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수(조혈모세포)이식을 마치고, 오늘 퇴원하여 집에 왔습니다.
막상 기증 해보니 정말 별 거 아니더군요. 정말 별거 아닌데 우리나라엔 기증자가 적어서 이식을 못받고
세상을 떠나는 환자가 많다고 합니다. 이거 읽고 기증하겠다는 분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채취한 골수는 바로 환자에게 이송되어 이식되는데, 이 때 모자라면 다음날 조금 더 채취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저의 경우는 환자가 어린애라서 그런지 한번 뺀 걸로 충분해서 더 채취하지 않고 다음날 오전에
퇴원했어요. 몸에서 빠져나간 조혈모세포는 2~3주쯤 지나면 원래대로 회복된다고 함…
퇴원하고 몸 상태는 약간 나른하긴 한데… 일시적인 거고 한 일주일 정도 무리만 안하면 생활에 지장은
없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기분이 좋네요. 이게 행복이란 거구나… 하는 느낌도 들고.
아무튼 기증받은 아이가 잘 회복되었음 좋겠습니다.
아래는 좀 긴 후기 -_-
현재 우리나라에는 3만명의 백혈병환자가 있고, 이 가운데 4명 중 3명이
자신과 맞는 골수(조혈모세포)를 가진 기증자를 찾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이들을 모두 치료하려면 최소 10만명 이상의 기증희망자가
있어야 하지만, 현재 기증 의사를 밝힌 사람은 4만명 정도에 불과하다.
- 골수 기증을 마치고...
어제 골수(조혈모세포)이식을 마치고, 오늘 퇴원하여 집에 왔습니다. 처음에 기증 의사를 밝히고
걱정도 되었지만, 이식을 끝내고 나니 죽어가는 생명을 살렸다는 생각에 정말 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은 특유의 가족적 연대감이 강하여 장기나 골수 등을 기증하려는 사람이 적고, 따라서 적합한 기증자를
애타게 기다리다가 결국 숨을 거두는 환자들이 많습니다. 제 이야기를 통해 한 사람이라도 기증희망자가 늘고,
한 생명이라도 새 삶을 찾게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후기를 남깁니다.
2006년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에서 제가 다니던 학교에 와서 캠페인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저는
골수(이제부터 보다 정확한 이름인 조혈모세포라고 하겠습니다) 기증 서약을 했죠. 백혈병환자와 기증자의
조혈모세포가 일치할 확률은 2만명중 1명 꼴이라고 하는데, 저와 맞는 환자가 나타났다는 연락을 받은 건
3년 후인 2009년 4월경이었습니다. 환자는 10살 미만의 여자아이라고 했습니다. (불미스러운 일(금전요구 등)을
막기 위해 환자와 기증자간 인적 사항은 비밀에 부쳐지며, 다만 나이와 성별 정도만 알려준다고 하네요.)
협회 담당 코디네이터님은 저에게 기증 의사를 다시 물어보셨고, 저는 하겠다고 답했습니다.
여기서 안하겠다고 하면 그 애는 -_-;;;
조혈모세포 이식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 방법은 다들 아시는 것처럼 전신마취 후 조혈모세포가
많이 있는 엉덩이뼈에 주사기를 꽂아 빼내는 방법(요즘 이 방법은 거의 쓰지 않는다고 하네요), 두번째는
이식 4일 전부터 하루에 한번씩 “그라신이라는 조혈모세포 증식촉진(?) 주사제를 팔에 맞아 증가된 조혈모세포가
일반 혈관으로 나와 돌아다니게 만든 후, 헌혈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팔에서) 채취하는 방법입니다.
전 두번째 방법으로 이식을 마쳤습니다.
어떤 방법을 택하든 기증자는 3일 정도 병원에 입원을 해야 하는데, 병원은 본인이 선택할 수 있고, 그에 따른 비용은
전액 환자가 부담하기 때문에 제가 돈을 내야 하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식 날짜는 처음에 8월 정도로 잡혔는데, 환자측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해서 9월로 미뤄졌어요. 덕분에 학기중에
입원을 하게 되었는데 출결 문제는 공문을 통해 다 해결이 되었구요(직장인의 경우는 특별휴가). 이식일은 화요일로
정해졌습니다. 토요일부터 병원 왔다갔다하면서 주사(그라신)을 맞았고, 월요일에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는데,
특실을 줘서 놀랐습니다. 1인실에 화장실도 있고 샤워기도 있고… 비데도 있어요-_-; 환자측 비용이 상당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죠. 첫 날은 혈액검사와 주사제 맞는 것 외에는 특별한 일 없이 지나갔고, 둘째 날 오전에 헌혈실로 가서
조혈모세포 채취를 시작했습니다.
