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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이론으로 본 자본주의에 대한 고찰
게시물ID : sisa_19881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노블리제
추천 : 1
조회수 : 606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2/04/23 11:10:08
안녕하세요 

이번에 과제로 내게된 감상문인데 한번 같이 토론해보자고 올려봅니다.

두시간만에 휘리릭 써서 어떤지 잘 모르겠네요 ㅎㅎ


  칼 맑스의 이론은 국내에서는 소위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정의가 내려져 있어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이 이론은 불안정한 것이며 자본주의 사상을 위협하는 불온한 이론으로 확정지어져 있었다.
  여담이지만 맑스에 대해서 하나도 몰랐을 시절, 군대에서 관물대에 존경하는 인물을 적을 때 마르크스라고 적어서 붙여서 2년동안 붙였었는데, 이는 맑스에 대해서 공부를 하여 그의  이론에 대하여 존경하는것은 아니라 인류 역사상 한 사람이 이토록 많은 사람에게 짧은시간동안 영향을 끼친 사람이 있었을까에 대한 생각에 의해서 였다.
  생각은 이러하였지만 그의 이론에 관한 저서에 손을 대는 것은 왠지 모르게 지금까지 교육 받았고 살아온 자본주의 사상에 반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제대로 아는 것에 거부감을 주었었다.
  이에 우연찮은 기회에 강의를 들음으로서 그동안 가져왔던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의문에 대하여 품었던 의문에 대한 답을 어느정도 얻은듯 싶다.  가난한 사람은 왜 점점 가난해 지고 부자는 점점 부유해 지며 소득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소득 피라미드는 어째서 삼각형이 아니라 영문자 T를 거꾸로 한 모양으로 심화가 되어갈까라는 생각을 예전부터 해왔고, 특히 IMF이후부터 현재까지 연일 신문과 뉴스에서 소득의 격차가 심해져 중산층이 사라지고 가속화 되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접해 보았다. 하지만 그에 관한 뚜렷한 해결책과 진정한 이유에 대하여는 사회적인 대답은 어디에선가 궁금증을 가지게 하였다.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은 무한자유경쟁의 세계로 누구나 노력하면 자신이 가진 역량만큼의 이익을 얻고 인류역사상 가장 성공한 체재로, 항상 공산주의의 몰락을 비유로 들어 자본주의라는것은 지금까지 실행되어온 어떤 이론보다 완벽하다고 교육 받아왔고, 모두들 그렇게 믿고 있었으며 본인 또한 그렇게 생각해왔다.
  그리하여 현재의 취업난과 소득불평등의 가속화는 그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노력이 부족하여, 혹은 잘못하여 발생한 것이라고 사회적으로 주입하고 있는 모습을 알 수 있다.  국가는 점점 발전하고 대기업은 점점 커져만 가는데 왜 서민들은 살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물가상승만큼도 되지 않는 임금으로 실질소득은 줄어들어 가는 것일까. 
  자본주의를 흔히 돈이 돈을 버는 세상 이라고들 말한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는 우리 생활에서 필요한 상품을 노동자에게 임금을 주고 생산하여 시장에 내다 판다.  그리고 우리가 교육받아온 이치에 따라 다소의 이득을 붙이고 임금에 대한 지불이 끝난 노동자에 대해서는 추가로 나온 잉여이익에 대한 결정권을 주지 않아도 크게 불만하지 않는다.
  맑스의 저서에 관하여 가장 인상이 깊었던 대목은 노동생산성증대에 관한 것이었다.  1800년대에 나온 이론이 이미 나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었다.  그 궁금증이란 과거에 비하여 버는 소득도 조금씩이지만 명목적으로는 늘어나고,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은 점점 늘어나게 되어 생활의 질은 조금씩 개선되는데(대표적인 예로 스마트폰) 이것은 노동자에게 자본가들이 점점 좋은 조건과 임금을 지급함으로 생기는 결과가 아닐까 라는 궁금증이었으나, 노동생산성증대로 인하여 노동자들이 생산하는 상품의 사용가치는 점점 증가 함으로서 같은 임금으로 살수 있는 상품은 늘어나서 보기에 따라서는 삶이 개선되는것 처럼 보이지만 노동생산성증대는 노동의 강도의 강화를 수반함에 따라 노동자는 점점 힘들게 일하고, 재생산성의 증가로 자본가의 잉여이익은 늘어나고 빈부격차는 심화 된다는 것이었다. 
  잉여이익이 점점 커짐으로서 전체적인 파이는 커져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조각의 분배는 공평하지 않다.  잉여이익이 생겨나는 과정을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모습은 흥미로웠다.  산업공학과라는 본인의 학과에서도 재무재표와 약간의 회계를 배우는데 투입된 자본에 대하여 발생하는 ‘이익’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의문을 가진적이 없었고, 그 때문에 이 이익이라는 부분은 어디서 오는지에 대하여 궁금증을 가진적이 없었으며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단지 상품을 생산하는데 투입된 기계와 원료 그리고 임금을 더한곳에 이윤을 붙여서 상품가격이 결정된다 라는 결론으로 마무리가 지어지는데 이 이윤이라는 부분을 생각할 때, 투입된 원료와 기계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지 않고 오로지 상품이라는것에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것은 노동자라는 것은 굳이 알려주지 않아야 하는 이야기였나 라는 생각이 든다.  막연히 이익은 리스크를 진 자본가가 가져가야 하는것이라고 생각해왔고 그 근원은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것이 나 자신에게 놀란 점이다.
  맑스의 경제이론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은 자본가의 리스크에 관한 것이었다.
생산수단에 투자를 함으로서 실패할지도 모르는 투자를 실행한 자본가에게 일정임금과 그에따른 조금의 성과급을 제외한 나머지 잉여이익을 자본가가 모두 독점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것은 이해하기 힘들었으나 리스크라는 것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지 않는다는 것으로 이해가 가능했다.   
  저서를 읽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이 글이 작성된것은 1800년대 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사회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윤율에 관한 내용은 현재의 거의 모든 사업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지불한 임금에 대한 지불노동과 불불 노동에 관한 이윤율은 불불노동이 늘어날수록 자본가의 잉여이익은 늘어나게 된다는 것인데, 이윤율을 늘리는 방법중 초기자본주의에서 많이 실행했었던, 지불노동은 그대로지만 불불노동의 시간을 늘여서 잉여이익을 늘리는 방법은 현대의 사업장에서도 심심찮게 보이는 방식이다.
  현재 이런 일이 일어나고도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자본가들에 의한 생산수단의 독점이라는 한마디로 결론지어도 될 듯 싶다.  과거 소작농과 농노, 노예로부터 벗어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강제적인 일로부터의 자유를 얻었지만 동시에 일을 하지 않을 자유를 얻음으로서 자신이 생존하기 위해 자본가에게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판매 해야한다.  이로인해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과거 봉건주의 사회의 영주와 소작농의 관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다수의 노동자는 생산수단을 가지지 못했음으로 과거 영지라는 것에서 이름을 바꾼 기계에 노동을 하게되고 노동력에 대한 판매에 합의한 금액 이상으로는 임금을 받을 수 없고 잉여이익에 관하여서는 어떠한 결정권도 가지지 못한다.
  생산수단을 가지지 못한 노동자는 노동력을 팔지 못하면 생존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칼자루는 자본가가 쥐고 있으며 이들은 말한다.  임금을 올리면 상품의 경쟁력이 떨어지게 되고 나아가 국가경쟁력이 쇠퇴하여 모두들 가난해지고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그래서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은 OECD에서 구매력지수로 보면 최하위권이고 노동시간은 가장 긴가보다.
  하지만 맑스의 저서에서도 나와 있듯이, 임금의 증가는 임금률 상승의 세부적인 항목을 생각하지 않아도 무조건 상품가격의 상승으로 귀결되어지지 않는다.(물론 임금률의 상승이 빈부를 가속화시킬수도 있다)  또한 매년 대기업들은 사상최대 순수익을 경신하고 있고 수출입 흑자또한 매달 최대치를 갈아치우고 있는 현재, 과연 임금을 올리는것이 경쟁력이 떨어질 것일까라는 생각을 들게한다.  앞서말한 이윤율이 매우 높아진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므로 상품의 경쟁력과 임금의 상승은 현재 그들의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2007년부터 우리나라 노동자의 명목임금은 올랐지만 물가상승에 따른 실질소득은 매년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이 상황에 관하여 생각해 본것은 최저임금이 낮고 이윤율이 매우 높으며, 외국인노동자를 자국노동자와 경쟁시켜서 생긴결과라고 생각한다.
 
