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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으로 생각하기
게시물ID : phil_259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타자기사
추천 : 0
조회수 : 45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4/25 12:48:30
 많은 이들이 부당하고 비합리적인 상황에서도 이를 개선시키지 않고 참아낼 수 있는 것은 익숙함 때문이다. 

익숙한 무언가를 낯설게 본 순간 그동안 당연했던 것은 전혀 당연하지 않게 되고 심지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대상이 된다. 

폭력도 반복되면 익숙해지고, 길들여진 우리는 그 상황에 안주한다. 

익숙한 삶이 우리의 감각을 마비시켜 (비판)능력을 감소시켰기 때문이다. 

‘낯설게 보기’의 요청은 마비된 감각을 살려내 주어진 삶을 정확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뜻이다. 

훌륭한 선배들이 우리에게 권한 여행이란 피곤한 일상을 탈출해 재충전의 기회를 취하라는 지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불편해짐으로써 마비된 감각을 살려내라는 요청이다. 

삶의 실체는 나를 불편하게 하는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삶과의 충돌을 통해서만 드러난다. 

심해에 사는 물고기가 물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육지를 경험하는 수밖에 없다. 

30년 전 한국 사회에서 ‘개’라는 동물을 사람들은 흔히 볼 수 있었다. 

‘개’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가 ‘개’를 어떻게 파악했는지는 불과 1,20년 후 서구 애완견이 유입되었을 때 비로소 드러났다. 

우리는 ‘개’란 사람을 잘 따르는 영리한 포유류 가축으로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개’라는 단어에는 ‘집 밖에’, ‘비상식량의’, ‘잔반 처리하는’ 등등의 중요한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개’라는 동물이 지닌 이런 다양한 의미를 서구 애완견이 유입되기 이전 우리가 파악할 수 있을까? 

‘개’가 낯설게 보인 순간 누군가는 식용으로 개를 취급하는 너무도 당연했던 문화에 문제를 제기했고, 누군가는 ‘개’는 반려 동물이라 주장했다. 

이런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개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가 정확하게 드러났고 이 때문에 누군가에게 고민의 여지를 허락했다는 사실이다. 

무엇인가의 실체 혹은 진면목은 이질성과의 충돌을 통해서만 올바로 드러난다. 

낯설게 본다는 것은 익숙함이 야기한 부정확한 판단을 바로 잡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과 자발적으로 충돌해야 한다. 

여행이란 일상적 삶을 낯설게 보는 기술이고 궁극적으로 삶을 정확하게 보기 위한 역할을 해야 한다. 

철학적 성찰이란 익숙한 사유의 틀에 균열을 일으키기 위해 이질적인 사유를 도입하는 것이고 자신이 지닌 사유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행위라는 의미에서 앉아서 하는 여행이라 할 만 하다. 

철학적 사유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이유는 그것의 난해함 때문이 아니라 여행을 거부하려는 우리의 태도에 기인한다. 

익숙한 방식으로 사유하려는 관성이 이질성을 거부하려 할 때 우리는 고통스런 표정으로 ‘어렵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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