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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없다고 가방끈이 짧다고 낙담하지 마세요 당신도 할수있습니다!
게시물ID : humorbest_28054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구우★
추천 : 227
조회수 : 4406회
댓글수 : 3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0/06/07 01:59:40
원본글 작성시간 : 2010/06/07 01:14:05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 남자는 어려서부터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쌈박질만 하고 사고만 치고다니는 불량아 였죠
결국 그 남자는 고1때 자퇴서를 제출하고 학교를 그만두게됩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막내 외삼촌의 권유로 시작한 집에서 하고있던 장사에 뛰어들게 됩니다.
남대문 시장에서 조화와 바구니를 팔며 장사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나이를 속여가며 거래처 사장들을 접대 하고 간간히 도매 거래도 따내고..
하지만 실제적인 경영은 막내 외삼촌이 했죠. 새벽부터 일어나 밤 늦게까지 일을 했지만
고단한줄 모르고 일 했습니다. 집안일이고 벌이도 괜찮았으니까
하지만.....막내 외삼촌의 방만한 경영으로 인해 부도가 나게 됩니다
팔리지도 않는 물건까지 수백 수천만원어치를 사입하고 거기다 사채까지 쓸어 썼으니.......
시중에 돌던 가게수표중 16장이 부도처리 되었지만 발에 땀나도록 뛰어다니며
계약을 성사시키고 어음을 현금화 시키고 돈을 빌려가며 13장을 막았지만....결국 돌아온건
가게 곳곳에 붙어있는 빨간딱지뿐...
그날 그 남자는 불 꺼진 방에서 혼자 소주를 마시며 주먹을 방바닥에 피가나도록
긁어대며 말 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불쌍하다고 이제 어떻게 모시냐고
이제 우리 부모님 어떻하냐고 우리집 망했다고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습니다.
결혼을 생각했던 여자친구조차도 지하실에 살던 집을 보고는 역시 남자는 돈이 최고라며 떠나갔습니다
최종학력이 중졸이라 군 입대를 위해 친구들까지 꼬셔가며 검정고시로 고교 졸업장을 땄고
정신수양을 한다는 마음으로 육군중 가장 힘들다는 수색대(7사단수색대)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매일되는 고된 일과 속에서도 사회에 나가면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독기를 품고 군생활을 마치게 됩니다.
하지만 전역 하자마자 어머니는 아버지와 가난때문에 이혼을 하시고 나가시게 되었습니다
결국 가난에 한이 맺히게 되는 두번째 계기가 되었습니다.
전역 후 딱 하루를 놀고 그 다음날부터 전기공을 하던 친구를 따라다니며 전기기술을 배우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도 6개월 후 허리디스크를 얻고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가장 자신있고 잘 해왔던 장사를 배우기 위해
다시 남대문 그릇도매 상가를 들어가게 되었습니다..초봉 80만원이라는 적은 월급임에도 불구하고
거래처 손님이면 무조건 허리를 굽혀가며 있는 아부 없는 아부 다 떨어가며 자기 손님을 늘려갔습니다.
결국은 사장에게도 인정받아 2년만에 월급 160에 매상의 5%를 가져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사업아이템을 사장에게 권유하고 그걸 시행하면서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남대문에서 장사를 배운지 4년 이제 창업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국민학교 때부터 알고지낸 친구인 모범생 스타일의 친구에게 창업을 제의 했습니다.
사람을 상대하고 거래처를 접대하는 방법은 알지만 돈관리에 약하고
꼼꼼하지 못한 자신의 스타일을 알기에 일부러 꼼꼼하고 성실한 친구에게 권유를 했던거죠.
3평 남짓한 자신의 지하실 방을 사무실로 꾸미고 남대문에서 물건을 싸게 구입한뒤
오픈마켓에 올리면서 하루 5만원 혹은 10만원씩 팔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밝게 생각 했습니다.
물건을 구입할 자금이 없어 냉장고가 고장났을 때 아버지에게 냉장고 사오게 100만원을 달라 했고
50만원 짜리 냉장고를 산뒤 나머지 50만원이라도 사업운영 자금으로 돌리며 악착같이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온라인 쇼핑몰을 내었고 특유의 접대성과 서비스 장사 노하우를 접목하여
얼마 안가 강남에 사무실을 차리게 되었고 그뒤로는 더 넓지만 집이 가까운 곳에 사무실을 내었고
지금은 연희동에 60평 짜리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직원들도 두고 있습니다.
아버지 용돈도 매달 200만원씩 드릴 정도로 벌이도 좋아졌고 1년에 한번씩 아버지 여행도 보내드리고
명품옷도 선물 해드리고 이제 효자 노릇을 해봅니다.
평생을 법 없이도 살수 있을 정도로 성실하시고 고생만 해오신 아버지
마음이 너무 약해 큰 외삼촌 슈퍼 차리는데 돈 빌려주고 둘째 외삼촌 레스토랑 차리는데 사업자금
빌려주고 막내이모 전세 아파트값 빌려주고 막내삼촌의 권유로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결국 우리집이 부도가 났을땐 돈 빌려달라며 뻔질나게 찾아오던 친척들은 모두 발길을 끊었습니다.
수년이 지나도 받은건 막내이모에게 빌려줬던 전세아파트 값 뿐...
가난이 자신에게 닥쳤더라도 동생은 자존심 만은 잃지 않고 살려 했습니다.
열심히 달려와서 막상 성공을 하자
자신이 가난했을때 자신을 무시하던 여자들도 이젠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걸 느낍니다.
소개팅에 나가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자 신분을 속여서 자신은 쇼핑몰 직원이고 월 백 조금 넘게 받는다고
했을때의 차가운 눈초리와 냉대 하지만 오히려 좋은 여자를 만나기 위한 과정으로 삼았습니다.
밥 사먹을 돈이 없어 컵라면과 빵으로 연명하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연매출 20억을 넘기고 독일의 명차를 끌고 다닐 정도로 성공했습니다.
이제 31살.......고교 자퇴에 사고뭉치에 가난한 집안에 거기에 부도까지 맞아보고 부모님 이혼에
모든 주변 환경과 자기관리가 부족했었지만
죽을 각오로 노력한다면 좋은 대학을 나오고 좋은 직장을 다니는 친구들보다도 성공할수 있다는걸
몸소 증명 했습니다.
가난이 너무 싫어서 아버지가 고생하시는게 너무 싫어서
있는 머리 없는 머리 짜내고 몸소 뛰어가며 실천에 옮겼고 정말 독기를 품고 밤낮으로 일 해가며
이제는 그 누구도 쉽게 무시할수 없는 그 나이대에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가방끈이 짧다고 집안이 가난하다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당신도 당신의 모든것을 내걸어 노력해본다면 성공할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제 이야기가 아닌 제 친동생의 이야기 입니다.
저 또한 노력하지 않은 삶은 아니지만 아직 더 힘차게 달려나가야 겠지요
아직까진 평범한 요리사 생활을 하고있지만 저 희망은
동생에게 부끄럽지 않은 형이 되고 아버님에게 부끄럽지 않은 장남이 되어보는 것 입니다.
속 깊은 동생은 벌이가 시원찮은 저를 위해 살길을 마련해 주려고도 해보고
자신의 사업관련 공부에 대한 모든걸 지원해줄테니 해보라 라고도 말 했지만
저 또한 팔 다리 멀쩡하고 아직은 젊기에 동생에게 짐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자랑스러운 형이 되는 그날 동생에게 비싼 술 한잔 사주고 싶군요..
긴 글 읽어주셔사 감사합니다 희망을 가지십시오 노력하면 당신도 할수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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