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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게시물ID : humorbest_280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눈물을쏟으며
추천 : 55
조회수 : 3603회
댓글수 : 4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4/02/20 14:45:08
원본글 작성시간 : 2004/02/20 14:03:01


우리에겐 한번쯤 귀찮음을 무릎쓰고, 뒤적거리게 했던 신문 비스무리 생겨묵은 것이 있습니다.

동네 버스정류장 부스 한켠에 언제나 오독하니 덩그러이 널부러져 있으면서 사람손을 애태워 기다리는 그건 바로 벼룩시장, 가로수, 교차로 등과 같은 생활정보지입니다. '로칼 커먼 인포메이션 디스트리뷰팅 페이퍼'라고 멋지게 설명드린다면 어떠실지...

우리의 눈길을 시원하게 잡아끄는 고딕 활자와 텁텁한 색깔의 단호한 문안을 강조하며, 도발적인 우리의 이성에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대던 생활정보지는 이제 서서히 우리의 관심에서 벗어나.. 일부 소수 사람의 손에 붙들려 이리 저리 옮겨다니고 있습니다.

이제는 문구로만은 도저히 판독할 수 없으며 반드시 전화를 걸어봐야만 그 내역을 확인할 수 있어, 참으로 아방가르드틱하며 겁나게 뉴웨이브적인 '구인광고'가 우리나라 광고사에 한 획을 긋는 일대 혁명적인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계속되어온 구인광고의 전통적인 유형이다. 모집 직종, 자격, 급여, 업체, 연락처 등이 다 나와있으므로 하고 싶은 사람만 연락하면 된다. 인간적인 호기심이나 궁금증 등 정서적 측면은 완전 무시되고 추가적인 상호 커뮤니케이션 등은 철저히 배제되는 지극히 기계적인 광고의 전형이라 하겠다.


각 지역별 속성을 강조한 경상도형 구인광고..
옆의 것은 전라도형 구인광고.. 마케팅에서 말하는 '시장세분화'의 원리를 정확히 시사하고 있는 바이다. 고객의 유형에 맞춰 문안을 짜내는 모습이 가히 창조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단도직입적으로 위와 같이 직설적이며, 강한 카리스마를 물씬 풍기게 하는 광고도 있다. 이는 하나의 칼날이 되며.. 주머니에 땡전 한푼 없는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겨 수화기를 들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러나..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전화를 걸기 전까지 그 내용을 절대로 알 수 없는 확인불멸의 구인광고!



이 회사의 정체는 '중소기업 기계 부품 생산업체'이다. 하지만 광고의 내용을 보아선 절대로 그 분위기를 짐작할 수 없게 만드는 이유가 무엇일까..


볼링하고 돈도 번다는 말로 짐작할 때, 볼링센터에서 직원을 모집하는 것으로 보이나.. 그렇게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위 회사의 정체는 '을지로에 위치한 중소기업 하청 부품생산업체'이다. 사장 본인이 볼링을 취미로 한다는 것으로 자신의 직원들에게 볼링을 추천한다는 뜻에서 위의 광고를 기획했다고 한다.



승용차로 무슨 돈을 벌까.. 하는 의문과 고민에 휩싸이게 만드는 위의 구인광고의 정체는... '가전제품 제조회사'이다. 승용차로 출퇴근하고 제조된 제품을 납품해야 하기에 승용차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업계의 일반적인 이유를 암시하고 있지만, 광고만으로 절대 그 의미를 쉽게 짐작하기 힘들며, 우리의 이성에 막연한 호기심을 제시하는 바이다.



술집 웨이터를 찾는 구인광고란 말인가? 절대 아니다. 이 광고를 낸 회사의 정체는...'내수용 전자제품 및 일반 가전기기 생산업체'이고 '조립라인'에 사람을 채용하기 위한 구인광고이다. 참으로 기발하고 우리의 상식적인 사고로는 짐작하기 힘든 최상급 레벨의 구인광고가 아니던가...



아.. 이런 당황스런 표현이 있나.. 과연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가.. 도무지 짐작조차 하기 힘든 이 위압감은 또 뭐란 말인가.. 위의 구인광고를 낸 회사의 정체는.. '반도체 칲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이다. 과연 이러한 광고를 보고 이 중소기업에 전화를 걸기라도 한단 말인가.. 우리의 상상력이 이들에게 있어서 '새발이 피'란 말인가..




왜 이런 쓰잘데기 없는 내용에 관해 글을 쓰냐고
반문하시는 회원님들이 충분히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신문 및 온갖 미디어에서 많은 수의 사람들이 그냥 저냥 놀고 있다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활동 능력을 충분히 갖춘 사람들이 무대책으로 놀고있음에도 여전히 우리의 제조업, 특히 중소업체들은 어렵고 더럽고 위험하다는 이유로 심각한 구인난에 처해있음을 새삼 가슴아프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일이 쌓여 있는데 사람은 없고, 돈을 준다고 해도 도망가기 바쁘니.. 우리나라에서 제조업을 한다고 하면, '아직도 중국 안갔냐고..' 한심하다고 말하는 주위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한 업체의 대표는 광고에 '제조업'이라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밝힌다면 하루에 전화 한 통도 받기 힘들기 때문에 유치하고 말도 안되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광고를 내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자조섞인 말을 하곤 합니다.

아무 생각없이 쉽게 지나쳐 버리는 불과 30자 안팎의 이 짧은 광고에도 우리의 경제 현실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는 오늘날 우리의 자화상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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