3일간 있었던 자취방과는 비교할 수 없는-_- 좋은 병실
채취 방식은 기본적으로 헌혈과 동일합니다. 다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양팔에 바늘을 꽂는다는 점이 차이예요.
한 쪽 팔에서 나간 피가 원심분리기로 들어가서 조혈모세포만 걸러내고, 나머지 피는 반대쪽 팔을 통해 다시 들어오는
방식이었습니다. 시간은 사람마다 다른데 약 3~4시간 정도 걸리고(저는 3시간 걸렸어요), 채취하는 동안 헌혈하듯이
주먹을 쥐었다폈다(잼잼^^)만 했습니다. 잠들면 혈압이 떨어져서 피가 잘 안나오는 관계로, 보통 담당 코디네이터님이
잠들지 않도록 옆에서 말을 계속 걸어주십니다 ^^. 전 거기 담당하는 헌혈실 의사선생님이 예뻐서 안잤어요 ㅋㅋ
20대 후반으로 보이시던데 번호 물어볼 걸 그랬음 -_-;; 혹시 이거 보시면 연락좀 ㅋㅋ
채취중...
왼팔이 나가는 피, 오른쪽에 보이는 관이 오른팔로 다시 들어가는 피
아무튼-_- 채취가 끝나니까 헌혈하고 난 것처럼 힘이 없고 살짝 어지럽긴 했는데 뭐 별 건 아니었습니다.
걸어서 다시 병실로 돌아왔습니다. 채취한 조혈모세포는 바로 환자가 있는 병원으로 옮겨져서 이식을 한다고 합니다.
한 번 이식 후 양이 모자랄 경우는 다음날 한 번 더 채취를 하게 되는데요. 저의 경우는 환자가 어린아이라서 그런지
한번만 채취하는 것으로 충분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하루 더 자고 오늘 오전에 퇴원했습니다. 제 몸에서 빠져나간
조혈모세포 수는 앞으로 2~3주가 지나면 원상태로 회복이 된다고 하네요 ^^
팩 안에 있는 붉은 갈색의 액체가 원심분리를 통해 걸러진 조혈모세포,
채취 즉시 환자에게 이송되어 이식된다고 합니다.
처음에 기증하겠냐는 연락을 받고서는 잘 몰라서 괜히 걱정도 되고 했었는데 하고 나니까 “이렇게 간단한 걸 못해서
죽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실제로 기증희망자도 별로 없는데, 기증희망을 하고서도 정작
맞는 환자가 나타나면 기증을 거부하시는 분들도 꽤 계시다고 합니다. 특히나 이식 2주 전부터 환자는 무균실에
들어가 대량의 항암제를 투여받고 전신에 방사선을 쏘이는 등, 새 조혈모세포를 받기 위한 준비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때 기증을 취소하게 되면 환자는 그대로 무균실에서 죽음을 맞게 된다고 합니다.
기증 결정을 하고, 제 가족을 설득하고, 저의 조혈모세포를 애타게 기다리는 환자와 그 가족들을 생각해보는 과정은,
진로와 취업 등 자기 문제에 빠져 타인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살던 저에게 인간과 행복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이식 결정이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것 이상으로 기증자 본인에게 돈으로 살 수 없는 값진 경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으로부터 나온다고요...
오늘 제 조혈모세포를 받은 아이가 부디 잘 회복되어서 열심히 세상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조혈모세포(골수) 기증 안내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 http://www.kmdp.or.kr
대한적십자사혈액관리본부 http://www.bloodinfo.net/donate/marrow1.do
조혈모세포 기증은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KMDP) 또는 가까운 헌혈의집을 방문하여 신청서를 작성하고
조직적합성 검사를 위한 혈액을 채취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