서 짚다발이 많았다.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다.
그러다가 슬피우는 어미소의 울음소리를 듣게 되었다. "왜 소가 저렇게 크게 소리를 질러요?" "염병허고 우냐? 어지께 송아지를 두마리 팔아부렀더니 저렇게 안 우냐?" "네? 소가 송아지가 없어져서 우는거예요?"
"징상스럽게도 운다~. 엊저녁부터 잠을 못자게 운다." "송아지를 몇마리 낳았는데요?" "시(세)마리~"
소는 동네가 떠들썩하게 울었다. 듣는 사람 애간장이 녹아나게 울었다. 우는 이유를 알고 들어서 일까? 내 눈에도 이슬이 맺혔다.
얼마나 참기 힘들면 소가 목을 자학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송아지를 암송아지 두마리와 숫송아지 한마리를 낳았다고 한다. 암송아지만 팔렸다고 한다. 새끼 한마리가 옆에 있는데도 떠나간 자식 생각에 그리 슬피 우는 것이었다.
엄마랑 오매댁 할머니는 사람이 짐승만도 못한 것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출처- 오마이뉴스 프라우고(sohngoh)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