  주류경제학에서 말하는 가장 대표적이면서도 아무런 의문을 가지지 않았던 이론은 수요와 공급에 의하여 상품의 가격이 결정되고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통제되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는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며 의무교육과 고등교육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이론이다.  하지만 맑스의 저서에도 나와 있듯이 공급과 수요는 어떤 상품의 시장 가격이 왜 그것의 가치 이상으로 올라가거나 그 이하로 내려가는지 설명하지만, 가치 자체는 결코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은 결국 공황을 낳았고 그 자체로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직 그 실체에 관하여는 공부가 부족하지만 어딘가는 허점이 있어보이고 그로인한 결과도 이미 여러번 경험하였다. 1930년 대공황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 2007년 서브프라임 사태등등. 

  이 과목을 수강한 후 많은 친구들과 자본주의와 현재 상황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지만 가치와 잉여이익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경제학을 전공한 친구들도 딱히 반박은 하지 못하지만 어딘가 미심쩍다고 받아들이지는 못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나쁘게 말하면 정말로 세뇌가 떠오른다.
  얼마전 한 시사커뮤니티 사이트에 교수님께서 말씀해주신 현대자동차 노동자에 관련하여 글을 쓴 적이 있다.  추천을 꽤나 많이 받았는데, 댓글을 보면 실제로 현대자동차에 근무하고 있는 지인들을 가진사람들은 노동강도에 관하여 꽤나 동감하고 있었지만, 뉴스에서 나온 기사대로 그대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다. 예를 들어 평일근무는 일을 대충대충 놀거나 안하고 주말이나 특근에만 매달려 임금을 높인다고.  어느쪽이 옳은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99%의 사람들은 노동자이다.  1%의 생산수단을 가진 자본가가 노력만 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비판없이, 생각없이 조용히 일만 해준다면 미소지을것은 누구일지 한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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